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69시간 근무제’에 대한 논쟁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사무실에서도 해당 정책은 아직까지 뜨거운 감자이다.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에 대한 내용 등 긍정적인 부분도 포함되어 있으나 주요 골자인 최대 주69시간까지 근로시간을 확대하겠다는 연장근로유연화에 대한 부분은 무척 염려스럽다.
단순히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면된다는 논리는 근로현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야기인 것이다. 69시간 근무제에 대한 발표가 난 직후 필자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당장에 작년에 사용하지 못했던 연차가 며칠이나 있었는지 헤아려보았다. 대부분 절반을 다 쓰지 못하고 해를 넘겼더랬다. 일이란 몰아서 끝낸다고 남는 시간만큼의 여유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내가 쉬는 만큼 내 빈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대체해주어야 한다. 더군다나 단순 업무가 아닌 이상 남이 하던 일을 대신 맡아 공백 없이 처리한다는 것도 간단치 않은 일이다. 결국은 가벼운 마음으로 내 권리니까 쉬고 오겠다고 나서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69시간 근무제는 ‘연장근로’ 시간을 유연화 하겠다는 내용이다. 법정 근로시간인 주40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아니다. 월요일에서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8시간씩 근무를 하고도 최대 29시간을 더 ‘초과근무’ 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말을 포함한 7일을 기준으로 산정했을 때에는 최대 80.5시간까지 연장근무를 하는 것도 가능해질 수 있다.
물론 돈도 더 벌고 좋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애초에 우리는 왜 그렇게까지 소모되어야 하는 걸까? 아침 9시에 출근하여 8시간을 근무하고 퇴근하면 저녁 6시가 된다. 저녁 6시가 지나서야 비로소 근로자가 아니라 ‘나’로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돈을 버는 이유도 ‘나’로서 지내는 시간을 오롯이 즐기기 위함이다. 근로시간이 길어지고 격무에 시달릴수록 ‘나’는 지워지고, 일과 회사가 자리를 채운다. 그 이후 주어지는 휴식은 어떨까? 피로에 파묻혀 여행이나 취미는 남의 이야기가 되기 쉽다. 기본적인 건강을 챙기기에도 빠듯하다.
각종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고용형태는 개선되지 않고 근로시간만 확대하려는 현재의 상황은 내가, 우리가 단순히 어떤 조직의 소모품으로 쓰이고 용도를 다하면 그대로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마저 들게 한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은 MZ세대의 의견을 경청하라는 주문을 했다. 그리고 연장근로시간유연화 제도에 대해 제기된 문제점을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해야할 고용노동부장관은 MZ세대는 ‘권리의식’이 뛰어나다며 제도의 불합리성을 MZ세대의 당돌함으로 무마하려 했다.
MZ세대인 필자는 문득 궁금해졌다. 근로자는 MZ세대만 있는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은 생계와 직결된다.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일이 갖는 무게는 같다. 모두에게 공평해야할 정부의 정책이 왜 특정 세대만을 언급하는 걸까? 다른 세대에게 불합리한 제도가 MZ세대에게 만큼은 통용될 수 있다는 걸까?
MZ세대로서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고용노동부장관이 말한 ‘권리의식’이 내포한 의미를 생각해보며 씁쓸함을 느낀다. 동시에 근로현장과 괴리가 있는 제도를 포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 세대가 사용됨에 깊은 피로감과 불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정중히 여쭙고 싶다. 대통령님과 장관님은 주당 몇 시간을 일하고 계시는지.
/장보람 완주 문화도시지원센터 공유문화팀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