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조선의 내로라 하는 광대들 한자리 "감동 그 자체"
2009년 12월 4일! 조선의 내로라하는 광대들이 온고을(全州)에 모였다. 실로 얼마만인가?아니, 이렇게 조선의 광대들이 모두 모인 것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있긴 있었던가? 그들이 공연에 앞서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무대에서 사진을 남겼다. 실로 70년 만에 이 땅의 광대들은 사진 속에서 모두 하나가 됐다.올해는 서양에 생긴 일종의 잡귀(雜鬼)라 할 '신종플루'로 인해, 전 세계가 소란스러웠다. 급기야 이 땅의 신명난 축제도 판을 벌릴 수 없었다. 전주세계소리축제도 아쉽게도 무산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올해의 끝자락에서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4일 오후 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를 만난 건 무척 다행이었다. 이 공연은 '열림의식'인 열림무(전북도립무용단)와 함께, 조선의 광대에게 바치는 '축문(祝文)'을 낭독(김명곤)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김일구, 송순섭, 조상현 명창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그들은 동리 신재효(申在孝, 1812~1884)의 '광대가'를 바탕으로 소리를 들려주었다. 동리는 일찍이 광대의 네 가지 덕목(인물, 사설, 득음, 너름새)을 얘기했다. 이번 작품은 이런 광대가를 시작으로 해서, 과연 이 땅의 광대들은 어때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일종의 '신광대가'였다. 판소리는 물론이요, 경기민요(이춘희 명창 등), 서도민요(이은관 명창 등), 남도민요(박송희 명창 등)가 어울렸다. 소리의 개별적인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소리들이 감동 그 자체였다. 특히나 여류명창들이 남도민요를 들려 줄 때, 몸이 불편한 성우향 명창을 도와, 제자이기도 했던 김영자 명창이 추임새 등으로 흥을 돋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광대의 사제관계에 있어서 보필(輔弼)이란 무엇인지를 생각게 하는 훈훈한 자리였다. 지난 2007년 소리축제에선 '판소리 명인명가'란 이름으로 네 명의 여류명창(오정숙, 최승희, 성우향, 안숙선)의 한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이듬해 오정숙 명창(1935~2008)은 타계했다. 이번 무대를 지켜보면서, 오정숙 명창을 생각했던 건 나만은 아니었으리. 소리축제는 이렇게 판소리 공연사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해왔다.이번 무대에는 춤도 빠지지 않았다. 이매방(승무)과 김백봉(부채춤), 두 명무가 수제자와 함께 한 춤사위에서 처연한 느낌마저 들었다.'광대의 노래'에서 첫 선을 보인 '신광대가'(김태균 작시, 김대성 작곡)에선, 광대의 네 가지 덕목을 새롭게 얘기한다. 바로 풍류, 생명, 인간, 민족이다. 새롭게 만들어진 음악은 국악관현악(김재영 지휘, 경기도립국악단)을 바탕으로 해서, 판소리 독창(왕기철, 염경애, 김경호, 이주은)과 합창이 어우러진 대규모의 작품이었다. 합창은 전통발성(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과 서양발성(익산시립합창단, 대구그랜드에코오페라합창단)으로 나뉘어져 있다.가사와 곡조 모두 신경 쓴 것이 역력하나, 가사와 곡조의 밀착성이 조금은 아쉽다. 관객들이 자막의 도움 없이도, 가사가 귀에 보다 쏙쏙 들어왔으면 좋겠다. 우리말이 갖고 있는 장음과 단음, 강조되어야 할 단어가 자연스레 전달되었으면 금상첨화였을 거다. 무엇보다 음악적인 면에서 합창은 웅장해야한다는 전제는 벗어나야한다. 합창이 전체적으로 웅장한 것을 강조하다보니, 단아하거나 섬세한 시적(詩的) 정서가 더욱 그리워졌다. 판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경제적인' 예술이기도 하다. 소리꾼 하나, 북잽이 하나, 이렇게 두 명의 광대로 충분하지 않은가! 부채하나, 북채하나 들면 끝나지 않는가! 이런 판소리의 효용성을 생각한다면, 판소리에 바탕을 둔 음악에서도 절제는 미덕이 될 것이다.내년이면 전주세계소리축제가 10년이다. 소리축제는 전라북도의 대표적인 전통예술축제다. 타 지역사람들에게는 이 지역의 얼굴과도 존재다. 내년 소리축제에서 이 작품을 보다 더 다듬어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바라건대, '신광대가'에서 '시조(時調)' 한 수도 들었으면 좋겠다. 시조란 이름처럼 그 시절의 얘기를 담은 노래였으니, 어디 당시 광대가 그런 노래를 외면했겠는가? 소리축제의 10년을 결산하는 역작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광대의 노래'를 듣고 나니, 광대(廣大)란 두 글자가 더욱 화두처럼 다가온다. 이런 광대와 천지신명(天地神明)과 연결하고 싶다. 사전에서는 '천지의 조화를 주재하는 온갖 신령'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것이 첫 번째 뜻이라면, 광대와 연관 지어서 두 번째 풀이를 추가해야 한다. '천지의 조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신명을 갖춘 사람'이 바로 제대로 된 '광대'아니겠는가! /윤중강(음악평론가, 목원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