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으로 가다가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어쩐지 아는 사람일 것 같아서 이름을 불렀더니 그 사람이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졸업 후 오랫동안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던 후배였다. “여기서 뭐 해?”라고 물었더니 쑥스럽게 웃으면서 맞은편을 가리키며 작은 사무실을 오픈했다고 했다. 나는 축하한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간의 사정을 모르는 터라 자세한 내용은 차마 묻지 못했다.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하반기 공채가 진행되고 있다. 주변에서 준비하는 분의 말을 들어보니 채용규모가 예년에 비해 줄어들었다고 한다. 해마다 취업문턱은 높아진다. 채용방식도 대규모 공채보다는 수시채용이나 경력직 채용, 헤드헌팅 방법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제 막 구직을 시작한 청년의 입장에서는 막막할 수밖에 없다. 공채 문턱은 매년 높아져 오버 스펙을 쌓아도 겨우 응시자격이 주어질까 말까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력직 채용은 늘고 신규채용 은 점점 줄어든다. 청년들에게서는 첫 직장이 있어야 경력직으로 도전할 텐데 아예 경력을 쌓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푸념이 나온다. 그리고 이런 순환이 반복될수록 청년들의 취업시기는 점점 더 지연된다. 반면 중소기업은 계속해서 구인난에 허덕인다. 공채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경력을 쌓는 기회로 중소기업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며 윗세대들은 청년들의 눈이 높아졌다고 혀를 끌끌 찬다. 청년들은 취업하지 않는 것일까, 취업하지 못하는 것일까?
첫 직장은 중요하다. 첫 직장은 마치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과도 같다. 첫 직장이 어디냐에 따라 다음 이직기회, 정규직 및 비정규직 여부, 연봉 등 많은 조건과 기회들이 달라진다. 청년들은 그래서 구직기간이 길어지더라도 대기업 공채 같은 선택에 몰린다. 어른들의 말처럼 중소기업에 가서 스펙을 쌓고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은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합리적인 방법 같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청년들은 그런 발언에 대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현재의 치열한 취업의 생리를 모르는 발언처럼 느낀다. 그리고 이상적인 이러한 일자리가 적은 지역은 청년인구 감소, 지역소멸 등 많은 소도시가 직면한 위기와도 이어진다. 좋은 일자리의 기준이 대기업 공채에 머물러 있는 한,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특정 공채에 사람이 몰리면 몰릴수록 운영되는 방식은 ‘선택’이 아니라 ‘배제’의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는 어쩌면 대졸신입공채보다 직무 중심의 수시채용방식으로의 변화는 긍정적인 출발점일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할 조건이 있다. 바로 중소기업이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거쳐 가는 일자리가 아니라 충분히 괜찮은 일자리, 확장 가능성이 있는 일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최근 ‘기업별 직무급’을 넘어 ‘사회적 직무급’이 제안되기도 한다. 임금의 결정권이 사회가 합의로 결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독일에서 운영되는 제도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상황은 다르며, 산업별 교섭까지 이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취업의 문제가 더 이상 개인의 선택과 문제가 아닌 사회적 비용을 함께 감당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을 상기해 보면 일자리와 임금제도에 대한 좀 더 다양한 상상력과 제안에 대한 논의를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오민정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공생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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