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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스터'·'미카엘 하네케 감독' "불편한 진실 압축시켜 보여줬다"

지난 1일 전주시네마타운에서 상영된 화제작 '마스터'가 끝나자 관객들은 뒤숭숭한 악몽을 꾼 얼굴로 상영관을 빠져나갔다. "도대체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이걸 대체 왜 보라고 한 거야"라는 불만이 가득했다. 크리틱 톡에 나선 영화평론가 한창호씨는 "전작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도 확인했듯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은 모호함이 폴 토마스 앤더슨의 특성인데, 객석은 이것을 미덕으로만 바라보진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가족과 기억'을 주제로 레슬링, 가족 사진, 프로세싱(치유의 과정), 도리스의 집 등을 키워드로 감독의 의도를 읽어내려갔다.영화는 2차 세계대전으로 상처받은 군인 프레디가 종교(사이언톨로지)에 의해 치유가 아닌 미궁에 빠지는 과정이 담겼다. "2차 대전 이후 전쟁 트라우마로 사이언톨로지가 사람들을 치유하는 게 전염병처럼 번졌고, 영화'매그놀리아'를 찍으면서 톰 크루즈와의 친분으로 사이언톨로지를 더 깊숙이 알게 됐다"는 것은 그를 통해 안 영화의 앞뒤쪽 사연. "'힐링'을 외치는 우리나라가 전쟁 상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감독의, 그의 진단에 객석은 뒤늦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음날 전주 메가박스에서 상영된 '미카엘 하네케 감독'(감독 이브 몽마외르)에서도 진중한 영화를 좋아하는 관람객들의 열기가 이어졌다. 크리틱 톡에 다시 나타난 평론가 한창호씨는 하네케 작품을 두고 "불편한 진실을 압축시킨 영화"라고 정리했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하얀 리본'(2009)과 '아무르'(2012)를 비롯해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진실 이면의 참혹한 진실에 눈을 뜨라고 다그치는 영화. 그는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잔인한 범죄 등을 군더더기 없이 보여주는 것은 그것은 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내 영화가 허가된 것을 넘어서는 '외설'이길 바란다"는 감독의 말을 인용한 그는 '영하 20도 칼바람'이 부는 비관주의자 하네케와의 만남을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5.06 23:02

까미유의 불행은 누구 책임인가

줄리엣 비노쉬가 등장하는 '까미유 클로델'(감독 브루노 뒤몽2013이하 '까미유')을 선택한 이유는 이자벨 아자니가 주연했던 '까미유 클로델'(감독 브루노 뉘탱1988)와 비교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거두절미하면 풍부한 내면 연기로 세계적인 배우가 된 줄리엣 비노쉬가 카미유의 말년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지난 30일 전주CGV에서 만난 '까미유'는 무려 24살을 극복한 로댕의 연인이자 천재 조각가와의 소통을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크리틱 톡'에 나선 영화평론가 서동진(추계예술대 교수)은 대신 브루노 뒤몽 감독이 제시한 '까미유'가 애초부터 소통을 차단한 영화라는 혐의를 해명하고 미카엘 하네케 감독과 비교해 새로운 '윤리적 시험지'를 내놨다고 평가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알던 까미유와의 결별을 선언합니다. 1915년 정신병원에 감금된 까미유는 '로댕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피해망상에 빠져 고통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동생 폴은 여기서 제발 꺼내달라는 까미유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가면서 누나를 감금시킵니다. 왜 그럴까요."애당초 감독은 "까미유와는 비슷한 그러나 또 다른 폴의 광기에 매료당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까미유의 광기를 예술가의 기질로 간주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해도 됐을 동생이 굳이 돈을 줘가며 누나를 병원에 입원시키는 아이러니에 관해 여러 갈래의 해석이 나왔다. 결국 폴이 '선택받은 자만이 신에게 구원 받는다'는 종교 교리를 찾아 까미유를 이해했던 것처럼 까미유가 자신에게서 불행의 씨앗을 찾길 바랐다는 것으로 대강의 결론이 모아졌다.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파토스(Pathos예술의 주관 감정적 요소) 윤리학과 브루노 뒤몽 감독의 에토스(Ethos예술에 담긴 도덕 이성적 특성) 윤리학을 비교해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친 원인은 때때로 찾기 어렵다는 파토스가 하네케의 영화라면, 기어코 찾고야 말겠다는 에토스가 브루노의 영화로 묘한 대조를 이룬다"는 것. 하지만 서동진은 30년 넘게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야 했던 까미유의 인생을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라는 질문은 던져도 답은 찾지 못한 영화라는 다소 인색한 평가를 내렸다. 영화는 까미유의 절망적인 표정과 생의 희로애락을 읽을 수 없는 정신병자들의 텅 빈 표정이 롱테이크로 이어지면서 객석에 불편한 화두를 던지지만 마지막 까미유의 얼굴에서 그 어떤 것도 읽어낼 수 없어서다. 우리가 알던 까미유와의 작별은 그래서 낯설고 답답했다.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5.02 23:02

