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김성민 작가의 ‘默展(묵전)’
제목으로는 한문으로 默(묵)이라고만 써놨으니 침묵을 연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침묵을 강요하는 것인지 동조를 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소 성격으로 봐서는 강요일 것이라 생각된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4×8짜리 합판 4장을 세로로 이어 붙이고 그 위에 캔버스 천을 이어 붙여 화면을 만든다. 4x8 사팔짜리 합판이고 한 자가 대략 30cm이니 120x240의 크기를 세로로 이으면 가로, 세로 480cmx240cm의 크기다. 전시장에 걸려 있으면 캔버스를 응시하는 것만으론 위압감을 느끼게 된다. 천장이 높아 100호의 캔버스 크기가 마치 소품처럼 여겨지는 것으로 유명한 우진문화공간이라 수용이 가능하지 다른 전시장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물론 默(묵)의 뜻이 그게 아님을 잘 안다. 이 시끄러운 세상을 향한 외침내지 각 개개인을 향해, 아니면 자기 자신을 향해 외치는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의 담대한 생각의 규모는 그의 키만큼이나 높고 넓은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풍경보다는 인물화를 즐기던 그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엄청난 술꾼 시인의 초상, 숙취 상태의 모습을 그린 일이 있었는데 그림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던 것을 느낄 만큼 기교나 심리분석이 탁월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갯벌을 그리겠다며 갯벌의 진경을 보기 위해 서해안 일대를 헤매고 다닌다는 말도 들었다. 차도 없던 시절, 그는 변산, 곰소, 부안, 군산 등을 다니는데 몇 시쯤, 어느 곳이 기막히더라고 하길래 너희 선배 화가의 단골 소재가 갯벌이다. 그런데 네가 또 그리면 되겠느냐는 질문에 그 선배 화가에게 허가를 구하니 “그 갯벌이 내꺼간디”라며 흔쾌하게 허락받았다면서 밝게 웃었던 일이 엊그제 같았다. 오늘 보니 그 선배 화가와는 달리 갯벌과 갯벌 그 너머에 있는 물결이 함께, 또 그 너머에 아스라이 있는 수평선까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 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까지. 원광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왜 비싼 등록금을 들여가면서 대학원까지 다녔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대학 강의는 물론 자기 작업실에서조차 학생을 가르치지 않고 오로지 혼자 막걸리와 더불어 작업만 했다. 재정 형편이 그리 유쾌하지 못한 그는 거의 6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오직 막걸리 3병과 함께 출근해 하루를 붓과 함께 보낸다. 그의 전시 경험에는 테라코타 展(전)을 해서 조각가들을 긴장시켰던 일도 있고, 청계천에서 흑연을 잔뜩 구입해 흑연을 문질러가며, 문지르는 횟수만큼 다양한 광택이 변하는데 그런 단색화만으로 인물화를 했으리만큼 실험정신도 충만하다. 그가 조금 더 젊었을 때는 공모전이 아니어도 다른 선배 화가들의 심사로 진행되는, 예를 들면 청년 미술상 등의 여러 수상 기념전을 했을 만큼 경력도 화려해 다른 화가들로부터 질시와 찬사를 동시에 받았지만 올곧은 성격으로 흔들리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미술선생은 화가가 아니다”랄지, 또는 “술도 못하면서 무슨 그림을 그린다고 하느냐?”는 지론으로 유명한 그는 전시회 첫 날인 오늘도 전시장을 비우고 근처 가게에서 기분 좋게 취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