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체육교육과에 올 경사가 났다. 경기도교육청이 시행한 올 신규 중등교사 임용 시험에 7명의 합격자를 배출시킨 것이다.
중등교사 신규 채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에서 경기도교육청의 중등 체육교사 임용시험에는 전국 각 대학 체육과 출신들이 대거 몰린 치열한 경연장이었다. 여기서 이학교 출신들이 전국적으로도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많은 수의 임용시험 합격자를 배출한 데는 합격자 개개인의 능력 외에 또다른 알파가 있었다.
그 알파는 선후배간 돈독한 관계다. 선배 교사들이 교사 임용시험 관련 각종 정보와 노하우를 제공하고, 시험 준비기간 격려를 아끼지 않은 것이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됐다.
동문들간 끈끈한 정을 보여준 이같은 사례들이 원광대 체육교육과 동문들 사이에 유달리 많다.
스포츠맨의 일반적 특징으로 꼽히는 ‘화끈함’ ‘의리’와 같은 기질에다 아무래도 그동안 국립 사범대 출신에 비해 교직사회 열세에 있었던 점들이 동문이라는 테두리를 더 굳건하게 했다.
실제 원광대 체육교육과는 대학 동문사회에서 쉽지 않은 기수별 모임이 잘 이루어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수별 모임 조직이 없는 기수가 없을 정도. 선수 출신(특기생)과 일반 체육학 전공자들이 합쳐 있어 다소 이질적일 수 있음에도 동기들간 화합이 잘된다는 게 배드민턴 선수 출신인 이은구씨(76학번)의 이야기다.
원광대 체육교육과 졸업생들이 가장 많은 진출한 곳은 교육계. 67년 학과가 개설돼 지금까지 배출된 1천여 동문중 교사로 재직중인 동문 수가 대략 2∼3백명 정도로 추산된다.
도내 1백50여명과 수도권에 50여명이 재직하고 있고, 전국 각지에서 체육교사로 활동하는 동문도 상당수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전주·완주지역 교사 동문회 총무를 맡고 있는 방명국씨(효문여중교사)의 말이다.
도내 초·중등 체육교육을 총괄하는 자리인 도교육청 체육보건교육과장에 양재욱동문(2기)가 자리잡고 있고, 남중태 장학관과 소병희 장학사가 도교육청에 재직중이다.
울산 학성고 교감으로 있는 윤수현씨는 그지역에서 타지 출신임에도 교육감 출마 권유를 받을 만큼 왕성하게 활동하는 동문으로 알려졌다.
대학교수로 몸담고 있는 동문은 40여명. 1회 출신으로 현재 이대학 자연과학대학장으로 있는 이민수교수를 비롯, 김구·두만균·조충현·홍성찬교수 등이 모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80년도 아시아 선수권대회 복싱 금메달리스트인 유종만씨는 한국체대 교수로 변신했고, 운동생리·처방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전남대 김도희교수도 이대학 출신이다.
체육 전문인으로서 지역 체육발전에 업적을 남긴 동문들도 많다. 총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김순재 전주공업대교수(1회)는 골프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국내 몇 안되는 골프 박사. 어려운 여건에서 독학으로 골프 전문가가 된 김교수는 골프 불모지인 전북에 골프의 씨를 뿌렸다.
방학중 학교 교사들을 위한 골프교실을 여는 등의 골프 대중화에 그는 지금도 힘을 보태고 있다.
핸드볼 국가대표 출신인 두만균교수는 도체육회 이사 등으로 지역 체육계에 적극 참여하고 있고, 홍성찬교수는 한국운동영양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군산대 자연대학장을 역임한 이동재교수(3회)도 지역 체육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주여고에서 김두리를 국가대표로 길러낸 이용운씨는 국가대표 코치와 전북양궁협회 전문이사로 활동중이고, 정읍여고 핸드볼팀을 전국 정상에 우뚝 세운 권오영교사는 이학과 1기 출신이다.
모교 핸드볼팀 감독을 맡고 있는 김종순씨는 시드니올림픽때 핸드볼 국가대표 감독을 이끌었고, 만경고 교사로 있는 유재수씨는 세팍타크로 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있다.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는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코치로 있는 권승택씨도 체육교육과 출신이다.
교직과 체육계에서의 활발한 활동에 비해 타분야에서의 활동하는 동문들의 폭은 그리 넓지 않은 편. 원광대 총동문회장(15대)을 역임한 뒤 현재 1회 동기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박찬석씨는 사업(일광토건 회장)에서 성공한 대표적 동문으로 꼽힌다.
소비재 생산업체인 (주)카팍대표 곽계흔씨, 동양금속대표 백종기씨(78년졸)·성우섬유 대표 김현곤씨(81년졸)·오동섬유대표 이성로씨(83년졸)·이리우수 대표 이맹성씨(84년졸) 등이 원광대 체육교육과 출신 주요 사업가들. 핸드볼 국가대표 출신의 박남철 동문은 현재 핸드볼 국제심판으로 활동하며 사업쪽(익산 황제뷔페 사장)으로도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김제 금산중 교사인 최상섭씨는 체육전공자로서는 드물게 등단 시인이어서 이채롭다. 대학신문 편집장을 맡기도 했던 최씨는 지난해 ‘한국시’ 7월호에 ‘여름밤 풍경’ 등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진경여상 교장 출신으로 현재 도교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익수씨(76학번)도 동문.
조용순(81년졸·대통령 경호실 부장)·장공진(83년졸·경호과장)·김종철씨(83년졸·경호계장) 등 동문 3인방이 대통령 경호실에 몸담고 있다. 82년 졸업 동기인 유의상·이정렬씨는 사단 헌병대장으로 있으며, 김석철씨는 국군과학수사연구소 연구 3과장(소령)으로 재직중이다.
