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물폭탄이 떨어졌다. 전북에서는 하루 400mm 가까운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난리다. 폭우나 집중호우 같은 기존의 용어로는 이 맹렬한 강우현상을 제대로 표현해낼 수 없다.
기상청은 올여름 ‘극한호우’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지난해 서울에 시간당 140mm가 넘는 물폭탄이 쏟아지면서 만들어진 용어다. 1시간 강수량 50mm 이상, 3시간 누적 강수량 90mm 이상의 집중호우가 동시에 관측될 때를 이른다. 1시간 강수량이 72mm를 넘을 때는 즉시 극한호우로 판단한다. 일반적으로 ‘매우 강한 비’의 기준이 시간당 30mm이니 그 정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기상청은 올여름부터 이 같은 극한호우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우려될 때 수도권을 대상으로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하기로 했다. 올해 수도권 시범운영 후 내년 5월에는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지난 11일 오후 서울 구로구 구로동과 영등포구 신길동 등에 처음으로 극한호우 발생을 알리는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됐다.
물론 긴급재난문자 발송 기준을 충족하는 극한호우는 예년에도 전국 곳곳에서 수차례 발생했다. 그리고 그 빈도가 해마다 급격하게 늘면서 기상청이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결국 기후변화가 원인이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올해 ‘슈퍼 엘니뇨’를 예고했다. 한반도를 비롯한 전세계에 역대급 폭염과 폭우 등 기상이변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리고 우려가 현실이 됐다. 물폭탄이 쉴 새 없이 쏟아지면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극한의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이제 홍수와 가뭄 등 재해예방 시스템도 전면 재검토 돼야 할 것이다. 기존의 기상자료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까지 고려한 재해예방 대책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의 시대다. 이 요란한 장마가 지나가면 가마솥더위·찜통더위 단계를 넘어서는 ‘극한폭염’이라는 용어에 익숙해질 수 있다. 앞서 기상청은 수년 전 가뭄의 단계를 ‘가뭄’, ‘매우가뭄’에서 ‘보통가뭄’, ‘심한가뭄’, ‘극한가뭄’으로 조정했다. 그야말로 ‘극한(極限)’의 기후다. 극한은 궁극의 한계점을 의미한다. 더 심한 상황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는 최악의 단계다. 하지만 지금 극한으로 이름 붙인 기현상이 지구촌 이상기후의 마지막 단계라고 확언하기 어렵다. ‘극한’의 기준을 훌쩍 넘어서고, 그 빈도가 높아지면서 다시 새로운 용어를 붙여야만 하는 폭우·폭염·가뭄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절대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겠지만, 이보다 더한 비가 오고 그 빈도가 점차 높아진다면 과연 또 어떤 용어를 새로 만들어 쓰게 될지 궁금해진다. 더 갈 곳 없는 마지막 단계를 뜻하는 ‘극한’이라는 표현까지 이미 끌어와 써버렸으니 말이다. 기후위기의 시대, 인류를 위협하는 기상이변이 어디까지 갈지 새삼 걱정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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