커리큘럼으로 짜본 하네케 감독의 영화들

훌륭한 교사가 그 자체로 좋은 교육과정이라면, 하네케의 필모그라피는 충성도 높은 지프광들에게 괜찮은 커리큘럼이다. 내면의 심연을 고찰하는 커리큘럼으로서 하네케는 사실 친절한 교사는 아니지만, 피할 길 없다. 하네케는 불편하다. 때론 비관적이다. 그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증상을 깨우지만 도덕과 교훈으로 가르치려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제 지프에서 마주할 '성'과 '감독 미카엘 하네케'를 앞두고 예습이든 복습이든 시간표를 짜 본다. 이사벨 위페르의 도발을 보여준 '피아니스트'는 건너뛴다. 아래는 수준별 학습 커리큘럼.△ 교양 필수 '아무르'= 하네케는 '아무르'를 통해 선수만 알던 감독에서 민간인들도 제법 아는 선생이 되었다. 그러니 영감님의 심연 혹은 미궁 탐색은 아무래도 '아무르'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 그에게 두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긴 만큼, 명불허전이다. 안락한 조명의 거실에서 프레스토 16분음표의 섬세함을 표현하던 제자의 연주에 기쁨을 표현하던 할매가 이상하다. 경동맥이 막히는 질병이 도둑처럼 찾아온 것. 노인은 존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병은 깊어진다. 미동 없는 하네케의 카메라는 상호의존적이지만 독립적 존재인 독한 할머니의 심지를 닮았다. 반복되던 암전이 아예 어둠일 때, 관객들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 영화는 묻는다. 평생 사랑한 아내가 갑자기 '변신'의 벌레가 되어있는 상황에서 사랑의 가치는 무엇인가고. 고독사가 사회문제인 지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지만 노인의 세계는 있을 텐데. 죽음에 대한 준비는 100세 실손보험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스스로 알아서 노년존재에 대해 고민하라는 것. △ 교양 선택 '하얀 리본'=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 순수와 복종, 종교적 엄격함이 주는 불안하고 불쾌한 분위기를 다룬 '하얀 리본'에서 마을 아이들에게 닥쳐오는 끔찍한 폭행 뒤에는 공동체의 비밀이 도사리고 있다. 지역 토호인 남작의 권한 앞에 온 마을이 복종하고 아이들은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내세운 종교 앞에 순종하지만 사실 마을은 광기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침묵 속 아이의 눈을 도려낸 악마는 누구일까. 교사가 진실을 밝히려는 순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청년이 쏜 한 발의 총탄은 세계 제1차대전을 부르고 만다. 남작과 위선적 어른들의 폭력은 거대한 폭력 속에 묻히고 마는 것. 과연 우리는 아이들에게 하얀 리본을 매어주고 있지는 않은지. △ 전공 선택 '퍼니게임' '히든' '일곱 번째 대륙' = '퍼니게임' 감상은 고문에 속한다. 하네케 자신의 1997년 작품을 2007년 새롭게 복제한 리메이크작. 해질녘, 클래식이 흐르는 별장에 찾아온 잘 생긴 이놈들은 주인장의 다리를 부러뜨리는데, 글쎄, 악마는 흰색을 입는가? 제3세계를 찾아온 유럽인들이 그들은 아니었을까 유추하기엔, 섬뜩하다. 나사를 조이듯 벌어지는 이 레미제라블에 관객은 무력감에 빠진다. '히든'의 오프닝은 고정된 카메라다. 평화로운 중산층 주택가 화면에는 소리가 없다. 여기 갑자기 소리가 끼어들면서 화면이 리와인드된다. 조르쥬의 집에 자신들의 일상사를 찍은 비디오테이프와 섬뜩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긴 그림이 배달되는데. 테잎은 파도가 모래성을 흔들어대듯 부부간의 신뢰를 조금씩 무너뜨린다. 40년 넘게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며 응급의 봉합으로 살아온 조르쥬의 평온한 삶은 사실 프랑스의 치부인 것. 그래, 조르쥬는 '정신 승리' 방법으로 기억을 감추고 조작하는 현대 지식인들의 상징일 터. '일곱 번째 대륙'은 영감님의 데뷔작. 자동차 세차기 안 소음, 차고가 개폐되는 소리, 도트프린터가 뱉는 기계음, 식탁에서 저작하는 소리 등 이 영화는 소리 백화점이다.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 클로즈업으로 반복되면서 심하다 싶게 잘리는 암전의 시간들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 특강 혹은 과외 '성' = 궁금하다. 세 차례의 약혼을 모두 파국으로 끝낸, 보험국에서 일하다 폐결핵으로 죽은 남자 카프카. 그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소설 '성'(城)을 영화화한 하네케의 '성'에서 그의 불확실성, 불안, 비이성은 어떻게 형상화될까? 하네케에 중독된 선수에게 오스트리아에서 두 달 전 개봉된 다큐는 아주 따끈따끈한 작품이 될 것이다. 둥글게 둥글게 손뼉을 치면서 환하게 웃으라고 매트릭스 운영자가 고함칠 때, 우리는 링가링가링 춤추는 시늉을 하며 극장에 간다. 왜? 하네케 커리큘럼을 마스터한 우리는, 이제 '선수'니까./영화평론가 신귀백

