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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동화] 우주 보안관이 된 우리 엄마 - 정종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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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성 화백.

 차가운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던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늘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엄마가 조심스럽게 수아를 불렀다.

 “수아야, 잠깐만 이리 와 볼래?”

 근처 간이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있던 수아는 그 말을 듣고 쪼르르 엄마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까치발을 들고 엄마에게 기댔다. 

 “왜 엄마?”

 “우리 딸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엄마는 앙상한 팔을 들어 창문 너머를 가리켰다. 

 창문 너머에는 환하게 빛나는 동그란 달이 떠 있었다. 달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꽉 채울 것 같은 은은하면서도 포근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저기 봐, 달이 예쁘지?”

 “응. 예쁘다.”

 엄마는 수아를 끌어안고 속삭였다. 

 “사실 비밀인데, 지금 저 달에 몹시 나쁜 외계인이 몰래 숨어있다?”

 “정말?”

  마침 스마트폰 게임 속에서 무시무시한 외계인이 반짝이며 화면을 가로질렀다. 

 엄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래서 지구에서 외계인과 싸울 수 있는 우주 보안관을 보낼 계획을 세웠어. 외계인과 싸워서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용감한 사람 말이야. 그런데 그 보안관으로 엄마가 뽑혔다지 뭐야?” 

 그 말을 들은 수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우주 보안관이면 나쁜 외계인들과 싸우는 거야?”

 “맞아.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커다란 로봇도 타고, 멋진 레이저 총도 쏘면서 외계인들과 싸우는 거야.” 

 엄마는 병원에 입원한 이후, 매일 같이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복잡한 기계를 주렁주렁 매단 채 검사를 했었다. 그런데 설마 그게 우주 비행을 준비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일 줄이야. 

 “그런데 오늘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는데, 엄마가 이제 곧 로켓을 타고 달나라로 갈 수 있다네?”

 “우와, 엄마 대단하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우주를 여행하는 만화영화를 본 적 있다. 우주는 지구와 달리 중력이 없어서 물건이 둥둥 떠오르고, 창밖으로는 언제나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곳이다. 

 “엄마, 나도 따라가도 돼? 응?”

 수아는 신이 나서 엄마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엄마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 수아는 아직 어려서 못가. 달나라에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는 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거든. 만약 수아까지 우주로 가면 아빠는 혼자 남잖아.”

 수아는 엄마의 말에 아빠를 떠올렸다. 

 아빠는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이후부터 웃어 본 적이 없다. 매일 같이 어깨와 허리를 푹 숙이고 울상만 짓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엄마를 따라 자신까지 떠나 버리면 아빠는 외로워서 엉엉 울지도 몰랐다. 

 “그럼 엄마는 언제 와?”

 “아주, 아아아주 나중에.”

 엄마는 이렇게 말하면서 창문 너머로 동그랗게 빛나고 있는 달을 가리켰다. 

 “대신에 엄마는 아주 좋은 망원경을 가지고 갈 거야. 그 망원경으로 달에 앉아 우리 수아가 뭘 하고 있나, 항상 지켜볼 거란다. 그러니까 엄마가 우리 수아가 잘 있나 늘 확인할 수 있게 매일 달을 보면 손을 흔들어줘. 알았지?”

 엄마는 수아를 꼭 안고 당부했다. 하지만 수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툴툴댔다. 

 “칫, 나도 달에 가고 싶은데. 엄마만 좋은 데 가고.” 

 “미안해. 엄마만, 우리 딸을 두고 엄마만 가서 미안해.” 

 엄마는 수아를 안고서 늦은 밤까지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미안하면 나도 데리고 가지. 수아는 엄마가 가리킨 창밖 너머의 달을 보면서 투덜거렸다.

 

*  *  *  *  *

  

 달나라로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엄마는 비쩍 말라갔다. 팔은 창밖 너머 나무처럼 앙상하게 말랐고 뺨은 홀쭉하게 들어갔다.  

 “엄마는 로켓에 타려고 일부러 몸을 가볍게 만들고 있는 거야. 몸이 무거우면 로켓이 날아가다가 떨어질지도 모르잖아.”

 엄마는 이렇게 말하면서 배시시 웃었다. 

 그런 와중에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언니들이 몇 번이나 엄마를 찾아왔다. 잘은 모르지만, 엄마가 곧 우주여행을 떠날 때가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어느 날 아침, 아빠가 수아를 깨웠다. 눈을 떠보니 병실 침대에 누워 있던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수아는 아빠 손을 잡고 병실 구석으로 향했다. 한 번 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몇 번이나 엄마를 검사하던 의사 선생님이 있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 뒤로 하얀 천을 뒤집어쓴 누군가가 보였다.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수아는 그게 엄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빠, 엄마는 이제 달나라에 가는 거야?”

 “응.”

