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행사로 행하는 신년 다짐에 '운동하기'라는 다짐은 매년 빠지지 않고 올해 1월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당시에 나는 국가고시를 준비하고 있어 집 근처에서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친구들과 함께 배드민턴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지금도 그 친구들과 함께 꾸준히 배드민턴을 치고 있고 체력과 실력도 그때에 비해 많이 늘었다.
약 10개월을 꾸준히 쳤고 그 사이에 우리가 흔히 '삐었다'라고 표현하는 발목 염좌를 두 번 경험했다. 그중 한 번을 최근에 경험했는데, 나는 발목염좌가 있을 때마다 항상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어난 일이 상기되곤 한다.
18살 가을 즈음 체육시간이었다. 당시 '음악줄넘기'로 수업을 진행했었는데 나는 이미 중학교 3학년 때 '블락비'의 'Very Good'라는 노래로 조를 만들어 안무를 완성시켰었다. 평소에 지금과는 다르게 슈퍼 외향적이었던 나는 또 마음속에서 깊이 까불거리기 시작했다. 같은 반 친구에게 "야, 나 이거 할 줄 알아. 나 중학교 때 해봤어. 한 번 봐봐"라며 안무를 선보였다. 안무를 선보이던 중에 노래의 가장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줄넘기를 뛰어넘으려던 그 순간, 친구는 본인의 시야에서 내가 사라졌다고 표현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발목을 부여잡고 쓰러져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나는 발목을 접질린 것이다. 문제는 발목이 꺾여있던 상태에서 고등학생을 이유로 한껏 불어있던 내 몸이 발목 위로 앉아버려 발목 문제만이 아닌 근육이나 인대 손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어 소리도 못 내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체육 선생님은 한 번 일어나 보라고 하셨지만 나는 일어날 수조차 없었고 그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발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반 실장에게 부축을 받으며 양호실로 갔고 양호선생님께서는 병원을 바로 가보는 게 좋겠다며 간단한 치료와 함께 돌려보내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엄마가 나를 당장 데리러 올 수가 없다고 하셔서 엄마가 오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발을 디디는 것조차 어려워 원기둥 모양의 돌돌이 청소기에 무릎을 대고 움직여야 했다. 아마 이날 우리 반 친구들은 저런 모습을 하고 돌아다니는 나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있을 것이다. 엄마가 오고 병원에 함께 가서 발을 확인하는데 엄마는 매우 놀라시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고 나도 생전 이런 발의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복숭아뼈를 중심으로 발가락까지 보라색이었고, 퉁퉁 부어 코끼리 발 같았다. 나는 속상한 마음에 엉엉 울기만을 반복했고, 엄마는 괜찮다며 나를 달래주었다. 그 이후로 병원에서 여러 차례 치료를 받으며 재활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나는 발목 자체도 원체 가늘고 발목은 한 번 삐끗하면 그 이후로는 쉽게 삐끗하기 때문에 발목염좌는 그 이후로도 나에게 연중행사가 되곤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발목이 가늘고 잘 접질리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운동하기 전후로 스트레칭을 잘 하지 않았고, 테이핑이나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염좌를 경험했을 때는 생각보다 통증이 오래갔고 부기도 잘 가라앉지 않아 고등학교 때 겪었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해주었다. 모든 질병과 사고에서 예방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테이핑을 주문하러 가며 글을 마친다.
/유세현 간호사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