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할머니처럼 구부러져 있는
내 고향 8월이면
뽀얗게 분 바르고 피어나는
간지럼 나무꽃
연분홍 흐드러진 사연 구슬프다
간밤에 떨군 꽃잎마다 다홍치마 손질하고 있다
꽃등 밝히고 떠나간 것들 그리워서
대쪽 같은 우리 사랑 쳐다보고 있을지 몰라서
사랑 그 꽃, 석 달 열흘 밝혔다
누군가는 아주 차갑게
누군가는 아주 뜨겁게 피고 지는 일상에서
나는 누굴 기다리며
이 밤 꽃등 들고 있는가
어디서 왔는지 조용히 앉아 산기를 겪고 있는 그림 하나
후련하게 만나지 못한 당신과 나의 후렴구처럼 다가온다
△ 간지럼나무꽃은 배롱나무꽃이다. 시적 화자의 고향에 피는 배롱나무꽃은 “떠나간 것들 그리워서” “대쪽 같은 우리 사랑 쳐다보고 있을지 몰라서” “여든 할머니처럼 구부러”진 몸뚱이에 “뽀얗게 분 바르고” 꽃 피워낸다. “석 달 열흘” 피어나는 저 꽃을 백일홍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백일’이라는 말은 ‘끝없다’라는 말, ‘백일’이라는 말은 ‘영원하다’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당신과 나의 후렴구”라는 말은 몇 절을 불러도 다시 돌아오는 곡조다. “배롱나무 전설”은 그래서 끝없고 영원한 기다림의 노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제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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