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철이 눈앞인데 성난 농민들이 들판에 모여 논을 트랙터로 갈아엎었다. 끝 모를 쌀값 폭락에 좌절한 전북 농민들이 정부 차원의 대책을 촉구하며 절규한 것이다. 자식같이 길러온 벼를 갈아엎는 농민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는가. 지난 20일 익산시 춘포면 들녘에 모인 농민들은 ‘농민 생존권이 걸린 쌀값을 보장하라’고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쌀 80㎏ 한 가마 가격은 17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수확기에 비해 가마당 4만원 정도 하락한 것이다. 수확을 앞두고 농산물 공급량이 수요량보다 훨씬 적어지는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쌀값 하락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농민들의 근심이 깊다.
어느 때부턴가 우리 농민들은 풍년에도 웃지 못하게 됐다. 쌀값이 끝 모르게 추락하고 있는데도 마땅한 대책이 없다. 지난해 수확했던 쌀이 농협 창고에 그대로 쌓여 있어서 수매를 더 못할 지경인데,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쌀값 폭락 대책으로 21대 국회에서 야당이 주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폐기됐다. 그러면서 정부가 지난해 쌀값 20만원(80kg 기준) 회복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농협이 최근 ‘전국민 아침밥 먹기’ 릴레이 캠페인에 나섰다. 계속되는 쌀값 폭락으로 농가의 시름이 깊어진 가운데 그동안 별 성과도 없이 되풀이한 ‘쌀 소비촉진 운동’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이다. 농민들의 기대는 크지 않아 보인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닥친 심각한 위기다. 풍년 농사를 위해 막바지 구슬땀을 흘려야 하는 시기, 속절없이 떨어지는 쌀값에 농촌 민심이 예사롭지 않다. 농심이 다시 들끓고 있다. 쌀은 우리 민족에게 식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쌀 소비량이 크게 줄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쌀농사가 흔들리면 농업인의 삶은 물론 대한민국 식량주권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농업·농촌의 위기가 임계점에 달했다. 이대로라면 인구절벽 시대, 지방소멸의 비극은 농촌에서 시작될 게 뻔하다. 정부는 우리 농민들이 소중한 논을 왜 갈아엎고 있는지, 참담한 사정을 들여다보고, 근본적인 ‘쌀값 안정’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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