  • 영화·연극
  • 기고
  • 2013.05.01 23:02

디지털 삼인삼색 '만날 때는…' 고바야시 감독

지난해 국제경쟁 심사위원과 '위기의 여자들'을 상영하며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던 고바야시 마사히로 감독(58). 올해도 디지털 삼인삼색에 '만날 때는 언제나 타인(ST RANGER WHEN WE MEET)'으로 다시 전주를 찾았다. 디지털 삼인삼색은 전주영화제가 선정한 세 명의 감독에게 세계 최초 상영을 전제로 작품당 5000만원을 지원해 30분 내외 디지털 영화를 제작하도록 한 프로젝트. 올해는 고바야시 마사히로 감독 외에 장률 감독의 '풍경', 에드윈 감독의 '누군가의 남편의 배에 탄 누군가의 아내'가 함께 초청됐다.'사랑의 예감', '위기의 여자들', '일본의 비극', '백야' 등 전작에서 가족죽음, 죄(罪)에 대해 이야기했던 고바야시 감독은 '만날 때는 언제나 타인'에서도 이 '카드'를 선택했다. 그간 4편의 영화에 직접 출연하며 보여줬던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화는 남편 가와무라 료이치가 도쿄에 출장을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사이 아내 유키코는 초등학생 아들 겐지와 함께 내연남과 외출에 나선다. 하지만 자동차 사고로 아들 겐지는 죽고 유키코도 평생 한쪽 다리를 절어야 하는 장애를 안게 된다. 료이치와 유키코는 여전히 함께 살지만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말도 오가지 않는다. 매일 같은 식당에 가서 마치 남처럼 점심을 함께 먹는 모습이 묘한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게 만든다. 이번 작품은 내용형식적 측면에서 지난 2007년 발표한 '사랑의 예감'과 닮아 있다. '사랑의 예감'은 살인 사건으로 딸을 잃은 남자, 죄책감에 시달리는 가해 소녀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둘은 일상에서 마주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지나친다. 하지만 어느새 서로를 소중한 존재로 느끼게 된다.고바야시 감독은 "'만날 때는 언제나 타인'의 시나리오 초고는 '사랑의 예감'을 발표할 당시에 쓴 것이지만 여러 조건상 실현하기 어려웠다. 실화는 아니지만 부부 사이의 용서를 그리고 싶었다. 결국 내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죄인의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적인 관점을 빌어 말하면 결국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람은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덧붙였다. 이번 영화에서 '사랑의 예감'에서 보여준 형식적 실험은 계속된다. 언어적 소통을 전혀 하지 않는 괴이한 부부를 다룸으로써 부부 관계 속의 이방인을 그려냈다. 또 내면의 갈등을 생생히 묘사하기 위해 무성영화의 요소를 빌린 영화적 실험을 감행했고, 늘 그렇듯 속전속결로 찍었다. 그는 "항상 즉흥적인 방식으로 마지막 순간에 모든 걸 걸고 영화를 찍었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면서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관객들을 안심시켰다. 이어 "'디지털 삼인삼색'을 통해 디지털이 아니면 불가능한 영화 제작 실험과 필름 시대가 지녔던 보편성을 동시에 불어넣고 싶다. 이 프로젝트가 그 선도자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전주영화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한국 배우만을 캐스팅 해 한국어 영화를 만드는 것"을 추진 중이다. 그 무대는 전주 일대가 될 것이다.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4.25 23:02