배출된 스포츠 스타들
67년도 원광대 체육교육과가 만들어질 당시 학과 개설을 둘러싸고 적지않은 논란이 있었다. 체육과 특성상 아무래도 거친 학생들이 많을 것이라는 염려에서 학교 재단측이 상당히 망설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단의 염려와 달리 원광대 체육교육과는 오늘날 원광대 이미지 제고에 일등공신을 한 학과로 평가받고 있다. 원광대에서 배출한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학교의 명예를 높였고, 그 모태가 체육교육과였기 때문이다.
체육특기생중 체육 관련 아닌 학과 배치를 받는 경우가 있으며, 사범대 소속 체육교육과 외에 자연과학대에 스포츠레저학부(스포츠건강학, 사회체육학)가 근래 개설되기도 했지만 원광대를 빛낸 스포츠 스타 대부분은 체육교육과 출신들이었다.
실제 원광대에서 배출한 국가대표 출신 선수만 대략 1백여명선. 84년 LA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인 신준섭씨(현 테릉선수촌 복싱감독)와 LA올림픽과 시드니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인 김문수(혼합복식)· 김동문씨(현 삼성전기) 등 3명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체육교육과에서 배출됐다.
야구·핸드볼·레슬링·배드민턴 등이 원광대가 육성하는 대표적 종목이며, 그중 체육교육과에 특기생들이 많이 포진된 종목은 핸드볼과 배드민턴. 서울올림픽 핸드볼 국가대표로 활약한 오용기씨(현 광주시청코치)를 비롯, 김구·이종범·유봉준·김홍식·두만균·임영철(LG코치)·임규화(정석항공고 감독)·강태구·이상효·김용수(작고)·김종순(원광대감독)·강태구씨(제일생명감독) 등 남자 핸드볼 국가대표 출신만 30여명에 이른다.
배드민턴 역시 원광대 체육교육과가 독보적이다. 박주봉과 짝을 이뤄 덴마크 오픈 우승과 세계선수권대회서 동메달을 따며 한국 배드민턴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시작한 이은구씨(현 전북은행코치)를 시작으로, 원광대 체육교육과가 배드민턴 국가대표 산실로 자리잡았다.
이씨와 동기인 권승택 현 국가대표 코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문수·김동문씨, 이득춘 현 국가대표 주니어감독, 하태권씨(삼성전기) 등이 국가대표를 역임하거나 현 국가대표로 활약중이다.
마산성지여중을 전국 정상에 올려놓은 김범식씨도 국가대표를 역임한 원광대 체육교육과 출신이다. 올림픽 여자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정소영씨가 그 부인이다. 국가대표 출신 최정씨는 현 원광대 배드민턴 감독을 맡고 있다.
/ 나의 대학시절 / 1회 입학 임인수씨
토요일 오전, 촉촉한 봄비 속에도 캠퍼스는 벚꽃으로 화사하다. 5일제 근무로 사방이 조용하여, 중앙도서관을 찾는 학생들의 모습이 오히려 정겨웁다.
주말이면 일상에서 벗어나 모두들 여가를 즐기는데, 연구실 지키는 것이 습관되어 있으니, 또 하나의 내 모습이 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도 쑥스럽다.
생각해 보면 행복하다고 할까, 행운이 분명하다. 이 학교에서 배우고 아내를 만났으며, 생애를 바칠 교단을 제공받았으니 말이다. 전국 굴지의 명문사학이 된 우리학교의 모습은 나의 학창시절과는 사뭇 다르다. 1967년은 박정희대통령이 통치력이 힘을 발휘하던 때이다.
조국근대화라는 구호아래 도시화·산업화가 가속화되던 당시, 나는 고향의 사학을 택하였다. 원광대학교 체육교육과 제1회생으로 입학한 것이다.
전라북도에서는 처음으로 개설된 체육교육과인데 지금은 명예교수로 계시는 성종림선생님이 학과장을 맡고 계셨다. 체육이 다만 육체를 기르는 학문이 아님을 선생님은 일깨워 주셨다.
원래 법학을 전공하셔서 그런지 말씀에 철학이 배여 있어, 체육이 지육(智育)·덕육(德育)·체육(體育)을 합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원리를 일찌감치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체육교수로서의 삶은 이를 실천하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학과생은 30명 정원이었고, 지금껏 활발하게 연락이 이루어지고 있다. 체육관은 물론 운동장조차 다듬어지지 않아, 이곳 저곳으로 매트며 철봉 등 교육장비를 옮겨서 수업이 이루어졌으니, 비가 올 때면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지금의 캠퍼스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은 당시를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거기에는 분명히 도약을 향한 거대한 꿈틀거림이 있었다.
그것이 지금의 체육교육과 외에 체육학과와 사회체육과 등의 설치와 핸드볼부, 권투부, 베드민턴부, 레슬링부, 야구부 등의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LA올림픽(1984)에서 복싱의 신준섭선수 금메달 획득을 시작으로 매회의 올림픽 시상대에서 빠지지 않는 후배제자들의 늠름한 모습을 볼 때면 뿌듯함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엘리트체육에서 사회체육·생애체육을 열어가는 오늘이다.
출석점검이 그리 엄하지 않던 학창시절, 유명인사들의 특강소식이 있을 때면 서울까지 겁없이 달려갔었다. 요즘은 캠퍼스에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이런 개벽시대에 후배제자들은 덕육을 겸한 체육인으로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가꾸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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