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노동자들의 대규모 강제노역이 이뤄졌던 일본 사도광산이 결국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일본의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군함도(2015년)에 이어 두 번째다.
군함도는 수많은 조선인이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던 섬이다.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따르면 1943년부터 45년까지 강제 징용된 조선인은 500~800여 명, 이 중 122명이 질병과 영양실조, 익사 등으로 사망했다.
군함이 떠 있는 것 같다 하여 ‘군함도’가 된 이 섬의 원래 이름은 하시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으나 석탄층이 발견되면서 19세기 후반, 일본의 대표적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가 탄광사업을 위해 사들여 탄광섬이 됐다. 군함도 탄광의 여건은 최악이었다. 가스 폭발사고에 노출되어 있는 데다 사람이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좁고 위험해 ‘지옥섬‘ ’감옥섬‘으로 불렸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생명을 위협받는 악조건 속에서도 12시간 채굴작업의 고통을 견디며 살아남아야 했다.
1601년 금맥이 발견된 이후 오랫동안 일본의 중요한 재정 자원이었던 사도광산도 태평양전쟁 당시 1,500명이 넘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동원되어 노역을 했던 현장이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군함도와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반대해왔다. 그렇다면 숱한 논란과 반대에도 이들은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것일까. 들여다보니 그 비결(?)이 있었다. 일본의 거짓 약속과 결국은 그들의 꼼수에 넘어간 한국의 협조다.
군함도는 등재될 당시 ‘조선인의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을 적시한다’는 조건이 제시됐다. 그러나 일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사도광산은 아예 ‘강제동원의 강제성’을 뺐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데도 사도광산이 한국을 포함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의 전원 동의로 등재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이 동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과 논란이 일자 외교부는 ‘전체역사를 알리는 시설물 설치를 성실히 이행하고, 이를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할 것’을 전제로 등재를 동의했다고 밝혔다. 일본이 답한 ‘선제적 조치’는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관 설치다. 그러나 지난 28일 문을 연 이 전시관이 다시 논란이다. 이곳 전시물 내용 어디에도 ‘강제성’이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역사적 실체를 숨기고도 전체역사를 알린다고 할 수 있을까.
정부는 ‘진전된 선제적 조치를 끌어낸 점에 의미가 있다’며 현실을 관망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불거지는 일본의 역사 왜곡을 마주하니 이런 의심이 든다. 우리 정부가 혹시 그들의 뒷배는 아닐까 하는./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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