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3일장이니 5일장이니 하여 일정한 기간의 간격을 두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장이 있었다. 상설 시장과는 달리 일정한 날에 장이 서는 그날을 우리는 ‘장날’이라 불렀다. 5일장이라면 매월 1일과 6일, 2일과 7일, 3일과 8일, 이렇게 짝을 맞추어 열리는 형식이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3일 간격으로 혹은 5일 간격으로 열렸던 이들 정기적인 시장은 일종의 사설시장이었지만 상업이 발달했던 조선 후기, 장시문화를 주도했을 정도로 크게 번성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근현대화로 시장의 환경이 크게 변하면서 재래시장(상설시장)은 쇠락하거나 소멸의 위기에 처했다. 상설시장보다도 생명력을 보장받기 어려웠던 정기시장의 처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돌아보면 3일장과 5일장은 상업 활동의 중심이자 지역주민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지역문화 공동체의 결속을 이어내는 의미 있는 장소였다.
이들 시장이 번성했던 시절은 1970년대. 전국적으로 1천개의 시장이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급격한 현대화와 함께 몰려온 유통 환경의 변화는 재래시장의 쇠락을 부추겼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서면서 살아남은 사설 시장은 반절 수준. 숫자는 500개로 줄었고 이후 더 급감하기 시작해 지금 살아남은 3일장 5일장은 얼마 되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 즈음, 위기에 처한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재래시장 현대화’를 내세운 사업이 각 자치단체마다 유행처럼 번졌다. 한결같이 엄청난 예산을 들여 시장을 현대식으로 개조하는 방식이었다. 낡고 오래되어 불편했던 재래시장은 번듯한 현대식 상가로 변신했으나 아쉽게도 효과는 미미했다.
우리지역에도 순창장이나 무주 설천장, 진안 장계장처럼 이름을 알렸던 5일장이 많았다. 그러나 1923년에 시작되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건재했던 순창장이나, 현대화 사업으로 화려한 변신을 내세워 옛 영화를 꿈꾸었던 설천장도 쇠락의 위기를 넘어서지 못했다. 당시 재래시장의 현대화는 현실적 과제였지만 외형에만 치우친 개량 사업이 가져온 폐해는 오히려 악영향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최근 지역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들의 전통시장이 더 큰 위기를 맞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북에서도 10년 사이 6개 시장이 사라졌다. 인구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다시 낡아지고 불편해진 재래시장이 불러온 한계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이름을 알리는 재래시장과 거기 기대어 맥을 잇고 있는 5일장들이 있다. 들여다보면 시설의 현대화에만 기대지 않고 재래시장이 지켜왔던 독창적인 정서를 살리기 위해 분투해온 곳들이다. 시장의 기능에 문화적 요소를 더해 관광지로 변화시킨 선택과 지혜에 박수를 보낸다.
/김은정 선임기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