몇 년 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볼 때면 ‘이런 장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롭고, 어떤 장면은 볼 때마다 매번 나를 설레게 한다. 이렇듯 같은 사람이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보는 시점에 따라 그 영화가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지난 시간 동안 내가 겪은 경험과 감정들로 인해 시각이 달라지고 초점이 바뀌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 다르게 본 영화
2016년 나의 대학생 4학년 시절, 당시 나의 최대 관심사는 ‘페미니즘’이었다. 어느덧 졸업반이 된 나는 그제서야 학과 수업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던 터였다. 당시 전북대학교 교수이자 여성학자인 김혜경 교수의 ‘젠더와 역사’, ‘여성과 일’ 등의 여성학 수업을 들었다. 또 우연한 기회로 전주여성의전화에서 주관하는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양성교육’을 수료하게 되었다. 여러 회차의 교육 중 한번은 지역에서 활동 중인 영화감독과 함께 영화의 몇 장면들을 다시 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본 영화는 이미 봤던 영화인 ‘건축학개론’이었다. 이 영화는 대학생들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로 각인되어있었는데 이를 젠더 관점(성인지적 관점)으로 다시 보니 이야기의 전개가 달리 보였다. 이전에는 승민 역할을 맡은 이제훈이 그저 짝사랑에 실패한 어수룩한 청년으로 보였지만 이날은 찌질하고 이기적인 남자로 보였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 승민이 짝사랑하던 서연의 등을 돌리는 순간은 다름 아닌 본인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영화 속에서 승민은 밤늦게 학과 선배인 재욱이 술에 취한 서연을 집으로 이끌고 가는 모습을 목격하곤 다음 날 “이제 좀 꺼져줄래”라며 차갑게 돌아선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가는 서연을 방관한 그는 이를 배신으로 정당화시키고 서연을 ‘쌍년’이라고 기억한다. 첫눈에 반한 첫사랑의 상대가 ‘쌍년’이 되는 과정은 너무나도 남성(승민) 중심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콜미바이유어네임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한번 영화를 볼 때면 금세 몰입하는 편이다.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것 또한 좋아한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은 최소 세 번 이상 봤는데 볼 때마다 새로운 지점이 발견됐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198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둔 청량하고 아름다운 영화 속 분위기와 영상미에 빠져들었고, 두 번째 봤을 때는 열일곱 소년의 뜨거운 여름날과도 같은 첫사랑 이야기와 퀴어 로맨스에 집중했다. 영화를 세 번째 봤을 땐 다름 아닌 주인공 엘리오의 아버지가 보였다. 그는 성소수자의 부모로서,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태도로 엘리오를 대한다. 그는 엘리오가 사랑한 ‘여름 손님’ 올리버가 떠나고 상심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와 나누고 싶지 않은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네가 가졌던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어. 보통 부모들이면 없던 일로 하고 아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빌겠지만 난 그런 부모가 아니야.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고 마음을 잔뜩 떼어내다간 서른쯤 되었을 땐 남는 게 없단다. … (중략) 지금의 그 슬픔, 그 괴로움,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그렇게 영화를 세 번 보고 나서 곧바로 원작인 책을 주문했고 이 대목을 노트에 필사했다.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매력을 제대로 느꼈던 순간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요즘엔 다른 이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영화를 찾아보는 취미가 생겼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책 『혼자서 본 영화』, 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범죄심리학자 박지선이 영화를 리뷰하는 ‘지선씨네마인드’,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유튜브 ‘B tv 파이아키아’를 시간내어 보는 것을 추천해본다.
/강소은 미디어공동체완두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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