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 새해 국가예산 사상 첫 9조원 시대’, ‘○○시, 2023년 국가예산 역대 최고액 확보’.
2023년도 정부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각 지자체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의 치적 홍보가 이어지고 있다. 연말연시 바쁜 일정에도 도지사와 지역 국회의원들이 어김없이 한자리에 모여 언론 브리핑을 열고 애써 그 의미를 부여했다.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 속에서도 지역 정치권이 여야 협치를 통해 큰 결실을 거뒀다’는 자평도 예년과 비슷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꼭 있는 일이니 새삼스러울 게 없다. 국가예산 확보 성과를 아전인수식으로 부풀려 발표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지난 연말 예산정국이 장기간 공전하면서 국회가 지난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가장 늦은 예산안 처리 기록을 세웠지만 지자체와 국회의원들의 ‘예산 낯내기’는 조금도 지체되지 않고 연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각 지자체장들이 국가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등 정부 관련 부처와 국회를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총력전을 펼친 게 사실이다. 국회 각 상임위의 예산심의가 본격화 될 시점에는 ‘상경투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정도로 지자체의 관심은 온통 국가예산에 쏠린다. 지역발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이자 첫걸음은 역시 예산확보이기 때문이다. 거의 1년 내내 국가예산 확보에 열정을 쏟아냈으니 주민들에게 그 성과를 알리고 싶은 게 어쩌면 인지상정이다. 기왕이면 잘 포장해서 하나하나 의미를 부각시키고 싶을 게다.
하지만 지자체와 의원들의 발표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민망한 표현이 적지 않다. 우선 전체 예산은 전년에 비해 절대 감소하는 일이 없으니 사상 최고액이라는 표현은 무색하다. 해마다 예산은 1원이라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매년 사상 최고액이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마치 현 단체장의 능력이 탁월하거나 전임 단체장과 비교할 수 없는 열정을 쏟은 덕에 전대미문의 대단한 기록을 세웠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해마다 그 성과를 홍보해댄다. 다음 해에도 또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국가예산은 천문학적 수치로 포장된 전체 규모가 아니라 그 항목과 실속을 살펴야 한다. 숫자로 표시되는 예산의 액수보다는 해당 국가예산 사업이 지역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냉철하게 살펴야 한다. 당장 지역발전을 위해 시급한 현안인데도 정부의 무관심으로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아 물거품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사업도 적지 않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국가예산에 반영되지 못한 사업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대책에 몰두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선출직 지자체장과 국회의원들은 이 같은 과제보다 치적 홍보가 우선이다. 앞으로는 국가예산이 연말연시 지자체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의 치적 홍보용으로 과대포장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 김종표 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