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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부시정권에는 상생이 없다

부시는 일시적인 정권의 인기 유지를 위해 성냥을 켤 것인가. 지난 9월 11일 뉴욕의 수치를 두고 영화보다 짜릿한 명품이었다는 우스개 소리를 접했다. 그 웃음의 배후에 숨어 있는 반미감정 또는 고소(苦笑)의 뜻을 부시와 미국인은 모를 것이다. 피의 보복을 불사하겠다며 세계의 여론몰이에 몰두하는 모습은 광기에 지나지 않는다.

미소냉전이 극을 치닫을 때 세계는 양대 수퍼 파워에 의한 상호 견재속에 균형(평화)를 누렸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지고 동구가 쓸어진후 미국은 의연한 거인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매사를 우격다짐하듯 군사력으로 해결하려 들었다. 멀게는 걸프전으로부터 코소보 전쟁까지 그리고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팔레스타인 분쟁의 배후에 도사린 미국의 논리는 여전히 냉전체제하의 힘의 질서 뿐이다.

힘은 무력의 다른 이름이다. 무기는 죽임의 세계인식일 뿐이다. 컬럼버스로 대변되는 초기 미국의 개척사는 죽임의 시대 개막이었다. 컬럼버스의 유명한 달걀 세우기는 발상의 전환이 기에 앞서 무의식적인 ‘살의(殺意)’의 발로이다. 

단순히 세우기 놀이를 위해 달걀의 생명 끈을 생각없이 뭉갤수 있는 그 생명 도륙의 연장선상에서 기독교 이주민들은 원주민 인디안을 문명에 의한 야만의 척결이라는 미명하에 죽였다. 그런 죽임의 문명에 대한 누적된 공업(共業)의 결과가 9월 11일의 테러일 것이다.

부시정권은 야심찬 MD구축에 대한 열강의 반대 여론을 잠재우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그러나 수퍼 파워의 한 축이 무너진 유일 독주의 현 세계 질서를 새로운 무기 체제로 재편하려는 저의는 걸프전 이후 하강국면인 방위산업의 활로 찾기일 것이다. 

세계 제1의 무기 수출국이 미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더러운 전쟁”을 장기화하려는 부시정권의 속 뜻은 미국 방위산업계의 이해와 맞아떨어진다. 가난한 아프카니스탄을 포함하여 세계 도처를 전쟁대상으로 삼겠다는 속 뜻은 무기 소비를 위한 기획에 다름 아닐 것이다. 

자국민의 인명 피해가 아니면 남의 목숨을 외면하는 그 오만함, 1·2차 대전의 참화를 직접 자기국토에서 체험하지 않은 미국인의 전장(戰場) 불감, 선조로부터 물려받은‘죽임’에 대한 무감각, 늘 세계 일등 시민어야하는 만족하는 국민의식이 대량 인명살상을 부르는 전쟁을 서슴 없이 거론한다. 

이번 테러 사건을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문명의 대충돌의 증거로 확대 해석하려 들지만 그것은 황화(黃禍)의식의 복고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의 지난 9월 11일 수치는 1·2차 대전과 그 이후 냉전으로 얼룩진 상극의 세계질서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진통의 내파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새롭게 도래하는 상생의 질서 구축을 위해 세계 지성에 던지는 푸르른 종소리이다. 

테러리즘을 반대하는 고조된 세계여론은 반드시 그 원인 규명을 향해 반전(反轉)되고 미국은 감당할 수 없는 여론의 포화에 직면할 것이다. 원남전이 진행중일 때 미국내의‘개인’지성집단은 반전운동을 불사했다. 

매우 상징적인 훌륭한 경험을 부시는 교훈으로 삼아야할 것이다.‘더러운 전쟁’의 마지막은 세계여론의 십자포화에 직면하여 지리멸렬한 것이다. 부시는 성냥을 켜지 않아야 한다.

 

 

/ 박영학 (원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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