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 의식을 내려놓고 도민들의 눈높이에 다가서기 위한 취지로 역대 도지사가 사용했던 관사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도민에게 돌려주는 게 도리다.” 김관영지사의 뜻에 따라 도민들에게 높고 큰 성역이었던 관사가 철문을 떼어내고 담을 낮춰 도민들이 문턱을 드나들 수 있도록 지난 5월 문을 열었다. 지사 취임 2년만이고 이 집이 지어진지 53년 만이다.
1971년 준공한 2층 단독주택. 도민들에게 환원하겠다는 원칙은 정해졌지만, 콘텐츠는 무엇으로 할 것이며 어떤 방향성을 가질 것인지가 결정되기까지 상당한 고민의 과정이 있었다.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의 역할과 한옥마을이란 관광지 안 장소로서 전북을 알릴 수 있는 복합적 기능을 담는다는 방향성에 의견이 모아졌고 결국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에게 어렵고도 무거운, 그래도 흥미롭고 해볼 만한 숙제가 던져졌다.
곧 바로 관사조성 TF가 꾸려졌다. 구도심에 위치한 타지역 사례에 비해 한옥마을 관광지 안에 위치하고 크지 않은 아기자기한 사이즈인 점을 최대 장점으로 살리는 게 포인트. 내부에서 이 고민을 이어가는 동안 외부의 도움을 받아 이 집의 이름이 찾기로 했다. 촘촘한 공모를 거쳐 “하얀 양옥집”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알고 보니 예전부터 동네 주민들이 불렀던 ‘하얀집’, ‘양옥집’의 새로운 버전이다. 과거의 이름이 50년이 흐른 후 오늘의 새 이름이 된 것이다. 관사를 도민에게 되돌려주겠다는 본래의 취지와도 일맥상통한다. 게다가 건물의 역사성과 미학, 사람들의 기억과 구술이 한 장소의 이름을 짖는 기준이 된다는 전문가의 의견과도 딱 맞아 떨어지는 걸 보니 정말 제격인 이름이다.
집을 보면 집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하는데 1, 2층 합쳐 100평이 채 안 되는 이 곳에 전북의 컬러를 어떻게 담을까? 먼저 콘텐츠 구성의 원칙을 정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상관없이 “어느 누구나의 곳”이어야 한다는 것. 이 점은 처음부터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가장 중요하게 꼽는 점이다. 도민 대신 “이웃”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로 하고 이웃 100명을 모았다. 책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인생을 공유하는 방으로 여러 이웃들의 인생책이 있는 곳이다. 세평 남짓의 제일 작은 방이지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 방문객들이 가장 좋아하고 오래 머무르는 공간이기도 하다. 바로 이 곳 “100인의 서재”가 하얀양옥집의 철학을 대표한다.
공간 구성의 가장 핵심키워드는 ‘조화’다. 한옥마을 안 양옥집이라는 이질적 충돌을 “양옥집 안 한옥” 콘셉트로 해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그래서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한지, 창살, 원목 등을 주요 소재로 사용했고 자개머릿장을 2층 메인 자리에 놓은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TF 구성 후 두 달여가 지나고 ‘하얀양옥집’이 문을 열었다. 지역 청년들의 <들턱 전(展)>으로 집들이를 마쳤고 지금은 우리가 사는 지역, 동네를 스케치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한창 진행 중이다.
“문턱을 넘어 첫 발걸음이 닿는 이 곳은 늘 새로운 일로 분주합니다. 과거, 휴식과 담소의 공간이었던 응접실에 이제는 작품 한 점을 걸고, 라디오와 TV 소리 대신 예술가의 연주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설레는 마음으로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늘 멋진 무언가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하얀양옥집에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이 글처럼 예술이 있고 사람으로 북적이는 공간이길, 문턱을 넘을 때마다 설레이게 하는 것이 우리 지역의 예술이길 바란다.
/임진아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문화예술본부장
△임진아 본부장은 전북대학교에서 가구디자인을 전공하고 미술관 큐레이터, 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업무에 이어 2016년부터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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