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가 닿는 감정과 속도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동기(원동력)가 있다. 무엇 때문에 살아가야 하고, 혹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싶은 이유 말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늘 내가 좋아하는 것과 이루고 싶은 소망이 가득 찬 사람이었다. 그렇게 내 삶을 계획하고 이뤄나가는게 유일한 기쁨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계획은 늘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 마치 나의 소망과 계획은 모래성처럼 파도가 치면 자꾸 무너지는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다져놓은 나의 작품이 이불처럼 덮쳐오는 파도에 휩쓸려가면 또 짓고, 휩쓸리면 또 짓고, 그렇게 무한 반복이었다. 가로막는 장애물이 너무 많아 더이상 머릿속에 도안을 그리기가 무기력해질 때쯤, 내가 생각해내는 것보다 앞서 잘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큰 설레임이다. 마치 해가 쨍쨍한 더운 날, 시원한 바람과 함께 바다가 발에 닿았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랄까? 장애를 경험했고, 앞으로도 경험해 나가야 하기에 깊이 경험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진실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바로 ‘장애이해교육’ 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누군가는 “이런 교육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선생님 저희 학교에 또 오세요!”라는 소중한 마음을 전해준다. 이러한 마음들이 교육의 가치를 존재하게 하고, 내 삶의 가치를 북돋아준다. ‘장애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며, 이상한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는 것’. 우리 교육의 슬로건이다. 교육을 거쳐가는 사람들의 머릿 속에 부디 이 한 문장만은 남아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식적인 이해보다 감정이 주는 ‘기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다. 더더욱 나와 관련이 있을수록 장애는 쉽게 받아드리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교육을 하면서 늘 기쁘고 좋은 감정만을 교류하지는 않는다. 결국 교육을 듣고 나면, 내 가족이, 친구가, 혹은 ’나‘라는 사람이 장애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인지하게 된다. 한 초등학교 친구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제 동생은 7살인데 눈도 잘 안 마주치고, 말도 못하고, 설명해주신 것처럼 혼자 똑같은 행동을 많이 해요! 그럼 제 동생도 장애가 있는 걸까요?” 별도로 몇 번의 질문을 통해 단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학생의 동생이 자폐스펙트럼 특징을 보이는 상황이었다. 이에 “선생님이 지금 확답을 줄 수는 없지만 아까 우리 함께 공부한 특징이 보이고 있네요? 이런 상황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면 부모님과 함께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라는 답변을 하자, 순간 질문한 학생의 표정이 너무나 슬퍼졌다. 장애가 틀린 것도 아니며, 나쁜 것도 아니며 그저 다른 것인데 그 다름이 때론 ‘슬픈’이 되는 것을 알기에 학생의 표정에 익숙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처럼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교육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각자마다 닿는 속도가 달라질 것이다. 누군가는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또 누군가는 혼란과, 슬픔과 수용의 시간을 지나 닿게 되겠지만 결국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 장애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며, 이상한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이 글을 통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부디 이를 경험하는 이들이 슬픔의 속도는 빠르게 흘러가고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은 아주 천천히 여유롭기를 바란다. / 윤해아 (사)사회적 협동조합 해시담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