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옛드(옛날 드라마)’가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다시 공개되고 소비되고 있다. 그 가운데 국내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는 방송평론과 언론의 분석기사 등이 나올 만큼 인기를 끌었다. 필자 또한 직장 동료들과 ‘옛드’ 이야기를 하자면, <전원일기>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드라마가 주는 ‘무공해’와 ‘힐링’ 감성이 있는데다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는 배우들이 낯설지 않고, 특히 완주에 일터를 잡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원일기>는 ‘옛날 드라마’ 이상의 감상을 주고 있다. 필자의 눈으로 본 농촌의 ‘문화현장’은 50년 전 그 당시와 현재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시민의 주체적인 문화활동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지역 문화환경을 새롭게 변화시켜 나가는 문화도시 사업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더욱 안타까운 부분이다. 초등학교 때 TV에 나오던 그 시골, 농촌과 지금의 현실이 어쩌면 이렇게 비슷할까. 마을회관의 모습도, 동네 작은 가게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드는 주민들의 모습도, 혼자 사는 노인, 농촌 노총각 등 지금으로 말하면 1인 가구의 문제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유독 초점이 맞춰지는 장면은 <전원일기>의 겨울이었다. 바로 농촌의 농한기.
많이 다양화됐지만, 대개 농촌은 추수가 끝나는 11월부터 이듬해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월까지 농한기를 맞는다. 농한기가 되면 주민들은 여유가 생겨나지만 이 여유를 채워줄 여가와 문화는 턱 없이 부족하다. 아니 전무한 수준이다. 문제는 바로 현실과 맞지 않는 지원시기. 특히 완주 같은 도농복합도시는 더욱 그렇다. 정작 주민들이 문화활동을 필요로 하는 이 시기에는 모든 지원사업들이 올스톱, 그야말로 ‘한기’를 맞고 있는 것이었다. 지자체부터 여러 기관, 단체들까지 주민들을 지원하는 공모사업, 참여사업 모두가 봄, 가을에 집중돼 있다. 공적 영역 사업의 회계연도 문제 때문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또한 사정은 똑같지만,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문화도시 정책이고, 완주문화도시조성사업이기에 ‘꼼수’라도 부려봐야 할 판이었다.
지난해부터 우리는 마을 문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주민들, 이장님들, 부녀회장님들, 촌장님들과 함께 고민을 시작했다. 할 일은 없고 시간은 남아도니 이때야 말로 ‘문화’하기 좋은 때라 한다. 또한 농한기는 종종 마을의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나는 때이기도 했다. 잦은 음주와 내기 화투 등으로 일어난 다툼은 공들인 마을 관계를 해치고, 이로 인해 발생한 사고와 건강상 문제는 여전히 품앗이 문화가 이어지는 마을 농사일에도 피해를 주고 있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어르신들이 외출을 꺼리시니 소통과 교류도 단절되고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완주에서는 지원방식의 다양화와 행정기관 협의, 주민들의 적극적인 제안과 참여로 크고 작은 농한기 문화 프로그램이 지금 완주에서는 벌어지고 있다. 사실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폭발적이다.
1년 365일 문화로 풍요로운 도시, 생각만으로도 기쁘고 희망적인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생각이 많아진다. 이것은 완주군, 한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보조금법이 그래서, 다들 그렇게 지원하니까, 현장을 우리는 끊임없이 외치지만, ‘본래’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장이 달라졌다면, 우리의 욕구와 수요가 달라졌다면 제도도, 관습적인 방식도 다 변화해야 하고 그런 노력들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랬을 때 문화활동가도, 중간지원조직도, 시민도, 이 도시에서 행복할 수 있다. 지역과 시민의식의 변화를 모른 척 하지 말자. 우리는 20년 전 드라마를 보며 ‘어머!’ 해야 맞다!
/장보람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공유문화팀장
△장보람 팀장은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사업팀과 전주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기획팀 등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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