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건축기행] 대구 사유원
숨 가쁜 도시의 삶에서 찾아갈 수 있는 마음의 쉼터, 품위와 격조를 갖춘 오롯한 공간과 장소를 생각하게 된다. 수목 원림 물 바위 언덕 바람 계절의 자연 속에서, 뭐라고 정의할 수도 없는 사유적 이름의 건축과 공간들을 사색하게 된다. 30여 세월을 땅과 나무를 아우르고 공간을 설계하여 고전의 뜻을 현대 삶에 새기고자 하는 사유의 정원, 사유원(思維園)은 2021년 9월 세상에 펼쳐졌다. 지난해에 팔공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신공항 예정지 군위군은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다. 팔공산 아래 터널길을 지나서 청평 못 기슭 사유원은 도시에서도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사유원은 자연 수목원이 아니라, 건축 공간이 있는 수목공간원(樹木空間園)이다. 2018년 프리츠커상 건축가 포르투갈의 알바로시자 건축(3 작품, 카를로스 카스타네 공동), 한국 대표 건축가 승효상 건축(9 작품), 최욱 박창렬의 건축과 지금 국립미술관에서 초대전이 열리고 있는 전영선의 조경, 고기영의 조명, 중국 서예가 웨이량의 작품들이 새겨져 있다. 알바로 시자와 승효상의 건축 공간을 따라서 사유해 본다. △비움에서부터- ‘극도의 비움에 이르러 지극한 평온을 지킨다’ 도덕경 제16장 구절을 일깨우는 치허문(致虛門)은 입구의 정문 건축이다. 여기서부터 머릿속을 텅 비우라고 이른다. 이곳은 팔공산 북쪽 3 능선 2 계곡 지형의 30만 평의 산지이다. 18곳의 건축과 장소, 11개 산책로 의미와 뜻을 사유하면서 능선과 계곡을 걷게 된다. 4시간여 사유의 순례길을 내려서 치허문을 나서면 새로운 채움이 도시로 향하게 할 것이다. △소요헌 (逍遼軒)- 입구에서 ‘꼬부랑길’을 오르면 알바로 시자의 소대(전망대)가 우뚝 서 있고 소요헌(아트홀)이 길게 누워있다. 그의 3개 작품은 대학 캠퍼스를 제외하고는 사유원이 유일할 것이다. 북측 긴 벽 선형 흐름에 따라서 진입하게 된다. 출입문도 유리창도 없는 어둑한 콘크리트 동굴은, 시간과 빛과 음영에 의해서 익숙해진다. 두 갈래 길, 직선의 큰길과 곡선의 작은 길, 그 사이가 이루는 외부의 중정, 가로지르는 길의 연결로 구성된다. 빛의 밝기에 따르게 된다. 큰길은 점점 높아져서 빛의 정점 조형에 이르고, 작은길은 낮아져 ‘생명의 알’에 이른다. 이 건축은, 마드리드 오에스테 공원에 피카소의 명작(게르니카, 임신한 여인) 전시를 위한 가상 프로젝트였다 한다. 설계도가 잠자고 있음을 알게 된 설립자의 오랜 설득으로 이곳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스페인전쟁 게르니카 폭격과 한국동란 낙동강 전투의 격전지는 생명, 죽음, 순환의 공감대로 연결되어서 이 땅의 건축으로 새겨졌다. 게르니카 참상을 말하는 빛의 정점에 매달린 붉은 철 조형물, 생명의 알, 긴 나무 벤치 작품 모두는 건축가의 작품이다. 포르투대학 조각과로 입학하여 건축과로 전향한 그의 작품 세계를 펼친 아트홀이다. 입구의 작은 북카페(요요빈빈)에는 작품집, 모형, 벽 천정에 컨셉 스케치와 누드크로키가 있다. 커피와 함께 애매한? 건축의 시를 음미하는 공간이다. △소대 (巢臺) - 대자연 속의 낮은 건축들에 비하여 키가 높은(20,5m) 전망대이다. 팔공산을 향한 그리움의 몸짓처럼 15도 기울임이다. 빛없는 어두운 계단을 돌고 돌아 탑을 오른다. 불규칙의 개구부는 각 향을 바라보는 세 개의 눈이며 새 집(巢臺, 제비집이 있다) 출입문이다. 오름의 절정은 펼쳐진 대자연을 바라보는 전망 테라스이다. 소요원을 건축하고 나서 높은 전망대 세우기를 간절히 부탁했다는 건축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겠다. 낮음과 높음, 근경과 원경, 소자연과 대자연의 상응이다. 