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 탐방’] 그리스에서 완주군까지(1)
우석대 공자아카데미 창립 15주년을 맞아 전북일보는 한국돈황실크로드학회, 태원사범대학(太原師範學院) 국제실크로드문화예술연구소(國際絲綢之路文化藝術硏究所)와 함께 동서 문명을 연결시킨 실크로드 유적과 유물을 소개하고 그 속에 남긴 우리 문화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 탐방’을 기획, 매월 연재한다. △ 금강문에서 만나는 헤라클레스 완주군 종남산 끝자락에 자리한 송광사(松廣寺). 이곳에는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Heracles)의 흔적이 있다. 뜬금없이 웬 헤라클레스일까 싶겠지만, 불법의 수호신 금강역사(金剛力士)가 바로 그리스에서 중앙아시아 간다라 그리고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건너온 헤라클레스이다. 송광사 일주문 뒤에 있는 금강문 중앙 통로 좌우에는 사찰을 지키는 두 명의 금강역사 즉 천상의 역사로 괴력의 소유자인 나라연(那羅延)금강과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신(夜叉神)인 밀적(密迹)금강이 있다. 이 금강역사는 그리스 신화의 전설적인 영웅으로 사자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헤라클레스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러한 흥미로운 동서 문명 교섭의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강역사의 유래 그리고 간다라 미술에 보이는 헤라클레스 형상의 금강역사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전파된 과정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 고대 인도의 신 ‘바즈라파니(Vajrapani)’ 금강역사는 산스크리트어로는 바즈라파니(Vajrapani)이며, 고대 인도 베다에 나오는 신이다. 바즈라파니의 '바즈라(Vajra)'는 다이아몬드나 벼락 또는 금강저(金剛杵)를 의미하고, '파니(pāni)'는 "손에 쥔"을 의미한다. 초기 인도 불교에서 바즈라파니는 금강저를 손에 든 고타마 붓다의 수호자이자 안내자이다. 동아시아에서 바즈라파니는 한자로 번역되면서 금강역사(金剛力士), 집금강신(執金剛神), 금강야차(金剛夜叉)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여기서 금강야차의 야차(夜叉)는 인도 비아리아계의 신인 ‘약샤(Yaksa)’이며, 고대 인도 민간신앙을 대표하는 토착신이다. 야차는 불교에 흡수되어 붓다의 수호신이 된다. △ 간다라의 금강역사, 헤라클레스 그러면 인도의 신 바즈라파니는 어떻게 또다시 헤라클레스가 되었을까? 바즈라파니가 헤라클레스의 모습이 되는 것은 알렉산더대왕의 동방 원정에 따라 인도의 불교 미술과 그리스 · 로마 미술이 융합되는 간다라(Gandhara) 지역에서였다. 현재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일부 등을 포함하는 간다라는 1세기 무렵부터 불교의 중심지가 되어, 쿠샨(Kushan) 시대에 동서 교역의 요지로서 가장 번영했다. 특히 간다라에서는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 아래 처음으로 불상이 제작되었고, 그 불교 미술은 인도,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5세기 중반 에프탈(Hephthalites)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어 불교의 중심지로서의 간다라는 종말을 맞이한다. △ 헤라클레스 도상의 간다라 유입 불법의 수호신 금강역사가 실제 헤라클레스상으로 표현되어 있는 놀라운 장면은 간다라 지역에 해당하는 아프가니스탄 하다(Hadda)의 불교 사원 타파 쇼토르(Tapa Shoto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타파 쇼토르 유적지는 1992년 탈레반에 의해 파괴되고 약탈당해 사라졌으나 당시 아프가니스탄 고고학자인 제마랼라이 타르지(Zemaryalai Tarzi, 1939년생) 박사가 찍은 사진이 남아 있어 불상이 어떻게 그리스 형식으로 조각되었는지를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사진을 보면, 불상 조각상 가운데는 붓다가 앉아 있고 우측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부와 번영을 관장하는 행운의 여신 티케(Tyche)가 탐스런 과일을 듬뿍 담은 ‘풍요의 뿔’ 코르누코피아(Cornucopia)를 들고 있다. 티케 반대편 조각상이 바로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이다. 구불구불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한 헤라클레스는 금강저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을 금강저 위에 얹고 있다. 영웅 헤라클레스를 상징하는 물건은 머리에 뒤집어쓴 사자 가죽과 올리브 몽둥이인데, 여기서는 사자 가죽을 머리에 쓰지 않고 왼쪽 어깨에 걸쳤다. 이른 바 ‘견부사교(肩部獅嚙)’ 즉 어깨 위에 있는 사자의 찡그린 얼굴 모양이다. 견부사교는 동아시아에 유입되어 사천왕상은 물론 관우(關羽)상과 같은 무인상 어깨 장식으로 정착한다. 한편 타파 쇼토르에는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그리스 문명과 인도 문명의 운명적인 만남을 이끈 알렉산더 대왕으로 보이는 조각상이 불상 옆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조각상은 얼굴 옆모습, 머리 모양, 복장, 자세로 보아 알렉산더 대왕임이 분명해 보인다. 당시 마케도니아에서 동방원정을 떠나 이집트, 페르시아, 중앙아시아까지 정복해 대제국을 이룬 알렉산더 대왕. 대제국의 황제라면 정가운데 앉아 있어야 마땅하지만 불상 옆 귀퉁이에 작은 조각상으로 서 있다. 미술사학자 주수완 교수(우석대 경영학부)는 “타파 쇼토르 사원 불상 옆에 알렉산더대왕 조각상이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당시 간다라에서 불교가 얼마나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고 또 헬레니즘 문명이 불상의 탄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 간다라 금강역사의 변모 인도 불교와 그리스 문명이 결합한 간다라 금강역사는 동아시아에 전파되어 변모한다. 붓다 옆에 홀로 서 있던 금강역사가 쌍으로 바뀌고 위치도 안쪽이 아닌 바깥쪽 문의 좌우에 서서 사찰을 지킨다. 또 인도 본토나 간다라 금강역사는 항상 금강저를 들고 있지만, 동아시아의 금강역사는 들고 있는 물건이 다양하다. 간다라에서 탄생한 불상은 대승불교와 함께 4세기 무렵 한반도에 도착하였다. 완주 송광사의 금강역사는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가 붓다의 보디가드가 된 흥미로운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전홍철 우석대 경영학부(예술경영) 교수 △전홍철 우석대 경영학부(예술경영) 교수=돈황학 전문가로 실크로드에 대한 글쓰기와 영상 제작을 하고 있으며, 세계 최초로 돈황변문집을 완역 출간한 바 있다. 현재 한국돈황실크로드학회 회장, 우석대 공자아카데미·실크로드영상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와 역서로 『돈황 강창문학의 이해』(소명), 『돈황 민간문학 담론』(소명), 『돈황변문집교주』(1-6권, 소명) 등이 있고, 영상으로는 <백제와 실크로드>(2017.01-2017.06, 전북일보 연재), <타케 보스탄(Taq-e Bostan)>, <소무구성(昭武九姓)>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