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공감 2024 시민기자가 뛴다]모두에게 열린 문화예술, 접근성 확장을 위한 소중한 움직임.
최근 이색적인 축제 ‘포스터’를 접했다. 포스터란 어떤 사업, 공연, 축제 등에 대한 주요 정보가 시각 이미지화 되어 있는 것이니 당연히 ‘포스터를 보았다.’라고 하면 되는데, ‘접했다’라고 하는 것은 그 포스터가 조금 특별하기 때문이다. 바로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음성 포스터’이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매년 10월에 개최되는 한국의 대표적인 공연예술제로, 최근 몇 년간 장애와 비장애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축제 접근성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음성 포스터’와 같은 홍보물 제작과 접근성을 돕는 매니저를 배치하고 있다. ‘음성 포스터’는 목소리와 음악, 효과음을 통해 청각적으로 전하는 홍보물이다. 눈을 감고 영상에서 들려주는 포스터의 이미지를 상상해 본다. 정확하면서 사려 깊은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이성수, 장근영 배우라고 한다. 음성 포스터는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정보를 설명하고 있고, 청각이 아닌 시각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본 음성포스터는 온라인에서 '2024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메인 음성 포스터'로 검색하면 볼 수 있다. 포스터를 통해 호기심이 높아진 김에 서울공연예술축제 홈페이지를 열었다. 이 축제에는 ‘모두에게 열린 접근성’이 매우 중요한 화두로 보인다. ‘티켓’ 예매를 안내하는 부분이 아예 ‘티켓/접근성’이라고 표시되어 있고 이렇게 접근성 매니저에 대한 안내문이 있다. 「2024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모든 공연 현장에 접근성 매니저가 상주하고 있으며, 가까운 지하철역, 정류장 및 공연장 내부의 이동지원을 진행합니다. 이동지원 신청을 비롯한 접근성 안내/문의가 필요하신 경우, 아래의 연락처로 편하신 방법을 통해 연락주세요. 」 다소 생소한 ‘접근성 매니저'에 대한 안내를 비롯해 본 축제의 프로그램 홍보, 예매, 현장 방문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구성된 내용을 보면서 담당 기획자들이 얼마나 많은 질문을 스스로 하고 찾으면서 고민했을지 상상이 되었다. 접근성 기획자는 스스로 ‘대다수 비장애 성인의 신체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온 세상을 접근성의 관점에서 다각도로 살펴보고, 다른 대안과 가능성을 고려하는 일을 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성심껏 안내하고 있는 하나하나에는 만약의 경우에 발생하는 귀찮은 업무나, 오해, 무리한 요구에 대한 염려보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문화예술을 동등하게 향유할 수 있음을 우서 실천하자는 의지가 담겨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시도들은 종종 있어왔다. 그러나 그 확장과 지속성은 아무도 약속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약 20년 전 시각장애인을 돕는 안내견의 공연장 출입을 위해 관객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설득했던 일이 있었다. 당시 시각 장애가 있는 관객이 교육받은 안내견을 실내공연장까지 동반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 시범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단순히 의미있는 사업이니 모두가 적극적으로 동참하리라는 필자의 예상과 달리 안내견이 공연장에 입장하는 것에 대한 불편해하는 관객들이 많았다. 교육된 안내견은 공연 내내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체가 공연장에 출입하는 것은 그때도 지금도 특별 이벤트처럼 계획되고, 홍보성으로 이슈화 될 때만 가능하다. 시도는 있었으나, 이벤트로 마감된 것이다. 작년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도 탈춤 창작 공연단체인 천하제일탈공작소의 <오셀로와 이아고>라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 작품을 초청했다. 탈춤 예술가들은 본래 전통 탈춤이 남녀노소, 장애유무를 떠나 모두가 함께하는 대동의 판이라는 생각에 배리어프리 즉 무장애 공연을 개발했다. 무대 위에 탈꾼들과 수어 통역사를 1:1로 연결하거나, 장면의 분위기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문자 통역, 오픈형 음성 해설을 통해 누구나 차별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특히 이 공연을 위해서는 축제 스태프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공연장 시설 접근성 워크숍’을 선행했어야 하는데, 그 진행방식도 흥미로웠다. 