멀리서 보는 전망대는 나무숲 초록 바다에 머리를 내민 하얀 등대이다. △내심낙원 (內心樂園) - 사유의 순례길에서 만나는 작은 성소(聖所)는 알바로 시자 설계의 가장 작은 종교건축일 것이다. 북쪽 경사지에 선명한 기하학 조형은 육면체와 삼각형의 내부 공간으로 나타난다. 마음의 정원(內心樂園)의 묵상과 명상을 이끄는 빛의 근원은 정면 위 우연한 창, 아침 햇살의 영적 궤적을 설계했을 것이다. 근대기 한국 가톨릭계의 지식인 김익진(설립자의 장인)과 그와 영혼의 우정을 나누었던 차메우스 신부를 기리는 경당이다. 두 영혼의 삶을 기록한 ’두 아버지의 정원‘이 함께 헌정되었다. △현암 (玄巖) - 건축가 승효상은 설립자의 생각을 함께하며 건축을 성찰하고 공간을 순례하듯 사유원을 설계하였다. 현암은 산마루 중심 자리에 지어진 사유원 첫 번째 집이다. 자연 풍광이 장대하게 펼쳐지는 집은, 팔공을 바라보며 반 층 올라서 옥상 전망 마루에, 반 층 내려서 실내에 이르는 스킾 플로어 단면이다. 집의 높이를 완충하여 바위처럼 묻히기도 하고, 대자연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3면 유리 건축은 자연에 돌출하기도 한다. 이어지는 능성에는 금오산을 바라보며 금오유현대(金烏幽玄臺), 갈대밭 별유동천(別有洞天)으로 이어진다. △명정 (暝庭)- 좁은 계단을 따라 시간을 길게 돌아서 내려오면 땅의 아래 피안의 공간이다. 지상에서 보아왔던 풍경들을 잊어버리는 정지된 시간 침묵의 공간 명상의 정원(暝庭)이다. 물을 사이에 두고 벤치에 앉아 건너편을 바라보면 붉은 벽을 마주하며 사방 벽면 디테일은 각각 표정을 달리하여 건축의 벽으로 바라보게 한다. 좁고 절제된 길, 수도원 성소의 부속실 켜와 좁은 계단을 걷게 된다. 벽으로 둘러서 쌓인 장방형 땅의 아래 공간 위에는 하늘이 있고 구름만이 흘러간다. 좁고도 가파른 계단으로 다시 지상의 세상으로 나오면, 멀리 산들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다. △풍설기천년 (風雪幾千年)- 사유원 탄생의 원초적 공간이다. 일본으로 밀반출되는 모과나무를 이곳 땅에 되살리고 500여 년 성상 108그루 모과나무의 6,000평 정원이다. 올라가는 길에서는 무표정한 회색 긴 벽이 시선을 가로막는다. 벽을 돌아서 길게 우회하는 좁은 길은 신천지에 이르는 과정, 좁은 길을 벗어나면 놀라움에 경탄하게 된다. 연못 위로 펼쳐진 기천년 정원이다. 벽을 기댄 데크, 연못과 바위, 코르텐 강판은 모과나무 세월의 배경이었다. △와사 (瓦寺)- 정자(亭子)가 앉아 있을 자리에 누워있는 절(瓦寺) 수도원이다. 누워있는 부처(와불)의 몸통에 들어와 있는 듯한데 명상의 수도원이라 한다. 계곡을 따라서 몸을 낮춘 코르텐 강판 구조의 마디마디. 바닥의 레벨에 따라서 내부 공간 분위기와 밖의 풍경을 달리한다. 천정의 작은 구멍으로 걸러진 햇살의 방, 수직 루버 사이 긴 그림자의 방에서는 생각도 달리하는 방인가?. 이곳에서는 잠시 누워 육신의 피곤함에 대하여 사유해야 할 것 같지만 하산의 시간을 사유해야 한다. △건축주와 건축가의 만남 좋은 건축 탄생은 건축주와 건축가의 좋은 만남이 첫째이다. 인문 예술적 소양을 지닌 유재성 회장은 건축가를 비롯한 예술가들과의 교감으로 사유원을 탄생시킨 좋은 건축주이다. 사유원 이전, 그의 건축 안목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디자인이 특이한 사옥과 공연 강당, 정원, 식당은 품격있는 응접실이었다. 공장 벽면에는 마티스 대형그림이 있었다. 선대부터 지켜온 작은 집 거실벽의 디지털 족보에서 올곧은 선비정신을 보았다. 사랑채 모헌(某軒)을 지으며 건축가 조경가와 쌓았던 교감이 사유원의 바탕 그림이 되었을 것이다. 켜 공간 사랑채와 정원 에서 예술 담소는 개인적 취향이라면, 사유원 설립은 평생 꿈을 세상에 나누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일 것이다. 최상대 /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