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과 총선 이후 전북정가
임진왜란때 한산도 해전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에 대패했고, 이후 정유재란때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을 역습해 섬멸했으나 명량해전에서 또다시 이순신에게 참패했던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가장 존경하는 사람도,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도, 가장 차를 함께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자신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안긴 적장이기에 죽이고 싶도록 미웠으나 동시에 존경하는 심정으로 차 한잔 하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 이었음을 웅변하는 명구다.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라이벌이 있기 마련이다. 김대중과 김영삼이 평생 그러한 관계였음에 틀림없다. 꼴보기 싫은 라이벌이 있었기에 더 단련되고, 성장한 대표적인 경우다. 군사독재시대를 연 박정희나 그의 유산을 물려받은 전두환 역시 김대중, 김영삼 이라고 하는 미운 정적이 있었으나 끝내 죽이지는 못했다. 총칼이나 돈으로도 민심을 등에 업은 이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교훈을 준 대표적 사례다. 비단 정계거물만 골리앗 같은 거대권력을 이기는게 아니다. 사소해 보이는 민초의 저항 하나가 둑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많다. 며칠전 눈에 확 들어오는 소식이 있었다. 1980년 5월 18일 미명에 숨진 전북대생 이세종 열사가 5·18 민주화운동의 첫 희생자로 공식 인정된 것이다. 광주가 아닌 김제 출신 전북대생의 첫 희생은 무려 44년만에 5.18의 역사가 다시 씌여져야만 할 상황이다. 전두환 군사독재의 붕괴는 6월항쟁에 앞서 어쩌면 이세종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4.19의 직접적인 계기는 3.15 부정선거였으나 화약고에 불을 붙인 이는 남원 출신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이었다. 최고 권력자의 라이벌은 야당 정계 거목뿐만 아니라 김주열과 이세종 등으로 대표되는 의협심 강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또는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이재명 대표는 백척간두에 선 채 칼날을 겨누고 있다.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 싸움이다. 범위를 극히 좁혀 전북에 국한하면 민주당 공천이 마무리되면서 완산을 정도를 제외하곤 승패에 관심 가질만한 곳이 거의없다. 문제는 총선 이후 전북정가의 지각변동 여부다. 기존 역학구도에 상당한 변화가 오면서 2년후로 다가온 도지사, 전주시장 등 단체장 선거가 화두로 오를 수밖에 없다. 몇몇 현역의원의 기득권 유지와 현역을 대신한 올드보이의 귀환이 혼재하고 있는게 총선 이후 전북의 역학구도라고 할 수 있다. 친명 핵심도 없고, 반명 핵심도 없기에 총선 당선자들의 길항작용속에서 나름의 질서가 재편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미우면서도 또 한편으론 존경스러운 라이벌과 싸워가는 드라마를 보고싶다. 물론 대결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영광이 아닌 주민을 위한 봉사여야 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