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정권과 언론, 그리고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진시황제가 죽자 환관 조고가 권력을 좌지우지하며 권세를 과시하는 과정에서 나온 고사성어이다. 권세를 부리며 진실을 농락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얼마나 권세가 무서웠으면 사슴을 사슴이라 못하고 말이라고 해야 했을까. 이번 정권 들어 대통령을 위시한 통치 권력과 언론의 갈등이 자주 불거지고 있다. 그럴 때 마다 대통령과 그 주변 권력의 대응은 날카롭고 위협적이다. 비속어 보도 관련 MBC에 대한 외교부 소송, 법무부 장관 명예훼손 이유로 KBS 기자 불구속 기소,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한 시민언론 민들레 압수수색, 장관 자택방문 취재한 시민언론 더탐사에 대한 압수수색과 기자 구속영장 청구, 역술인의 대통령 관저 개입 의혹 보도 한 뉴스토마토와 한국일보 기자에 대한 형사 고발 등.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진위를 따지며 대응하기 보다는 감사, 고소고발, 압수수색, 구속영장 청구와 같은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검찰정권의 면모를 언론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몇 가지 효과들이 나타난다. 첫째는 의혹이나 잘못에 대한 사실 관계 이슈가 특정 언론사의 문제로 전환된다. 이슈가 바뀌는 것이다. ‘바이든/날리면’과 비속어 사용 문제로 불거진 MBC 압박이 대표적이다. 전용기 탑승 배제, 감사원의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조사, 외교부의 소송이 이어졌다. 여기에 정부여당이 사장퇴진 요구, 광고배제 종용, 편파언론 낙인찍기 등으로 가세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된 애초의 이슈는 이미 저만치 지나가 있다. 둘째는 언론의 위축 효과이다. 다수의 언론사가 동일 이슈를 다루었건만, ‘최초 보도’를 빌미삼아 특정 언론사만을 겨냥한다. MBC에 대한 압박이 그러했고, 뉴스토마토와 한국일보 기자에 대한 형사고발 역시 같은 방식이다. 속칭 ‘한 놈만 팬다’는 식의 대응이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할 말 못하는 언론은 없겠지만, 자기 검열과 같은 위축 현상이 나타난다. 셋째는 전략적 봉쇄 효과이다. 고소고발, 압수수색, 구속과 같은 법적 행정이 진행되면 심리적 경제적 부담과 비용이 수반된다. 구속이나 기소가 되면 순식간에 일상이 파괴되고, 해당 언론사와 언론인에 대한 낙인효과까지 일어난다. 특히나 소규모 언론사의 경우에는 향후 언론사 운영과 취재 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언론 활동 자체가 봉쇄되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언론윤리의 문제로 접근하면 될 사안들마저 압수수색, 구속영장 청구로 대응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효과들은 권력의 입장에서 보자면 흐뭇할 수 있겠지만, 언론자유 및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는 매우 위험스럽고 불행한 일이다. ‘자유’를 강조하는 대통령이 이러한 비판들에 귀 기울여야 하건만,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하다.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주어야 한다”며 언론 대응을 주문한 대통령의 발언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옥죄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줄 세우기, 길들이기가 현 검찰정권의 언론관이다. 그렇다면 언론 역시 고민해야 한다. 감시견이 될 것인지, 애완견이 될 것인지. 사슴을 보고 사슴이라 말 못하는 ‘지록위마’의 사태까지 가지 않아야 한다. 시민사회가 눈 부릅뜨고 지켜보며, 함께 할 일이기도 하다. /김은규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