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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상해입신회계금융학원과 실질 교류 강화

전북대학교(총장 이남호)는 지난 21일 중국 금융과 회계 분야 중점 대학인 상해입신회계금융학원(Shanghai Lixin University of Accounting and Finance) 당해연 총장 등 방문단이 전북대를 방문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대학은 중국 상해시 관할 공립대학으로, 1928년 개교해 올해 9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전북대와는 2015년 공식 교류협정을 체결한 이래 우호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방문단은 정성석 전북대 대외협력부총장과 보직교수들을 접견해 우호증진 방안을 논의 한 뒤 대학 주요시설과 대학병원, 학생생활 관등 주요 시설을 돌아봤다. 당해연 총장은 총장 취임 후에 첫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했고 그 중에서도 우호 자매대학이자 한국 내 최고 명문 대학인 전북대를 방문하게 돼 더없이 기쁘다며 양 대학이 긴밀히 협력해 함께 발전해 나가는 동반자 관계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성석 대외협력부총장은 상과대학 중심에서 이어져 온 상해입신회계금융학원과의 교류가 향후 수학이나 통계 등 더욱 다양한 분야로 확대해 나가길 희망한다며 현재 전북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국 대학 교원의 박사과정 진학 프로그램 및 기타 프로그램에도 상해입신회계금융학원이 적극 참여함으로써 양교 간의 실질적인 교류의 폭도 넓혀 나가자고 제안했다.

  • 대학
  • 백세종
  • 2018.11.22 20:01

제19회 전북시인상 수상한 우미자 시인 “시는 아픔에서 나와 황홀함 주는 보석”

시는 저에게 슬픔이며 동시에 기쁨이고, 절망이면서 희망이고, 그리고 사랑이며 아픔입니다. 슬픔 속에서 피어난 시는 새로운 기쁨을 주고, 말라르메가 표현한 백지의 고통처럼 처절한 고통과 고뇌 속에서 피어난 시는 아름다운 희열이 되곤 합니다. 시는 서글픈 아픔 속에서 나와서 황홀함을 안겨주는 보석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시적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언어구사의 능숙함을 높게 평가받아 제19회 전북시인상을 수상한 우미자 시인. 우 시인은 지난 1983년 월간 <시문학>을 통해 등단해 35년간 시인의 길을 걸어왔다. 달이 중천에 둥두럿이 떠서 산사 풍경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데 잔설이 묻어있는 대숲과 바람소리, 맑은 밤하늘과 산 능선 그리고 전각들의 고요함, 이런 모든 것이 어우러져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나는 추운 줄도 모르고 말없이 오래 서 있었습니다. 우 시인의 등단작 내소사 연가는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또 우 시인은 1989년 첫 시집 <무거워라 우리들 사랑>을 출간해 시집이 담긴 종이상자들이 배달되어 온 그날 그 밤은 흐뭇하고 기뻐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공중 그네를 타본 사람은 알지 / 잡고 있던 그네를 놓아야 / 다음 그네가 온다는 것을 (수상작 공중 그네 중 일부) 그는 공중 그네를 통해서 다시 한번 문학의 삶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고백했다. 더욱 연륜이 묻어나는 깊은 시, 생을 더 사랑하며 보듬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그는 향후 작품 계획에 대해 2~3년에 걸쳐 다섯 번째 시집을 엮고, 그 이후 다섯 권의 시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편들을 뽑아 시선집도 한 권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회가 된다면 기행산문집도 한 권 내고 싶다고.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아서 늘 시간이 아쉽다는 우 시인, 그는 모악산을 바라보며 책을 읽는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이 세상에 꽃이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 수는 있지요. 이 세상에 시가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듯이 말이지요. 그러나 삭막한 현실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바로 시의 세계 아닐까요.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물으니 돌아온 답이다.