【''숏!숏!숏!2013' 원작 제공 소설가 김영하】에너지 넘치는 영화에 높은 점수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고석만4월5일~5월3일)의 '숏!숏!숏!2013'(3편의 디지털 단편영화 프로젝트)은 소설가 김영하(45)의 단편이 장식한다. 이상우이진우박진성 박진석 감독이 내놓은 '비상구'(원작'비상구'),'번개와 춤을'('피뢰침'), 'THE BODY'('마지막 손님')를 두고 이상용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역대 최고의 완성도를 보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만큼 원작이 탄탄하다. 김영하는 우리 문학이 잘 다루지 않았던 영역을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오면서 한국 문단사에서 굵직한 상이란 상은 다 휩쓴 인기작가여서다. 두 번째 '지프레터' 주인공은 전주영화제에 처음 방문해 한국경쟁 심사를 맡을 소설가 김영하다. 그는 유독 전주영화제와 인연이 없었다. 이상용 프로그래머와의 친분으로 숏숏숏에 합류하게 된 작가는 "늘 젊고 무모한 예술가들의 편"이라면서 "감독들에 관해 전혀 모르지만 대담하고 이상한 작품이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숏숏숏에서 소개될 '비상구'는 뻑치기를 하면서 모텔에 사는 젊은 세대들을 통해 무기력한 한국사회를 묘사한 단편소설. 작가는 여기서 '취향의 계급화'를 건드렸다. 군 헌병대 수사과 시절 저소득층 방위병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얻은 깨달음이 글의 든든한 밑천이 됐다. "그들은 이미 17세가 되면 나가서 살림을 차립니다. 나이가 차서도 집을 나가지 않으면 부모들이 괴롭혀서라도 밀어냅니다. 서로 살기가 힘드니까. 야생의 삶 같은 거죠." 그러나 '비상구'는 이를 성장 과정으로 여기거나 어려운 10대를 돕겠다는 간단한 도덕적 책무로 귀결되지 않으면서 잠시라도 '취향의 계급화'에 고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작가는 "이는 90년대 이래 한국문학이 중산층, 지식인 중심으로 쏠린 데 대한 나의 문학적 응답"이라면서 "우리가 위만 보고 살아서 그렇지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비상구'의 세계는 아주 가까이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작가는 문학과 영화는 어떻게 비슷하고 또 다르다고 여길까. 그는 폴 오스터의 말을 인용해 "영화는 평면에 투사된 이미지로 구성된 2차원 예술인데 반해 소설은 독자가 직접 개입하고 적극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읽어나갈 수 있는 3차원 예술"이라고 했다. 자신의 소설에 대해 "별 고민 없이 읽어도 대체로 즐겁게 읽을 수 있고 깊이 파고들면 또 그 나름의 재미가 있는 소설"로 여기는 편이지만 영화를 쉽다 어렵다로 판단하진 않는다. 토니 모리슨의 말을 빌렸듯 "작가는 서가에 없는 책을 써야 한다"는 신념은 영화에도 해당돼서다. "가로수와 부딪혀 자동차 사고가 났다고 해서 가로수에게 책임이 없듯" 오독의 책임은 결국 독자 혹은 관객에게 있는 것. 그의 작품에서 나오는 기발하고 경쾌한 매력은 이 같은 자유로움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말미에 작가에게 영화의 재료가 된 '비상구', '피뢰침','마지막 손님' 의 문구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비상구'의 마지막 대사인 "'니미 씨팔이다'"를 꼽았다. "에너지가 넘치는 영화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는 설명과 함께.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3.04.24 23:02

