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선생은 ‘해방이 도둑과 같이 찾아들었다’며 해방이 갑자기 이루어진 것처럼 적었다. 그러나, 해방은 미국의 원폭투하나 연합국의 승리로 갑자기 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 민족의 끈질긴 독립투쟁의 산물이었다.
동학혁명에서 항일의병까지, 압록강을 건너간 독립군들과 중국과 연해주에서 벌어진 무장투쟁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은 국내‧외에서 줄기차게 벌어졌다. 그중에는 변절자도 있고 부역자도 있고 이름 없이 쓰러져 간 영웅들도 있다. 이제 우리는 해방이 노력 없이 갑자기 온 것도 아니고 처절한 독립투쟁을 해온 애국자들의 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때아닌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역사학계 안팎의 학자들이 아닌 대통령 입에서 시작되었다. 결정판은 육사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려는 시도로 나타났다.
우리에게 ‘봉오동 전투’로 익숙한 홍범도 장군은 1868년 평양에서 태어나 개마고원 일대의 포수로 활동하다 일제의 국권 침탈과 총기 수거 명령에 반발해 항일 운동에 투신했다. 가장 빛나는 항일 성과로 평가받는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를 지휘했다.
홍범도 장군을 포함한 독립영웅 5인의 흉상이 육군사관학교에 세워진 것은 독립영웅을 기리는 것과 함께 국군의 역사적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국군은 창군 과정에서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이 다수였지만, 국군의 뿌리는 독립군과 광복군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른 한 편에 백선엽이 있다. 백선엽은 만주국 군관학교 출신으로 항일독립운동 세력을 가장 악랄하게 탄압한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하면서 조선인으로 조선인을 때려잡겠다는 일제의 ‘이이제이’의 선봉에서 복무했다.
한국군은 창군 초기 백선엽 같은 만주국과 일본육사 출신이 다수였다. 이들은 5‧16쿠데타의 주역이었고 이들의 후예들은 12‧12군사반란의 수괴였으며, 80년 5‧18광주학살의 주범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국가는 충성의 대상이 아니라 권력 장악의 수단이기도 했고, 국민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학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과거 독립운동의 역사는 반쪽이었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은 남북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다. 독립운동 연구가 진전되고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민족주의냐 사회주의냐는 독립유공자를 가르는 기준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이념 구분이 부활했다. 말로는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고 하면서 같은 방향을 봐야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이념과 지역에 따라 성별과 계층으로 나누는 갈라치기가 완벽히 부활했다.
통합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요즘은 선과 악, 죄와 벌에 익숙한 검사가 한 나라를 끌고 가면 어떤 재앙이 생기는지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당장 낡은 이념 전쟁을 중단하라. 대한민국은 이미 민주주의 국가이고 다양성이 실현된 사회이다. 남과 북의 차이는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전체주의, 시장경제와 통제경제의 차이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독재의 차이 즉 다양한 이념과 유일이념의 차이다.
민주주의의 장점인 다양성을 없애는 것은 전체주의의 길로 가는 것이며, 나치가 걸은 파시즘일 뿐이다. 이미 망해버린 공산주의와 싸우겠다는 어설픈 ‘뉴라이트’의 역사전쟁을 당장 멈추기 바란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념의 잣대에 따라 사실을 선택하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억압을 정당화하는 것은 자유도 민주주의와도 거리가 멀다. ‘전쟁유공’ 백선엽의 간도특설대 복무는 사실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 ‘독립유공’ 홍범도의 흉상은 육사 교정과 국방부 청사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
/김성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전주시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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