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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전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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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맞벌이로 바쁜 아들 부부가 여름휴가를 전주로 간다고 해서 귀를 의심했다. 내 고향이긴 해도 요즘 비행기 타고 가는 흔하디흔한 일본이나 제주가 아닌 전주라니. 할아버지 산소에 성묘하기 위해 간혹 고창에 간 적은 있어도 뜻밖이라 생각했다. 

나는 부안에 언제 가보았나 생각하니 아득하다. 간혹 격포에 있는 콘도에 하루 이틀 묵었던 적은 있으나, 정작 내가 태어난 부안읍에 간 지는 꽤 된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지금도 그 자리에 있을까 싶은 우리 집,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있는 신작로. 신작로(新作路)라니⋯. 50년 가까이 지났어도 여전히 내게는 근사한 ‘새로 만든 길’이다. 한여름 더위에 오래 서 있으면 신발 바닥이 뜨거워지고 도로 군데군데가 물컹해지는 아스팔트 포장도로였다. 그 길을 다시 걸어보고 싶다. 아무도 나를 알아볼 리 없고 내가 아는 가게나 사람도 없어 마치 외국 어느 도시를 걷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지만, 느릿느릿⋯.

성묘 때나 변산에 갈 때,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줄포나 선운산 IC로 나가기 전 오른쪽으로 부안이 보인다.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할 때는 김제를 거쳐 부안읍을 왼편에 두고 지나간다. 내가 처음 서울에 유학할 때는 전주나 김제에서 고속버스를 이용했다. 모두 합치면 5시간 넘게 걸렸다. 5시간이 4시간∙3시간으로, 이제는 2시간 반으로 줄었다. 신기록을 세우기라도 하는 양 휴게소도 들르지 않고 말 그대로 주파한다. 세 시간에 갈 길을 두 시간 반으로 당겼다고 해서 경제성, 효율성이 얼마나 더 올라갔을까? 이 좁은 땅에서 하루 생활권이면 족하지, 반나절 생활권으로까지 만들 필요가 있을까? 선거철 유세하듯 말이다. 

부안에서 김제나 전주로 가는 길은 오랜 세월을 두고 신작로가 많이 생겼다. 어떤 곡선도 직선보다 짧을 수는 없다는 법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신작로는 그렇게 생겨났고 옛 도로는 마을 길로 바뀌었다. 그 길은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다니고, 가을이면 고추를 널어 말리는 건조장으로 쓰인다. 그런데 길이 직선으로 나면 마음도 곡선에 머물지 않는 것 같다. 

오래전 모 정치인이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라고 말했다가 지역 주민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사과한 적이 있다. 이제 그 도시는 사천시로 편입되어 지도에서 사라졌다. 본래 도로의 기능이 시점과 종점을 연결하는 데만 있지 않은데도 서울, 부산, 광주 같은 큰 도시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삼천포에 빠진다는 말이 논란이 된 것이다.

지금은 전주에, 부안에 빠져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전주가 여수 가는 길목에 있거나 부안읍이 격포 가는 우회로의 배경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유럽 큰 도시의 중앙역은 대부분 열차가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도심을 관통하지 않는 것은 전통적 도시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것이겠지만, 그 도시에 머물게 하려는 뜻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전북에는 머물러야 할 매력적인 곳과 맛이 즐비하다. 멀리서 휙 지나가며 보거나 휴게소에서 맛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가수 장기하의 “느리게 걷자”라는 노래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 죽을 만큼 뛰다가는 /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도 못 보고 지나치겠네”

아들 내외가 전주에 흠뻑 빠지기를 기대한다.

추신: 17년 만에 ‘타향에서’에 다시 글을 쓰게 됐다. 독자 여러분께 첫 글로 인사를 드린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남형두 교수는 부안 태생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를 거쳐 2005년 이후 연세대 로스쿨에서 저작권법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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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두 #타향에서 #전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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