  • 사람들
  • 이용수
  • 2018.11.22 20:01

[안도의 알쏭달쏭 우리말 어원] (116) 이야기

밤하늘의 별 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과연 이야기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이야기의 18세기 고어는 <역어유해보>에는 古話 : 니야기, <한청문감>에는 古詞 : 니야기의 표기가 있다. 한국어 조상어인 세소토어를 보면 nyaka(니아가-뒤지고 찾는 것)을 뜻하고 있다. nyakalatsa(니아가랕사-즐겁게 하는 것)을 뜻하며, nyakallo(니아갈로-흥미)를 뜻한다. 결국 이야기는 과거의 일들을 재조명하여 듣는 이에게 흥미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이설을 보면 경상도에서는 이야기를 이바구라고 한다. 원래 형태는 입아구다. 입아구는 입 양쪽 귀퉁이의 아귀로 그곳을 놀리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루어진다는 말에서 유래 된다. 입아구가 연음이 되어 이바구 이것이 다시 이야기가 된 것이라고 한다. 이야기는 우리 삶 속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많이 하고 있다. 의사소통의 도구로써 사실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말할 수도, 또 사실처럼 꾸며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내뱉어 남에게 일러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주는 이로운 점을 살펴보면 정보의 수단으로써의 이야기, 의사소통으로써의 이야기 인격완성의 계기, 문화적인 면을 들 수 있다. 먼저 생활의 유익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게 됨으로 개인에게는 생존의 수단으로써의 역할을 하고 학문적으로는 발전을 위한 발판으로 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면 생존의 수단으로써, 원시시대에 글이 없고 기록에 익숙지 않아 서로의 위험과 안전을 이야기를 통해 난관을 극복해나갔을 것이다. 또 현대는 이야기를 통해 무수히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고치고 버리는 작업을 통해 유익한 정보를 만들어 간다, 이 복잡한 시대에 이야기는 중요한 매체로 작용한다. 다음으로는 의사소통으로서 이야기는 말을 정확하게 표현하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기다려 줄 때 사려성이 길러진다. 의사소통은 인간관계에서 없어서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야기는 인간관계에 긍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렇듯 이야기 없는 곳엔 정서가 매말라 보이고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없다. 이야기를 옛 선조들은 귀로 먹는 약, 약보다 이로운 것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이야기는 어떤 사람은 말을 잘못해서 욕을 먹는다. 하지만 잘 사용하면 우리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만은 틀림없다.