어두운 사춘기와 작별하고 싶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영화는 대개 불편해도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불편한 이유는 대개 이렇다. 한 번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보지 못한 계층의 육성을 다루거나 핏발 선 눈으로 카메라 렌즈를 째려보는 그런 이들에게 돌직구를 날릴 수 있는 투박한 미학에 의미를 부여했다. 영화 '클래스'로 2008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프랑스의 로랑 캉테 감독이 개막작 '폭스파이어'(FOXFIRE)를 들고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찾는다. 캉테 감독은 블루칼라 아버지와 화이트칼라 아들의 갈등을 담은 데뷔작 '인력자원부'(1999)로 프랑스 영화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두 번째 영화 '타임아웃'이 200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돈키호테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폭스파이어'는 현존하는 영미권 대표 여성작가 조이스 캐롤 오츠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 하지만 감독은 "영화는 소설처럼 주인공의 흐릿한 기억에 따라가기 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충실하는 방식으로 다가갔다"고 설명했다. 영화 곳곳에 깔리는 메디의 내레이션은 당혹스러운 기억들로 인해 느끼는 현기증에 가깝다. 감독이 피멍 든 소녀의 성장기의 배경을 1950년대 미국으로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모든 것이 밝고 가능한 미래를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표상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관심을 기울이는 미국의 모습은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에 있는 내용보다 더 과격하다는 감독은 미국 정복과 자본주의 경제의 화려함에 관한 역사를 넘어서 계급투쟁, 인권 운동, 파업 등과 같이 그 때 그 시절의 투쟁이 '현재 진행형'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에게 너무 어두운 성장 터널을 걷게 하는 것에 대해 감독으로서 책임감은 느끼지 않는지 물었다. 신문만 들춰봐도 더 잔혹한 이야기가 차고 넘치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들이밀 필요가 있느냐는 것. 그러자 감독은 "혼자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세상, 순한 양처럼 행동해야 하는 상황으로 더 내성적으로 변한 사춘기 시절을 아직 떨쳐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이 영화는 "우리가 한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순간들을 되돌아보기 위해 만든 영화"라면서 "'THE CLASS' 이후 오츠의 소설을 차용하고자 했던 내 바람이 청소년에 관한 영화를 만들게 된, 마음의 빚이 됐다"고 고백했다.로랑 캉테 감독은 1961년 프랑스 출생. 다큐멘터리 '철야'로 영화계 입문, '타임아웃'(2001)으로 '제58회 베니스영화제'에서 평화영화상·돈키호테상, '클래스'(2008)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수상.

  • 영화·연극
  • 김정엽
  • 2013.04.23 23:02

올 전주국제영화제 '소녀시대' 주목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걸 그룹 소녀시대가 외친 노랫말은 '삼촌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지만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소녀들을 어리다고 놀리다가 진짜 큰 코 다친다. 자유, 독립, 소통의 정신을 잇는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고석만4월25일~5월3일 전주영화의거리 일대)가 올해는 '소녀 시대'에 주목했다. 개막작 '폭스 파이어(FOXFIRE)'와 폐막작 '와즈다(WADJDA)' 모두 '소녀 시대'의 성장기를 다뤘다. 이외에도 20편에 가까운 영화들이 직간접적으로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개막작 '폭스파이어' 이 땅에서 남자로 산다는 건 애초부터 일종의 죄악일지 모른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남자란 존재는 종종 여자에게 상처를 남겼다. 로랑 캉테 감독의 '폭스 파이어'는 이유 없이 성을 유린당해야 했던, 처연하고 힘겨운 소녀들의 삶의 방식에 주목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성폭력을 경험하고 난 뒤 상처 입은 소녀들은 갱단 '폭스파이어'를 조직해 남성들을 유혹한 뒤 돈을 갈취하는 방식으로 세상이 그들에게 휘둘렀던 폭력에 대해 복수한다. 이들의 어두운 성장 터널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팍에 돌덩이 하나 얹은 것 마냥 답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폐막작 '와즈다'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여성 감독으로 주목받은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 남녀의 생활영역이 엄격히 구분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감독이 남성 스텝에게 명령을 내리며 영화 현장을 지휘하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현실은 고스란히 영화 속 이야기에 녹아든다. 주인공인 십대 초반의 소녀 와즈다는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자전거를 타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주인공 와즈다가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암송하는 대회에서 우승하는 장면. 이슬람 문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코란은 율법으로 가득차 있는 전통적 세계지만 소녀는 대회 우승 상금으로 자전거를 사고자 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변화할 미래를 표상하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다양한 섹션 속 '소녀 시대'들위탁시설에서 학대 받는 10대 소녀를 다룬 오자와 마사토 감독의 '깃털(REMIGES국제경쟁부문)', 춤을 통해 세상의 두려움을 떨치는 여고생 이야기를 담은 이찬호 감독의 '플랑멩코 소녀(한국단편경쟁부문)',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동떨어져 생활하는 소녀를 그린 웡 첸시 감독의 '이노센트(INNOCENTS월드시네마스케이프)' 등 소녀들의 이야기는 영화제 내내 계속된다.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4.23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