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방문 교수로 이타카라는 미국의 아주 작은 대학 도시에서 생활 한 적이 있다. 미국 시골에서는 차가 없으면 모든 생활이 불편하기 때문에 미국 운전면허 시험을 보고 16살, 17살 나이의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안전 교육을 받는 경험을 했는데 교육 중에 내가 느낀 우리와 가장 다른 교통 문화는 신호등 없는 교차로 통행 방법이었다. 미국에서는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 어김없이 스탑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스탑 표지판 앞에서는 무조건 차가 멈춰서야 하고 먼저 온 순서대로 한 대씩 교차로를 통과해야 한다. 동시에 차가 멈춰 섰을 경우에는 우측에 위치한 차가 우선권을 가지고 먼저 출발하면 된다.
한번은 내 차와 맞은 편 차가 동시에 교차로에 멈춰 선 적이 있었다. 이 경우는 정면 대치라 두 차 모두 오른 쪽 차량이 될 수가 있다. 나는 이방인이기도 하고 나름 양보 한다고 앞 차가 먼저 지나가도록 기다려 주는데 앞 차가 갑자기 나에게 하이 빔을 날린다. “아니 저자식이... 내가 양보 해주는데 그냥 갈 것이지 매너 없이 하이 빔을 날려?” 나도 분노의 대응으로 하이 빔을 날려 주었다. 그랬더니 앞 차가 또 나에게 하이 빔을 날린다. 우리는 서로 하이 빔을 마구 날렸다. 마치 서부영화에서 두 총잡이가 총질을 하듯이 말이다.
다음 날 수업 시간에 어제 있었던 이 매너 없는 운전자에 대해 이야기 했더니 학생들이 웃으며 나에게 말 해 준다. “이럴 때 하이 빔은 내가 양보 할 테니 당신이 먼저 가세요란 뜻이에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의미였던 것이다. 갑자기 상대방 운전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상대방 운전자는 서로 양보하겠다는 아름다운 경험으로 생각했을 터이니 마음의 빚은 생기지 않았다.
하이 빔 사용에 대한 극명한 문화 차이는 나에게 꽤나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신호등 없는 교차로 통행 방법은 사실 처음에는 익숙하지도 않았고 불합리해 보이기까지 했다. 차량 한 대 안 보이는 교차로에서도 무조건 멈춰서야 하고 다시 출발 하는 게 낭비처럼 보였다. 더군다나 신호등 없는 교차로가 연속적으로 나타날 때에는 세상에 이런 비효율이 있을까 싶었다. 이런 이유로 스탑 표지판을 무시하고 그냥 통과하는 차들이 종종 눈에 뜨이기도 하는데 이럴 때면 어김없이 숨어있던 경찰차가 나타나 딱지를 뗀다.
미국에서의 이런 운전에 익숙해질 무렵 한국에 귀국해서 운전을 할 때 가장 신경이 쓰였던 부분은 신호등 없는 교차로를 지날 때였다. 주변을 잘 살피며 서행을 하라고 하는데 내가 선의로 양보를 하면 상대방 차들이 그냥 오리 떼 마냥 줄줄이 지나간다. 한 대씩 차례로 보내주는 경우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내 뒤차는 왜 거기서 양보해 가지고 우리 쪽이 못 가게 하냐며 경적 음과 함께 하이 빔으로 항의 표시를 한다. 여·야, 아군·적군이 있듯이 도로에서도 생판 남남이지만 네 편·내 편이 생성된다. 도로교통법 26조를 보면 대로 우선, 우측 차량 우선, 직진 우선 등 신호등 없는 교차로 통행 방법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사고 예방 보다는 사고 발생 시 과실 비율을 나누는데 사용되는 용도로 느껴진다.
요즘 한국의 교통 문화도 보행자 보호 위주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이 좋아 보이는데 다른 나라의 합리적인 교통 문화는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우리의 교통 문화도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 나갔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민성욱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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