  • 문화일반
  • 기고
  • 2018.11.22 20:01

천년고도 전주, 후백제의 흔적을 찾아서

【주제 다가서기】 올해는 고려시대인 1018년 전라도라는 이름이 탄생한 지 1000년이 되는 해이다. 전라도 1000년 역사의 중심지인 전주는 후백제의 도읍지이자 조선왕조의 발원지로서 많은 역사 문화적 자산이 남아 있는 왕도(王都)이다. 천년고도 전주의 역사는 후백제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후백제 37년의 역사와 견훤 왕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전주 시민의 관심도 많지 않다. 아이들이 교과서를 통해 접하는 후백제의 모습은 어떨까?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다루는 후백제의 역사는 한 쪽 남짓한 분량이며 견훤왕의 모습조차 고려와 싸우다 결국 고창(안동)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왕위 계승 문제로 맏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갇히는 불운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는 승자(고려)의 편에서 후백제와 견훤왕의 모습이 그려진 탓일 것이다. 조선 영조 때 쓰여진 동서강목에 따르면 후백제는 백제의 옛 땅을 남김없이 차지해 신라와 고려보다도 강력했다고 기술했다. 또한 미국 켄서스 대학의 허스트 3세 교수의 고려왕조 창건 속 인물들이라는 논문에는 견훤은 상당한 군사적, 도덕적 힘을 가지고 있었던 백제인으로 운명의 뒤틀림이 없었다면 10세기 한국은 견훤에 의해 통일됐을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후백제가 막강했음을 말해준다. 세계적으로 문화지수가 높은 도시들의 공통점은 지역민들의 높은 문화자긍심이라고 한다. 지역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역사문화를 높이 평가하고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며 나아가 문화를 즐긴다. 천년고도, 문화의 도시 전주 시민으로서 후백제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고 더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에 후백제의 역사가 담긴 기사를 통해 그 흔적을 찾아보고자 한다. 【신문 읽기】 <읽기 자료1> 신앙으로 왕도 보호하고 책으로 지식문화 수도 완성 - 완전한 땅, 후삼국 통일 수도 전주 꾸민 견훤왕 신라서 건축 기술자 데려와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꾸며 신령스러운 동물 배치하고 동서남북에 사찰 세워 수호 후삼국 최다 서적 모아 문화 수도 이루려 △ 견훤왕, 후삼국 통일 수도 전주를 만들다 후백제 견훤왕은 892년 무진주(현재의 광주)에서 거병하고 독자적인 정치행보를 유지하다가 900년 전주로 도읍하여 후백제의 공식적인 출발을 진행하였다. 이 후 936년 신검왕대에 후백제가 망하기까지 전주는 37년 동안 후백제의 수도로서 기능하였다. 이 기간은 한 국가의 도성 구성과 관련하여서는 충분한 시간으로서 전주의 도시구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기간이 되었다. 특히, 927년 신라 경주를 공격하고 경순왕을 옹립하고 공산에서 고려군을 대패시킨 견훤은 후삼국 통일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이때부터 견훤은 전주를 통일 수도에 걸 맞는 체계를 갖추게 하였으며 화려하고 사치스럽다는 평가가 들 정도로 전주를 꾸몄다. 특히, 신라에서 데려온 여러 분야에 뛰어난 기술자를 활용한 전주도성건축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종래 후백제 왕도 전주의 공간에 대해서는 다양한 공간설정과 가능성이 검토되었다. 가장 최근 전주박물관은 전주를 둘러싼 고토성의 흔적과 현재 구도심을 중심으로 한 도성공간들에 대한 기본안을 발굴과 연구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국가적 목표와 방향이 후삼국 통일이었고 그 지향점이 고구려 옛 영토까지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목표 구현을 위해 견훤왕은 종교 신앙적 보호체계를 구상하고 이를 실천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 유교의 신령한 네 마리 동물 사령(四靈), 전주를 지키다 견훤왕이 후백제 왕도 전주를 지키기 위한 종교 신앙적 흔적으로 주목되는 것이 유교의 경전 예기(禮記)에 나오는 네 마리 신령스런 동물인 사령(四靈)관념이다. 이는 인간을 먹이는 가축의 원형인 기린용거북봉황으로 점차 도성수호의 신령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도교와 연결되어 도성 방위의 사신(四神)신앙으로 발전하였다. 그런데 후백제 왕도 전주를 둘러싼 지명에 이들 명칭이 남아있어 주목된다. 즉, 전주를 둘러싼 산줄기에 부여된 명칭인 기린봉의 기린, 용머리고개의 용, 거북바위의 거북, 옛 지도에 표현된 봉황암(鳳凰巖)의 봉황이 그대로 전주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이들 대응내용을 살펴보면 기린봉과 봉황암이 서로 인접하여 산림에 위치하는 형세이고 용과 거북은 전주천과 연결되어 연못에 깃들여 사는 형세와 연결되는 지형적 형세를 보여주고 있다. 사령은 상서로운 동물로서 인간을 먹이는 존재이자 어진 정치를 상징하고 태평성대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이 같은 존재가 도시수호 및 구성에 존재한다는 것은 국가통치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이념체계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표현이 전주에 적용될 수 있는 시점은 후백제 왕도이던 시기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 결국 견훤왕은 사령신앙에 입각한 관념을 전주의 공간에 대응시켜 후백제 전주를 명실상부한 완벽하고 온전한 최고의 땅으로서 만들려고 하였다. △ 불교의 사고사찰(四固寺刹) 배치로 전주를 지키다 전주에는 독특한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사고사찰(四固寺刹)이 존재하고 있다. 먼저 남고사는 창건 당시 남고연국사라 불렸는데 여기서 연국이란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의 말로 산성에 있는 사찰이름으로 전주를 지키는 남고산성에 자리하고 있다. 문헌비고에 따르면 남고산성은 901년 후백제의 견훤이 쌓았으며 견훤산성고덕산성이라고도 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또 동고사는 승암산에 위치하고 있는데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말 경순왕의 아들이 출가한 사실이 전해져 후백제 견훤과의 관련이 추정된다. 