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떠들썩했던 도청 공무원 갑질과 관련해 문제의 핵심은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피해자라도 공무원이 당한 경우와 가해자가 공무원인 행정 갑질의 사례는 천양지차다. 담당 부서의 문제 의식은 물론 업무 처리 속도와 해결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행정 갑질의 민간 피해자는 가해자가 소속된 행정 기관의 ‘깜깜이’ 조사에서 배제된 체 처분만 기다리며 무력감을 느낀다. 공무원이 당한 갑질에 대해선 노조가 조직적 위력을 통해 발빠르게 대처한 반면 그들 동료가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행정 갑질은 노조뿐 아니라 조직 전체가 미온적으로 대응,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공무원노조는 지난달 직장 내 갑질에 대한 후속 조치 일환으로 가해자 중징계 방침을 천명하고 예방 대책도 발표했다. 공무원 10명 중 7명은 직장 상사에게 갑질을 경험하고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까지 겪었다고 한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갑질의 심각성에 비해 전북도 대응이 너무 안이하다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징계 수위 또한 들쭉날쭉하면서 ‘고무줄 잣대’ 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았다. 2021년 도의회 갑질 파문으로 도청이 벌집 쑤신 듯 한바탕 난리를 겪은 뒤 직장 내 상사 갑질 사건까지 터져 심각성을 일깨워 줬다. 공무원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기 위해서라도 노조가 이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행정 갑질을 당하고도 하소연을 못하는 민간인의 속사정이다. 그들은 갑질 괴롭힘에 이어 수습 과정에서도 공직 사회의 두터운 벽을 실감하고 있다. 민원 제기를 해도 한 지붕 아래 선후배 관계 때문인지 사실 관계 규명에 소극적이고 시간 끌기 일쑤다. 지난해 12월 행정 갑질 논란으로 전보 조치된 도청 6급 공무원의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감사원 감사를 통해 문제점을 인식하고 도청 감사관실로 자료가 넘어왔음에도 늑장 업무 처리로 속만 태우고 있다. 억대 보조금을 주무르는 부서 지휘 체계로 볼 때 갑질 당사자와 ‘윗선’ 연계성 여부 조사를 포함해 경찰 수사까지 주목받는 상황이다.
직장 내 괴롭힘과 행정 갑질의 피해자는 ‘을’ 의 위치에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가해자에게 한 번 찍히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본인의 피해 사실을 함부로 발설하거나 맞서기조차 힘든 처지에 놓여 있다. 이처럼 막다른 입장에 몰려 있지만 문제 해결 방식은 피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 직장 내 피해자인 공무원은 노조 중심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고 재발 방지 대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에 반해 공무원이 가해자인 행정 갑질의 경우 노조가 쉽게 나설 수 없는 입장이라 그만큼 진상 규명이 터덕거리고 있다. 그렇다 보니 민간 피해자의 간절한 외침은 고립무원 상태에서 묻히기 마련이다. 노조가 앞장서 제 살을 도려낸다는 각오로 자정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공직 사회 갑질은 다시 불거진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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