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의원만 뽑은 전북은 뜨거운 맛을 봐야 합니다” 만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이런 말을 했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사적인 술자리도 아니고 정부여당의 최고 책임자들이 모여 국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는 실제 있었던 엄연한 역사요, 현실이었다. 1989년 김용태 당시 국회 예결위원장은 이 말 한마디로 정국이 시끄럽게 되자 결국 사퇴해야만 했다. 전북에서는 망언이라고 들고 나섰고, 당시 DJ가 이끌던 평화민주당은 이 문제를 정치쟁점화 한 때문이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경북 안동 출신의 김용태는 훗날 4선 국회의원에 내무부장관,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지낸 정계 실력자였다. 예산안을 논의하던중 무심코 툭 던진 정계 실력자의 한마디는 실언이라고는 하지만 현실에 대한 상황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앞서 1988년 제13대 총선때 전북을 비롯한 호남은 소위 황색돌풍이 불면서 평민당이 싹쓸이 했다. 여론이 좀 잠잠해지자 그는 사퇴한 이듬해 다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으로 복귀한다.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먼 옛날의 에피소드로 여길 것이다.
그때로부터 무려 한 세대가 훌쩍 지났다. 그런데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던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김천)은 전북이 잼버리를 핑계로 총 11조 원에 달하는 사회간접자본 예산 빼먹기에 집중했다고 지적했다. 사석도 아닌 원내대책회의에서 집권여당의 실세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러한 정부여당의 인식은 왜 새만금 SOC 예산이 78% 삭감 편성됐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예산 편성권의 남용이라는 여론이 들끓고, 정부여당에 대한 설득작업이 병행되면서 내년도 새만금SOC 관련 예산은 상당 부분 부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지역사회에서는 이를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인데 물론, 살아난다고 해도 당초 정부편성안과는 비교가 안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기재부, 국민의힘은 물론, 용산까지 찾아다니며 실무자들까지 설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김관영 전북지사가 기재부를 비롯한 책임자와 실무 간부들까지 직접 만나 하나하나 설득하고 있으나 때로는 자존심 상하는 일도 없지 않다고 한다. 선뜻 반기는 이 보다는 만남 자체를 꺼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새만금 SOC 관련 예산에 대해서는 부정적 선입견이 많아 맨 땅에 헤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때로는 자존심 상하는 경우도 있는데 지역 살림을 책임진 도지사로서 어떻게든 예산 한푼이라도 더 따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면서 간곡히 호소한다는 후문이다. 엊그제 선관위의 총선 관련 선거구 획정안을 보면 나름대로 잣대가 있겠으나 전북의 입장에서만 보면 기가막힐 일이다. 인구 감소는 전국적인 현상인데 유독 전북만 1석이 줄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회 도처에 전북은 뜨거운 맛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가 보다. 안타깝고 통탄스러운 현실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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