한편, 서고사는 동국여지승람에 등재되어 있는 사찰로 만성동 황방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또 북고사란 명칭은 존재하지 않지만 진북동 어은터널과 서신교 사이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진북사(鎭北寺)라는 사찰은 1790년대 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호남읍지의 전주부에 등장하고 있는데 명칭이 북쪽을 지킨다는 뜻으로 북고사와 같은 개념이다. 이 같은 전주를 지키는 4개 사찰의 개념은 전주를 불교적 수호관념을 투영해 보호하려한 불교적 신앙을 계승 발전시킨 견훤왕의 의지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 후삼국 최대 서적을 보유한 전주, 문화 수도를 보여주다 후백제왕 견훤은 수도 전주를 최대의 지식 문화수도로 만든 문화군주였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가 지은 청장관전서에는 전주가 후삼국 시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책을 보유한 지역이었음을 서적이 당한 참변에 대한 기록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사료에 나타난 서적의 참화 첫 번째 사건은 고구려의 책이 당나라 장수 이적에 의해 불탄 사건이고 두 번째 사건은 견훤이 후백제 왕도 전주에 모은 책이 당한 참화이다. 비록 서적이 사라진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사실은 전주가 우리 역사에서 서적의 도시임을 보여주고 있다. 즉, 후백제 견훤왕이 후삼국통일 수도를 꿈꾸며 전주를 화려하게 조성하고 이에 부응하는 학문과 문화도시로서의 품격에 걸맞는 서적을 모아 당대 최대의 도서관을 만들어 기록을 보존한 전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후백제 왕도 전주는 유교의 사령 즉, 기린, 거북, 용, 봉황이 먹이고 지켜주는 도시이자 불교의 사방수호 사찰인 남고사, 동고사, 서고사, 진북사(북고사)가 수호하는 공간이었다. 또한, 견훤왕은 삼국의 모든 책을 전주로 모아 우리나라 최대의 지식문화 수도로서의 위상을 만들어낸 문화 군주였다. 또한 당대 최고의 기술자들을 모아 후삼국시기 최고의 공간구성을 이루어 통일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출처 : 전북일보 2018년 5월 25일 20면/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읽기자료 2> 전주지역 후백제 유적지도 완성 - 시문화유산연구원 현장정밀지표조사 성곽 등 34곳 발굴도 전주지역 후백제 역사문화를 체계적으로 복원하기 위한 유적지도가 완성됐다. 전주시는 이 유적지도를 통해 보다 체계적이고 정확한 후백제 역사문화 유적 발굴과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주시는 후백제의 궁성 및 도성으로 추정되는 노송동 등 전주 지역에 산재해 있는 후백제 유적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를 토대로 문화유산 지도를 완성했다고 14일 밝혔다. 조사를 진행한 전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유철)은 물왕멀과 기자촌, 동고산성, 남고산성, 무릉마을, 왜망실, 황방산, 어은산, 다가산, 완산칠봉을 비롯해 전주부사에 기록된 후백제 추정 산성터와 산성 내부 등 500만평을 답사하고 지역주민들과의 면담조사 등을 통해 후백제 유적 34곳을 새로 찾아냈다. 신규 발굴된 유적지는 남고산성 추정 행궁지 등 성곽유적 12곳과 황방산 건물지 등 건축유적 6곳, 우아동 와요지 등 생산유적 5곳, 무릉 추정 왕릉군 등 분묘유적 6곳, 옥녀봉 유물산포지 등 생활유적 5곳이다. 시는 남고산성 내의 추정 행궁지에서 후백제때 사용됐던 초석이나 기단석과 기와가 수습돼 후백제시대의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아중저수지 인근 무릉고분군의 경우 인위적으로 만든 대형 분묘형태로 조성돼 있으며, 산 정상부에서는 정연하게 배열된 숯이 발견됐다는 주민들의 제보도 나왔다. 생산유적인 왜망실의 우아동 와요지에서는 수많은 기와편과 가마벽체편 등이 발견됐으며, 네모 형태의 관아전돌편(길이25cm, 두께6cm)도 확인됐다. 시는 이번 정밀지표조사 결과를 토대로 유적의 성격 등을 밝히기 위해 연차별로 발굴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며, 무릉마을 고분군을 비롯해 도성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대한 시굴조사도 시행할 계획이다. 전주시 문화관광체육국 관계자는 전주가 후백제의 왕도라고 하지만 왕도로서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 구체적인 유적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사업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정밀지표조사를 통해 기초자료가 확보된 만큼, 앞으로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유적복원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출처 : 전북일보 2017년 8월 16일 5면 /백세종 기자> <읽기 자료3> 후백제 문화유산 체계적 관리 필요하다 후백제의 유적지인 전주 동고산성이 관리 소홀로 방치돼 정비가 시급하다. 동고산성은 전라북도 지정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된 전북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면서 전주지역에 산재한 후백제 유적지 가운데 견훤왕궁지로 알려진 중요한 유적이다. 후백제의 왕도로서 찬란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동고산성이 우거진 잡초와 잡목들에 가려 진입로와 유적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중략) 전주는 900년부터 936년까지 37년간 후백제의 왕도(王都)로서 후삼국시대 격동의 중심지이자 찬란한 역사문화를 펼쳤던 후백제의 역사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동고산성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쌓은 산성으로 추정되고 후백제 시대와 관련된 국내 유일한 성으로 알려져 역사적으로도 인정받은 중요한 문화재다. 전주시가 역사에서 잊혀온 후백제 역사문화를 체계적으로 복원하려고 본격적인 발굴조사에 나서겠다면서 유적 관리가 허술하다면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후백제 문화유적 발굴조사도 중요하지만 발굴된 기존 유적을 소중하게 관리하고 나아가 전주시민들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살펴보고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다. 