전주권 장애인 단체(휠체어 이용) 회원 1인과 소리축제 스태프, 자원봉사자가 팀을 이루어서 체크 리스트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진행이 되었다. 체크 리스트는 주로 ‘찾아오는 길’ 안내 상황, 공연장 건물 알아차리기의 어려움과 쉬움, 출입구의 점자블록 상태, 경사로나 계단 단차 높이 확인하기, 음성 안내판 여부, 휠체어 진입 동선이나 매표소 위치 찾기와 공연 홍보물의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 제공 여부, 화장실 찾기 등이었다. 이 문항들은 장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 문항들이었지만, 장애인 활동가들과 팀을 이뤄서 축제 현장을 확인한 스태프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저희 축제 장소는 장애인 관객들에게 매우 불편한 곳이었네요. 000공연장은 아예 휠체어 관객이 공연을 볼 수 있는 각도가 아니었어요. 휠체어가 5대는 들어갈 것 같은 공간에 조금 큰 특수 휠체어가 들어가니 공간이 너무 부족했고요. 주차장부터 티켓 수령, 극장 진입까지 너무 동선이 길어요. 이렇게 불친절한 공간인지 몰랐어요.” 장애가 없는 사람들만 다녔다면, 크게 느끼지 못했을 어려움이 서로 한 팀으로 이동하면서 매우 절실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입구의 단차는 어린아이에게도 높지 않았지만, 휠체어가 넘어가기에는 힘이 들었고, 처음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은 넓은 축제 현장에서 해당 공연장을 찾아가는 것이 힘들었다. 더군다나 야외 안내판은 오랜 세월 속에 알아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익숙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불편함이 없었기에 수정할 계획도 세우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공연을 기획했던 천하제일탈공작소 기획자는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의 어려움, 그리고 공들인 만큼의 효과나 성과가 미비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이러한 작업이 결코 한 번으로 완벽해지거나 정해진 해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그 활동의 가치를 꾸준히 발견하고 태도와 상황을 발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들의 이러한 고민은 작년에 이어 2024년 신작에도 투영되었고, 올해는 참가 탈꾼들이 직접 수어를 배우고, 단체 내에 장애인 예술가를 고용하는 것으로 확장되면서 관객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참여 부분까지 진행하고 있다. 서두에 거론한 접근성은 장애인을 ‘관객’이라는 대상으로 장소적, 이용자 입장으로 보았지만, 접근성이라는 것은 천하제일탈공작소에서 장애인 예술가와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을 포함에 모든 분야와 입장에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우리 지역에서는 완주의 정신장애인 문화공동체 ‘아리아리’가 2018년부터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데, 동네 이웃 사진 찍어주기, 음악극 공연, 악기연주, 천연염색, 시 낭송 등 분야도 다양하게 ‘직접 하는’ 문화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수준 높은 예술작품은 아니지만, 문화예술을 통해 자신의 능력, 취향, 즐거움을 알아가고 이를 통해 자주적인 움직임을 익히고 타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모습에 희망을 갖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리아리의 김언경 대표를 비롯하여 활동가들은 다양한 경험을 돕는 아리아리만의 ‘접근성 매니저’였을 것이다. 최근에는 모든 장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하고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라는 용어 대신 ‘배리어 컨셔스(barrier conscious, 장벽을 의식하는)’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대안이 거론된다고 한다. 장벽을 완전히 허무는 게 불가능하니, 장벽을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예산, 시설 여건, 인력을 핑계로 접근성에 대한 요소를 포기한 순간들이 떠오른다. 이러한 활동은 결코 특별한 참가자 전부를 위한 혹은 40~50%를 위한 양적인 성과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기관 혹은 구성원의 운영 방향성이 중요하다. 직접 혜택을 받건, 동참하고 공감하는 입장이건 서로 다른 상황을 수용하고, 포괄적인 범위에서 마음을 모아야 개선할 수 있다. 지난 여름 소리축제 현장에 방문했던 완주 ‘아리아리’ 회원들과 관현맹인전통예술단 회원들은 즐겁게 공연을 보았을까. 늦었지만, 복잡한 축제 현장을 찾은 그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한지영 (사)전주세계소리축제 콘텐츠운영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