 아빠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가벼운데, 달에 갔다가 휙 하고 날아가 버리면 어떻게 하지?”

 달은 지구보다 중력이 약해서 조금만 움직여도 높이 뛸 수 있다고 책에서 읽은 적 있다.

 지금 엄마는 무척이나 가벼우니, 잘못 하다가는 그대로 우주 너머로 날아가 버릴지 모른다. 

 수아는 걱정이 돼서 물었지만,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흥. 아빠는 엄마가 걱정도 안 되나 봐.” 

 괜히 심통이 난 수아는 아빠의 손을 놓고 무작정 바깥으로 향했다. 이유는 몰랐지만, 이곳에 있는 게 너무 답답했다. 

 그러다 수아는 병원 휴게실에 도착했다. 텅 빈 휴게실 안은 따뜻한 데다 푹신한 소파도 있었다. 

 “하암.”

 수아는 소파에 드러누워 하품했다. 안 그래도 아빠가 아침 일찍 깨워서 졸리던 참이었다. 수아는 꾸벅꾸벅 졸다가 스르륵 잠에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수아는 불연 듯 눈을 떴다. 

 수아의 눈에 어두컴컴한 휴게실 풍경이 들어왔다. 자는 사이에 밤이 온 모양이었다. 거기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 무서워.” 

 수아는 어두컴컴한 주위 풍경에 자신도 모르게 와락 겁이 들었다. 어두운 휴게실 안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들이 꼭 무시무시하게 생긴 괴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어, 엄마!”

 그리고 울먹이면서 습관처럼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도 수아가 부르면 항상 달려오곤 했다. 

 “엄마, 나 여기에 있어!”

 수아는 어둠 속에서 엄마를 애타게 불렀다.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엄마는 수아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수아는 뒤늦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냈다. 

 “맞다, 엄마는 달에 갔지?”

 엄마는 오늘 아침 로켓을 타고 달나라로 떠났다. 한 번 가면 돌아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지금쯤 분명 지구하고는 멀리 떨어진 우주 어딘가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엄마 미워! 나만 두고 달에 가고! 다른 친구 엄마들처럼 그냥 지구에 있으면 안 돼?”

 수아는 지금까지 꾹꾹 눌러 담아 왔던 서운함에 휩쓸려 엉엉 울기 시작했다.

 자신을 여기 두고 우주 보안관을 한다면서 달에 간 엄마가 너무 미웠다. 다른 친구의 엄마들은 달 같은 곳에 가지 않는다. 로켓을 타야 한다며 병원에 누워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엄마는 나를 두고 달에 가버렸다.

 이렇게 생각하니 수아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다. 

 그때, 휴게실 창문 너머에서 무언가 수아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아는 깜짝 놀라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엄마?”

 거기에는 새하얗고 동그란 달이 떠 있었다.

 달은 구름 너머에서 서서히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그러자 수아의 몸 위로 부드러우면서도 포근한 빛이 쏟아졌다. 꼭 달이 하얗게 반짝이는 은빛 손을 뻗어 수아를 쓰다듬으며 위로하는 것 같았다. 휴게실 안으로 달빛이 쏟아지자, 수아를 겁주던 그림자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수아는 그렇게 온몸으로 달빛을 맞으면서 한참이고 자리를 지켰다. 

 “수아야!”

 아빠가 휴게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아빠의 몸은 땀으로 가득했다. 

 “아빠!”

 수아는 달려가서 아빠의 품에 안겼다. 아빠는 수아를 꼭 끌어안으며 안으면서 말했다. 

 “여기에 있었구나! 한참 찾아 다녔어.”

  아빠의 품에서는 씁쓰레한 냄새가 났다. 아빠는 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우리 수아, 혼자 여기에 있는 게 무섭지 않았어?”

 “난 괜찮아. 저기 봐, 아빠!”

 수아는 아빠의 품에 안긴 채 창밖 너머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엄마와 언젠가 함께 보았던 달이 동그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어찌나 크고 밝은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그대로 코가 닿을 것 같았다. 

 “엄마가 저기서 좋은 망원경으로 날 지켜보겠다고 약속했거든. 엄마가 날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하나도 안 무서웠어.”

  어쩌면 이미 엄마는 달 위에 도착해 있을지도 몰랐다. 엄마가 말했던 나쁜 외계인들이 엄마를 괴롭히지는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뽑힌 우주 보안관이다.

 그런 엄마가 외계인에게 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지금쯤 엄마는 힘을 내서 외계인과 싸우고 있겠지?”

 수아는 창을 향해 쪼르르 다가갔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엄마, 봐봐. 나 아빠랑 잘 있어! 그러니까 나쁜 외계인한테 지지마! 알았지?” 

  수아는 달 저편에서 자신을 보고 있을 엄마를 향해 쉬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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