특히 동고산성은 한옥 마을을 비롯해 치명자산 성지 등이 인접해 있어 전주시민은 물론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관광 명소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주시는 동고산성을 10월 말까지 정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으나 동고산성 뿐만 아니라 전주지역에 산재한 후백제 문화유적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출처 : 전북도민일보 2017년 10월 18일 15면 /조민희 기자> 【생각 열기】 ▶ <읽기 자료 1>을 읽고 후삼국 통일 수도 전주를 만들기 위한 견훤왕의 흔적을 정리해봅시다. ▶ <읽기 자료 2>에서 어려운 용어를 찾아 쉬운 말로 바꾸어 기사를 다시 써 봅시다. ▶ <읽기 자료3>을 읽고 동고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이해하고 후백제 문화유적을 보호 관리하는 방안을 생각해봅시다. 【주제 관련 더 보기】 -후백제 도성, 궁성과 내외성 3중 구조/전북도민일보 2014.10.30. 김미진 기자 -왕건보다 무덤 초라하지만 그는 꿈꿨다, 마한의 부활을/전남일보 2018.10.5. 김형주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실장 -전주에 후백제 세운 견훤대왕, 본격적으로 기려야/전북일보 2018.10.15. 천경석 기자 【생각 더하기】 ▶ 후백제 역사와 견훤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 봅시다. ▶ 전주시민은 물론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후백제 역사를 알리기 위한 방법을 제안해봅시다. 【학생 글】 역사에서 잊혀진 후백제 왕 견훤 박산 전주 동초등학교 5년 우리학교는 후백제와 연관이 깊다. 바로 이곳이 후백제의 도읍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학교에서 후백제와 견훤에 대해 배우고 있다. 그래서 견훤의 고향 문경 상주에도 다녀오고 논산에 있는 견훤왕릉도 다녀왔다. 또한 학예회에서는 견훤의 꿈이라는 연극을 만들어 발표회도 진행했다. 그런데 견훤의 고향인 문경에는 견훤을 기리는 사당이 있었고 논산에는 견훤의 무덤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후백제의 도읍인 전주에는 견훤을 기리는 사당 하나 없다. 왜 그럴까? 내 생각은 이렇다. 고려와의 싸움에서 패배해 멸망하여 그저 역사의 패자로 남아있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초등교과에도 견훤에 대한 내용은 고작 한 장 밖에 없었고 왕건과의 싸움에서 진 패자로 적혀있다. 많은 사람이 견훤에 대해 관심이 없고, 성격이 나쁜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르다. 견훤은 한낱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신라의 부패한 정치와 그로 인한 백성들의 굶주림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견훤은 신라의 군인이 되고 전라남도 순천 지방에서 세력을 일으켜 후백제를 세워 왕이 되었다. 당시 고려의 궁예나 왕건과 대적할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었으며, 전라북도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부강한 나라였다. 그렇기에 고려 왕건과의 싸움에서도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 공산전투에서는 왕건을 죽기 직전까지 내몰았고 고려의 신숭겸 장군을 비롯한 여러 장수를 죽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왕건이었다. 병산전투에서 견훤은 크게 패하고 왕자들의 반란으로 금산사에 감금되나 금산사에서 빠져나와 평생을 싸웠던 왕건에게 항복한다. 자신이 세운 후백제를 자신이 부숴야했었던 비참한 견훤의 최후를 생각해볼 때 안타깝다. 이처럼 견훤은 공산 전투 이외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우리는 패자로만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부패했던 신라를 바로잡고 새롭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나라를 세웠던 견훤 또한 당시를 호령했던 큰 인물임에 틀림없다. 우리 지역유산인 견훤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른 관점을 갖고 공부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산 전주 동초등학교 5년 고고학을 통해 후백제의 존재를 찾아내자 이태현 전주 동초등학교 5년 올 한해 후백제 견훤에 대해 많은 것을 공부하였다. 나는 왜 우리가 후백제 관해 공부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그 이유는 견훤이 우리 마을 노송동에 궁성을 지었고, 후백제의 역사가 전주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올해 이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는데 전 학교에서는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 후백제의 역사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전북대박물관에 가서 후백제의 절이었던 봉림사지의 삼존불 불상을 보았다. 삼존불 모두 머리가 없었다. 왜 불상의 머리가 없을까?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설명을 해주셨다. 당시 불교가 유행하여 후백제의 땅 전라북도에도 불교유적이 많이 있었는데, 고려가 후백제를 무너뜨리면서 후백제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중요한 유적을 없애거나 파괴했다는 것이었다. 전주 동고산성에 올라 유일하게 남아있는 후백제 궁성 유적을 살펴보았는데 여기저기에서 천년전 기와를 찾을 수가 있었다. 보물찾기를 하는 마음으로 특별한 기와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며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비극 중 하나가 삼국의 책을 모아놓은 전주사고가 불타버린 것이라고 한다. 후백제의 역사가 불태워져서 기록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땅속에 묻혀 있는 흔적과 유물을 통해 과거의 흔적을 많이 찾아낼 수가 있다.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많지 않은 후백제의 역사가 고고학을 통해 많이 밝혀졌으면 좋겠다. /이태현 전주 동초등학교 5년 /제작=윤지선 전주 양지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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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22 20:01

