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공공기관에 볼일이 있어 방문했다. 궂은 날씨에도 민원인은 끊이지 않고 겨우 일을 마치고 나서는데 청사관리실 유리문에 붙인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우산 없음’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보니 빗줄기는 더욱 거세져 있었다.
아뿔싸, 발길을 돌려 다시 민원실을 찾았다. 깜빡한 내 우산은 우산꽂이 어디쯤에 숨어있는 건지, 빗물을 잔뜩 손에 묻히고야 겨우 살대 안쪽까지 빗물이 들어찬 우산을 구출할 수 있었다.
현관 앞에 서서 빗물을 탈탈 털며 문득 든 생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리실에 찾아와 우산을 빌려달라 했으면 유리문에 ‘우산 없음’이란 안내문까지 붙여놓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며칠 해가 반짝하다 다시 급격히 악화된 날씨라 미처 대비하지 못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나보다.
십수 년 전 여름이었다. 여름 초입부터 많은 비가 예보되었다. 오지랖도 넓고 정도 많고 게다가 손도 큰 나는 우산 100개를 사놓았다. 장마가 시작되면 분명 우산을 잊고 당황하는 손님들이 있을 것이고 카운터에서 우산을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많은 손님들이 우산을 빌려갔고, 다음 방문 때 꼭 다시 가져다주마 약속했다. 혹여 우산을 그냥 빌리는 것이 미안하여 구입하겠노라 하는 손님이 있다면 넉넉한 웃음으로 ‘다음에 다시 찾아주시면 되죠’할 요량이었지만 그리 물었던 손님은 없었다.
그 여름이 끝날 무렵, 몇 개의 우산이 남았을까? 채 10개가 되지 않았다. 빌려 갔던 우산을 다음 방문 때 다시 챙겨온 손님은 한 손에 꼽았다. ‘아, 깜빡했다!’면서 너털웃음을 웃고 다시 다음 방문 때 가져올 것이라 말하는 손님이 많았다. 사실 누군가 우산을 빌려 가고 다음 방문 때 깜빡한 것을 내게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는 우산을 빌린 손님들의 이름이나 연락처를 묻지 않았고, 애당초 그에 대한 대가로 큰 호의를 원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미안해하던 몇몇은 가게에 다시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반드시 챙겨야겠다고 마음 먹을만큼의 성의는 없음과 그에 대한 약간의 미안함 이런 감정들이 누적되어 국밥집으로 향하는 걸음을 붙들었을 것이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언론을 통해 ‘양심우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느 비영리기관에서 시민들의 편의를 목적으로 운영한 우산 대여 서비스였다. 좋은 의도와는 달리 관리, 회수의 문제가 있었고 2달 만에 75%가 분실됐다는 것이었다.
사연을 알게 된 어느 마케팅 전문가가 내게 ‘실패한 우산 마케팅’이란 분석을 내주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선 비영리 목적으로 했다고 하기에는 서비스에 들어간 비용이 너무 컸다.
가정용 우산에는 비할 수 없는 품질이지만 결코 일회용은 아닌, 당시 국밥 값의 절반쯤 되는 가격의 우산이었다. 그쯤 되면 본전 생각이 안 날 수 없으니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손님이 더 찾아주겠지?’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나는 호의를 전했지만 상대방에겐 결국 양심의 가책이라는 부담이 되었다. 갖지 않아도 되었을 양심의 가책을 되려 나 때문에, 내가 빌려준 우산 때문에 갖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손님들이 가게에 발길을 끊을 수밖에. 결론은 우산 잃고 손님 잃고 그 해 여름은 참외꼭지 같은 쓴맛만 남겼다.
나는 서민의 음식, 콩나물국밥을 팔고 있지만 내가 파는 것은 단순한 국밥이 아니요, 정(情)이고 인심(人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전주의 마음일 것이다. 누군가는 ‘실패한 마케팅’이라고 나무랄지 모르지만 글쎄 내가 이 오지랖을 그만둘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유대성 전주왱이콩나물국밥전문점 대표
△유대성 대표는 전주콩나물국밥의 우수성을 알리며 대중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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