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와 한국의 전통음악 공연에서 빠질 수 없는 특징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추임새’ 일 것이다. 추임새란 ‘추어준다’, ‘칭찬하다’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창자 혹은 연주자가 공연할 때 장단을 맞추는 고수와 공연의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형태 중 하나가 바로 이 ‘추임새’이다. 많은 소리꾼이 자신의 소리를 펼쳐 보이기에 앞서 그 날의 관객과 하는 대화에서 가장 먼저 주제로 삼는 것이 추임새이다. 자신의 소리판을 관객들이 함께 만들어주길 바라며, 추임새 그득한 풍성한 공연으로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리꾼은 추임새에 공을 들인다.
추임새에 어떤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는 ‘얼씨구’, ‘절씨구’, ‘좋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또한 보통은 고수가 주도적으로 행위를 하는데 엄연히 따지자면 고수의 추임새와 관객의 추임새는 그 쓰임이나 역할이 미묘하게 다르다. 고수는 소리꾼 노래에 소리북으로 장단을 연주하는 사람이다. 고수는 추임새로 소리꾼이 하는 장면의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추기도 하고, 북가락을 대신해 소리 장단을 맞추기도 한다. 관객의 추임새는 그야말로 그날의 판을 만들어내는 힘을 갖는다. 판이라는 장소적 혹은 행위적 개념의 비중이 큰 판소리라는 공연 장르 안에서 판을 이끄는 힘은 소리꾼뿐만 아니라 관객에게서도 나온다. 우렁찬 박수와 총총한 눈빛으로도 관객의 만족도를 가늠할 수 있지만 시종 터져 나오는 소리판의 추임새야말로 가장 직접적인 관객의 호응이 아닐 수 없다. 관객의 추임새는 소리꾼에게도 힘을 싣지만, 함께 관람하는 다른 청중에게도 흥미로운 공연 중 일부가 된다. 그들 눈에는 호흡과 호흡, 장단과 장단 사이 알맞은 구석에 맞추어 추임새 하는 관객이 더 신기해 보이기도 한다. 소리판의 가장 ‘이상적인’ 관객을 ‘귀명창’이라고 하는데 특히나 전주의 소리판에는 귀명창이 많다. 이러한 전주의 소리판은 내로라하는 명창에게도 수준 높은 공연을 원하는 관객들에게도 참 매력적인 도시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추임새는 공연장의 분위기를 만들고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공연을 앞두고 소리꾼이 품었던 긴장과 두려움은 설렘과 흥분됨으로 바뀐다. 무엇인가 부족한 것은 채우고 차고 넘치는 것은 나눠 균형을 맞춘다. 절절한 춘향가 쑥대머리 안에서는 슬픔에 공감하며 함께 울고 금은보화가 넘쳐나는 흥보가 박 타는 대목에서는 온갖 부귀와 행운을 나눈다. 추임새를 뱉어내는 찰나의 어느 순간 당사자성을 갖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판소리가 아닌 나의 이야기이며 내가 주인공이 되는 무대. 우리는 그곳에서 공감의 힘을 느낀다.
추임새의 기본 전제는 공감이다. 흥과 한이라는 단순한 단어 속에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는 무수한 감정이 담겼다. 흥과 한으로 대표되는 한국 전통음악은 마치 인생과 같다. 그건 판소리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이 그렇다. 삶을 노래하고 감정을 연주한다. 작용에 대해 호응하는 것. 참 단순하지만, 행동이 어렵다. 누군가 아프다고 이야기하는데 위로가 쉽지 않고, 누군가 기뻐하는데 함께 웃어주기 어렵다. 소리판 안에서는 꽤 쉽다. 칭찬하고 호응해주는 추임새가 넘친다. 한마디 던지는 추임새라는 호응에 여러 작용이, 많은 상대가 반응한다. 우리 사회도 이러한 단순하지만 확실한 효과를 지닌 추임새가 필요하다. 서로의 작용에 칭찬하며 호응하는 것. 그것은 대화이자 표현이다. 우리는 종종 그 단순한 논리를 잊고 사는 듯하다.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그것이 추임새의 가장 큰 힘이자 가치일 것이다.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해주는 추임새 그득한 한해를 꿈꿔본다.
/송봉금 소리꾼․동문창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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