완주 폐기물 매립장 원점 재검토 걱정된다

폐기물 처리시설은 지역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때문에 입지 선정을 놓고 지역 주민들의 반대와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완주테크노밸리 제2일반산업단지 내 폐기물 매립장도 마찬가지다. 폐기물 매립장 예정지 인근 주민들이 주거시설 근거리에 들어서면 악취 등으로 인해 삶의 질이 떨어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박성일 완주군수가 결국 폐기물 매립장의 위치 변경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주민여론 수렴 절차를 밟겠다고 물러섰다. 완주 테크노밸리 제2일반산업단지는 산업단지 집적화의 일환으로 지난 2013년부터 봉동읍 일원에 추진됐다. 조성면적이 211만㎡이고, 예상되는 폐기물 발생량도 2만6000톤에 달한다. 대규모 산업단지로 조성되는 만큼 관련법에 따라 폐기물 매립장을 설치해야 한다. 완주군은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현재의 위치를 선정했고, 주민설명회 등 절차를 밟아 2년 전 산업단지개발계획 및 실시계획 승인도 받았다. 산단 내 약 4만9000㎡ 부지에서 100만㎥(110만 톤)의 폐기물을 매립할 수 있는 시설이다. 그러나 인근 주민들이 폐기물매리장이 학교와 주거 밀집지역에서 근거리에 위치해 있는 데도 매립장 입지 선정 과정에서 주민들과 소통이 부족했다며 반대대책위를 꾸려 4000여 명의 서명이 담긴 반대의견서를 완주군에 제출했다. 이미 모든 행정절차가 마무리된 상황에서 매립장 취소는 물론 위치 변경은 있을 수 없다던 완주군이 원점 재검토로 돌아선 배경이다. 폐기물 매립지는 악취와 소음, 분진 등으로 인해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폐기물 매립지 확보에 어려움이 따르는 이유다. 봉동 완주산업단지만 해도 279개 업체가 가동 중이지만 폐기물 매립장이 없어 전량 타 지역으로 반출 처리하는 상황이다. 완주군 관내 기업들로선 폐기물 수집과 운반에 불편과 비용 부담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완주군이 2년 전 확정된 폐기물 매립지를 재검토키로 한 배경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매립지 선정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데 있다. 일방적으로 입지를 선정한 뒤 타당성과 필요성을 들어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본 행정의 오만이 아닐 수 없다. 뒤늦게라도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나선 것은 잘 한 일이다. 그러나 매립장 위치 변경은 처음 선정 때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지역 주민과 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지혜를 모으길 바란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18.11.22 20:01

무초 진기풍 선생 기증 작품전, 23일부터 문 연다

고창군립미술관에서 이달 23일부터 내년 5월 22일까지 6개월간 고(故) 무초 진기풍 선생의 기증작품 산수화전이 열린다. 군립미술관 개관 이후 7번째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지난해 11월 26일 작고한 진기풍 선생의 1주기 기념전으로 마련됐다. 진기풍 선생은 1925년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나 전북일보 편집국장사장, 서해방송 부사장을 역임했다. 언론계에 종사하면서 지역 발전을 위한 정책과 대안을 제시해 온 참 언론인이자 ㈜백양 감사,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회장, 전북애향운동본부 부총재, 책읽기운동본부 이사장 등 지속적인 사회 활동으로 전북 발전을 위해 힘쓴 전북의 큰 어른이었다. 강암서예학술재단의 이사장을 맡아 서예를 학술적으로 진흥하고 서예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는 데 힘쓰기도 했다. 이렇듯 언론인이자 미술 애호가였던 진기풍 선생은 평생 수집해 소장하고 있던 귀중한 자료를 2001년부터 고향인 고창군에 기증하기 시작했다. 고창군에서는 감사의 뜻으로 2001년 판소리박물관 2층에 무초회향미술실을 마련해 작품을 전시하다가 2006년 판소리박물관 별관에 무초회향미술관을 확장 개관해 기증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무초(無初)는 진기풍 선생의 호이며, 무초회향(無初懷鄕)은 선생이 고향을 품는다는 의미이다. 기증 작품은 서양화, 한국화, 서예, 도자기, 서각, 고서 등 143점에 달한다. 추사 김정희, 강암 송성용, 소치 허련, 남농 허건, 해강 김규진, 서양화가 진환 등 서예미술사적으로 가치 있는 작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진기풍 선생의 기증 작품 우기(牛記) 8과 산수화 13점을 비롯해 소정 변관식, 남농 허건, 현림 정승섭, 토림 김종현 작가 등의 산수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진기풍 컬렉션 제1호에 해당하는 우기(牛記) 8은 망각 속에 묻혀 오다가 재평가된 진환(1913~1951)의 대표작으로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엄마 소와 아기 소를 그린 작품이다. 진환은 황색 계열의 색채를 선호했고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황토를 직접 캔버스에 오브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한편 고창군은 이번 산수화전 이후에도 진기풍 선생의 미술 애호 정신과 고향 고창에 대한 사랑을 깊이 새기는 전시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 전시·공연
  • 김성규
  • 2018.11.22 20:01

