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마을 어귀에서 들리는 여름 새소리를 추억하던 소년이 청년으로 커서 전북대학교 법정대학에 이르렀을 때의 일입니다. 봄볕이 따사롭지만 아직은 쌀쌀한 무렵 신입생이라서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 건물을 오가며 1층 도서관에 둥지를 만들어 놓습니다.
대학에 들어왔지만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해서 가야 할 지를 생각하며 1학년 초반을 지나던 중, 청년은 1층 도서관에 놓아둔 검정색 책가방과 책들을 모두 도둑맞습니다.
청년이 망연자실하여 의자에 힘들게 기대어 있다가 도서관 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한 친구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합니다. . 하루, 이틀 지나서 몇 권의 다른 책을 들고 오가는 길에 그 친구가 청년에게 힘내라고 말하면서 검정색 가방을 건넵니다. 그 안에는 도둑맞은 책들을 새로 사서 넣어 둔 채로.
청년은 그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겸연쩍게 그 가방을 받아 들었습니다.
전공 서적 1권 사고 나면 시내버스 회수권(시내버스 승차권)을 사는 게 주저되어 걸어 다닌 일이 생생한 터라 너무 감사했습니다.
덩치 큰 익산 친구, 하얀 고무신 신은 춘포 친구, 중키에 점잖은 부안 친구, 작은 키에 체격좋은 부안 친구와 같이 어머님이 끓여주신 김치찌개를 단칸 셋방에서 나눠 먹으며 감사의 마음도 나누고 순전한 우정도 채웁니다.
청년이 미래 방향을 정하여 2층 도서관과 중앙도서관을 오가며 그 친구들과 같이 대학생활을 하며 꿈을 키웁니다.
덩치 큰 익산 친구와 하얀 고무신 신은 춘포 친구는 새벽 열차를 타고 걸어 다니고, 작은 키에 체격 좋은 부안 친구는 대학 근처에서 자취 하며 같이 어울려 소망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즈음 청년은 완산고등학교 1학년 때 헤어진 임실 친구를 대학에서 다시 만나 그 기쁨을 간직한 채 평생 법률 직역에서 같이 지내게 됩니다.
대학 근처에서 자취하는 중키에 안경 낀 김제 친구, 안경 낀 까무잡잡한 정읍 친구의 자췻방에서, 청년과 비슷한 키에 논리적 말솜씨가 좋은 남원 친구와 더불어 우정의 공간을 채워 갑니다.
한 친구는 시험 보러 다니는 청년의 단칸 셋방에 들러 어머님 몰래 청년이 서울이나 대전으로 시험을 보러 가는 데 들어가는 차비를 이불 속에 넣어 두고 갑니다.
그 어느 날 6월 항쟁 한 가운데 한 친구가 붙잡혀 갔는데도 법률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청년과 친구들은 분노를 삼키며 굵은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어머님께서 자주 끓여주시는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던 친구들과 1, 2살 아래 아우들이 어느 늦은 가을날 저녁 비를 흠뻑 맞고 눈물이 범벅되어 청년을 끌어안고 축하의 탄성을 지릅니다.
그들은 전북대학교에서 청년의 단칸 셋방까지 시오리가 넘는 거리를 차가운 비를 마다하지 않은 채 맞고 걸어와 밤새 많은 얘기를 나누다 아침에서야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 후 청년이 전주지방검찰청에 근무하면서 많은 친구와 아우들과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오래전부터 친구와 아우들과의 소중한 만남을 열어 주신 감사함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신 분께 드립니다.
청년이 장년이 되어서도 늘 선함과 배려, 의로움과 자애로움을 피어나게 인도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청년은 작고 빈한했지만 장년이 되어서까지 평생 같이 하는 친구들과 아우들이 많은 우정의 부자가 되어 있음을 마음에 심어두고 감사 기도를 붙잡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아나니아, 키루스 옆에는 고브리아스와 가다타스, 크리산타스가 있었고, 관중에게는 포숙, 백사에게는 한음, 청년을 지나 장년이 된 제게는 각 분야의 리더나 전문가가 되어 있는 친구들과 아우들이 있음을 깊이 사유해 봅니다.
/김석우 LKB&PARTNERS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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