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중반,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 시에서 주민들이 집단으로 수은에 중독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미나마타 인근에 있던 화학공장들이 바다에 방류한 유기수은이 주범이었다. 금속 성분이 몸에 축적되어 수십 년 동안 진행되거나 수개월 안에 사망하기도 하는 미나마타병은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미나마타 시에서 발병했다 하여 같은 이름을 갖게 된 이 병은 구마모토현 안의 도시들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구마모토 도시들이 더 성장하지 못하고 추락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20여 년 지속된 추락의 시간을 멈추게 한 것은 호소카와 모리히로 지사였다. 1983년 구마모토현 지사로 취임한 그는 도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씻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정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1988년, 호소카와 지사는 뜻밖의 정책을 내놓았다. ‘풍부한 자연과 풍토를 살리면서 후세에 문화적 유산으로 남길 수 있는 우수한 건조물을 만들고’ ‘주민들의 도시문화와 건축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며 지역 발전을 이끌 구마모토만의 생활공간을 창조해나가는’ 정책. 도시 전역에 아름다운 건축물을 들여놓는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프로젝트였다.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공공 영구 임대아파트였다. 기존 임대아파트가 갖고 있던 획일적인 디자인과 주거의 양적인 측면만을 고려한 건축 방식 대신, 아름다운 디자인과 쾌적한 환경의 주거지를 주민들에게 제공하자는 것이 목표. 오늘날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도시의 관광상품이 된 <호타구보 단지>나 <신치 단지> 등 구마모토현청이 관리하는 서민 아파트 단지가 그렇게 탄생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건축물보다 오래된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변화와 재생의 힘을 불어넣는 <구마모토 아트폴리스>에 공공건축물과 민간건축물들이 지정되면서 도시는 스스로 빛을 낼 수 있게 됐다. 집합주택, 교육과 스포츠시설, 관광시설, 농업시설, 박물관 미술관 관공서 등 종류도 다양하고 공원이나 전망대 다리 같은 조형물과 화장실도 여럿. 역사적 건축물은 별도로 지정해 지역 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온전히 살렸다. 지금까지 추진된 건축물은 109개(2021년 7월 기준), 이 중 95개가 완공됐다.
주목하게 하는 것이 있다. 이 정책이 35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마모토현은 그사이 세 번이나 지사가 바뀌었지만,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변화되는 환경에 맞추어 더 적극적인 방식을 보완해 진행한다. 자치단체장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정책과 사업이 중단되거나 소멸하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저 놀랍고 감탄스러운 일일 터. 들여다보니 이 정책의 진정한 힘 또한 여기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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