전·현직 기자, 전북 언론의 역사 ‘최초 집대성’

지역 언론은 결코 죽지 않고 살아있다. 그 역사는 만들어질 뿐이다. 이 책은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파한 비코(G.Vico)의 시각에서 지역언론의 난국을 타개할 방책을 찾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전망하게 해 줄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취재현장에서 활동했던 전현직 언론인이 언론학 전공자로서 전북언론의 역사를 최초로 집대성한 것이기 때문에 학문적으로나 실무적으로도 평가될만하다. (머리말 중에서) 전직 기자 최동성 전북대학교 초빙교수와 전오열 전북일보 편집1부장이 함께 3년여 공을 들여 전북에 면면히 내려오는 언론정신을 체계화해 기록하고 자료를 집대성한 <전북언론사>(한국학술정보)를 펴냈다. 저자들은 이번 집필 작업과 관련 한국언론사라는 지도에 지역언론이 외면받는 이상한 현실을 지적하고 더 이상 늦출 수도, 거역할 수도 없는 시대적 소명이라는 언론인으로서의 절박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전북언론의 맥, 전북 언맥(言脈)을 대의적으로 세우고 명분을 밝히기 위해 춘추필법의 정신에 따라서 꼼꼼하게 집필했다. 이를 위해 사료와 증언, 경험의 세 가지 입체적인 관점에서 철저한 학술적 고증과 언론인들의 진술, 그리고 디지털 자료와 종이신문을 일일이 열람해 사료를 채집하고 사실(史實)을 정리하는 작업을 거쳤다. 317쪽에 걸쳐 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전근대적인 언론 매체를 포함한 동학농민혁명기, 개화기, 일제강점기 및 미군정기, 각 공화국시대를 최근까지 연대순으로 엮었다. 각 장에서는 한국언론을 거시적으로 살펴보고 전북의 언론을 미시적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분석했다. 일제강점기 이리(현 익산)에 라디오방송국이 일찍 설치된 배경과 전북 언론인에 대한 일제의 탄압 사례 등을 추적하거나 신군부의 강압적인 조치로 강제 해직된 전북언론인 32명도 언론사별로 소개하는 등 언론인과 지역사회가 한 때 겪었던 고초와 울분을 되돌아봤다. 또한 현재 전북지역 언론의 현황을 짚고 미래를 향해 지향해야 할 혁신 방안 등을 모색했다. 최동성 초빙교수는 전북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전북일보 정치경제사회부장과 편집국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전오열 전북일보 편집1부장은 전북대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8.11.22 20:01

2018 자랑스런 전라북도 환경대청상 시상식 열려

제20회 자랑스런 전라북도 환경대청상(제전위원장 이희두) 시상식이 22일 전주시 바울교회 내 바울센터에서 이희두 제전위원장을 비롯해 라혁일 대회장, 이석 명예총재,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 홍성일 전라매일 대표이사, 최찬욱 도의원, 유홍열 덕암학원 이사장 외 내외 귀빈과 수상자 및 가족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번 시상식은 전북환경대청상 제전위원회가 주최하고 NGO환경문제연구소와 한국기독교 환경대책전북본부가 주관해 진행됐다. 시상은 대상, 금상, 은상, 동상, 대청상, 전라북도지사 표창, 전라북도교육감 표창, 지방환경청장 표창, 한국농어촌공사청장 표창, 전북일보회장 표창, 전북일보사장 표창 등 총 61개이다. 대상은 완주군이 차지했다. 완주군은 유해 야생동물 피해예방 생태관광지 조성사업, 폐기물 적정처리로 수질오염 개선 등 환경 보전에 기여한 공이 인정돼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금상은 전라북도의회 최찬욱 환경복지위원장과 언론부문에 홍성일 전라매일 대표이사, 은상은 전통부문에 임장옥 씨(대한민국 식품명인 41호), 교회부문에는 강복근 전주소망교회 담임목사,감사패는 라혁일 한국청소년야생동식물보호단 총재), 김종선 칭찬합시다 회장이 수상했다. 이희두 제전위원장은 환경보전에 앞장서 내 고장을 살리는 환경지키기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으며, 라혁일 대회장은 자연 환경이 개발에 밀려 파괴되고 오염되며 생태계의 균형은 깨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파괴되지 않는 생태계를 우리 후손들에게 다시 되돌려 주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람들
  • 강현규
  • 2018.11.22 20:01

전북 가야 문화 실체 알린다

전북 가야사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학술대회가 열린다. 전북도는 23일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전북가야 선포식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전북가야 선포식 1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한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기념학술대회에서는 전문가와 도민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북 가야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적으로 알려진 산성, 봉수의 문화적 가치와 활용방안을 두고 발표 및 토론을 한다. 서정석 공주대 교수는 고대 산성 성벽의 축조기법, 최인선 순천대 교수는 산성내 집수시설의 구조와 특징, 고용규 고대문화재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봉수의 문화재 지정가치와 전략, 조명일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고고자료로 본 장수군의 역사성을 주제로 발표한다. 토론은 송화섭 중앙대 교수, 심승구 한체대 교수, 김세종 목포대 박물관 연구원, 강원종 전주문화유산연구원 선임연구원, 안선호 원광대 교수 등 5명이 참여한다. 윤동욱 도 문화유산체육관광국장은 철과 봉수 운영으로 강력했던 전북가야의 실체를 반드시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도는 지난해 1월 전북 동부권 7개 시군 가야 문화를 전북가야라 명명하고 남원장수 경계인 봉화산 치재에 봉수왕국 전북 가야 기념비를 세우고 전북가야 선포식을 가졌다.

  • 사람들
  • 김세희
  • 2018.11.22 20:01

근로시간 단축 논란 여전

근로시간 단축법이 대기업부터 지난 7월 1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2022년 말까지 모두 마무리돼야 하는 가운데 아직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최근 기업 504개사를 대상으로 52시간 근무제 이후 겪은 변화에 대해 조사한 결과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기업 10곳 중 6곳(58.9%)이 현재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시행 비율은 대기업(94.4%), 중견기업(70.7%), 중소기업(55.8%)의 순이었다. 시행하고 있는 기업(297개사) 중 39.7%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경영, 실적 등에 변화를 겪었다고 답했다. 대기업의 경우 긍정적인 변화라는 응답이 75%로 우세한 반면, 중소기업은 부정적인 변화라는 응답이 69.9%로 상반됐다. 변화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부정적인 변화의 경우 전체 인건비 상승(57.7%, 복수응답)을 첫 번째로 꼽았다. 이어 생산성 하락(35.9%), 직원의 업무 효율성 저하(33.3%), 근로자간 형평성 문제 발생(29.5%), 새로운 근무 관리 시행착오로 인한 비용 발생(23.1%), 서비스 운영 시간에 차질 발생(21.8%), 물품 생산 기한에 차질 발생(21.8%), 대외 및 타회사 협력 업무에 차질 발생(15.4%) 등이 있었다. 인건비가 상승했다고 답한 기업의 인건비 상승률은 평균 22.7%로 집계됐다. 반대로 긍정적인 변화는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 증대(62.5%, 복수응답)가 가장 많았고 다음은 직원들의 업무 의욕 상승(45%), 생산성 증가(22.5%), 전체 인건비 하락(20%), 직원들의 애사심 고취(15%) 등의 순이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신규채용의 변화에 대해서는 16.2%가 늘어났다라고 답했고, 줄었다는 응답은 14.1%, 영향 없다는 69.7% 였다. 근로시간 단축법에서 보완되어야 할 점으로는 임금보전 등 경제적, 정책적 지원(43.1%, 복수응답)을 첫번째로 꼽았다. 이밖에 업종지역별 근로시간 단축 차등 적용(36.7%),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31.3%), 신규 채용에 대한 지원 확대(25.9%), 특수 분야 예외 업종 지정(19.9%) 등의 의견이 뒤를 이었다.

  • 산업·기업
  • 강현규
  • 2018.11.22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