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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사람과 풍경] 우리도 이젠 '한국인' 대접받고 싶어요

자생적 발족 장수지역 필리핀 이주여성회

지난 18일 장수군청앞 장수영어교습소에 모인 필리핀 이주여성들이 창립총회를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지난 18일 장수지역에 거주하는 필리핀 이주여성들이 자생적으로 첫 모임을 발족한다는 소식을 듣고 장수읍을 찾았다. 토요일 오후인지라 여느 농촌 읍내처럼 인적도 드물고 평온한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필리핀 이주여성들의 창립총회가 열린 장수군청 앞 '장수영어교습소'에는 활기가 넘쳤다. 4평 남짓한 공간에 19명의 이주여성들과 어린 자녀들이 빼곡히 들어 찬 가운데 영어와 필리핀 토속어인 다굼어, 남부 스페인계 따깔루어, 우리 말 등 4개 언어가 혼용되며 진행된 회의장은 마치 시장 통을 방불케 했다. 말도 안 통하는 일상에서의 갑갑함에서 벗어난 이주여성들은 모처럼 고향사람들을 만난 해방감 때문인지 봇물 터진듯 말문 열렸다.

 

영어교습소를 운영하는 레오노라씨(40)의 주선으로 이날 창립된 ‘장수지역 필리핀 이주여성회’는 창립목적과 자신들이 해야할 일들을 2시간여에 걸친 열띤 토론을 거쳐 정립했다.

 

이들은 먼저 모임을 이끌어갈 회장에 레오노라씨, 부회장에 로즈마리씨(39)를 선출하는 등 임원진을 구성하고 월 5000원의 회비와 불참시 5000원의 벌칙금 등 자체 규약을 만들었다.

 

특히 한국인과 필리핀 이주여성들 사이에 좋은 관계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외국인 이주여성을 위한 정부와 자치단체 차원의 지원을 적극 요구해 나가기로 했다.

 

당장 이들에게 절실한 것은 일자리였다.

 

남편들이 대부분 영세 농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이 이들이 한국사회에 정착하는데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레오노라 회장은 “이주여성들 대다수가 마땅한 수입이 없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주여성들도 한국사회의 일원인 만큼 정부나 자치단체에서 일자리를 적극 주선해 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주여성 가운데는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가 많은 만큼 영어강사나 통역 번역 등 어학관련 일에 종사하는 것을 원했다.

 

7년 전 이주해온 릴리안씨(30)의 경우 남편이 병으로 죽은 뒤 재혼을 했으나 현 남편도 병으로 앓아누워 자신이 식당 허드렛일로 남편과 3자녀의 생계를 꾸려가고 있지만 변변치 않는 수입으로 버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으로 체계적인 한글교육 지원이다.

 

이들은 남편 뿐만 아니라 아이와 시부모, 이웃들과 제대로 의사소통이 안돼 어려움이 많다는 하소연이다.

 

8년 전 한국에 온 바리사씨(30)는 “처음 한국어를 전혀 몰라 사람을 호칭할때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애를 먹었다”며 “남편 친구들이 ‘야임마’라고 하길래 시부모를 ‘야임마’라고 불렀다가 된통 꾸지람을 들었다”고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다행히 장수지역의 경우 뜻있는 사람들이 ‘민들레 아카데미’를 개설, 한글교육을 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의 많은 이주여성들은 이 같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주여성들의 한국사회 정착을 위해선 한국 문화와 요리교육 등도 필수적이다.

 

군청 영어강사로 활동중인 리셀씨(25)는 “필리핀과 달리 직장일 뿐만 아니라 가사 일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여성들의 삶과 부모에 무조건 순종적인 문화도 잘 이해되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었다”고 토로했다.

 

밀리사씨(28)는 “막 결혼해 오자 동네 아주머니들이 처음 봤는데도 엉덩이와 어깨를 손으로 툭툭 치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었다”며 “처음에는 잘못을 나무래는 것으로 알았는데 나중에야 반갑다는 표시인 줄 알게됐다”고 말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안고있는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자녀교육이다.

 

한국인 남편과 이주여성들 사이에 태어난 코시안들은 얼굴 생김새나 피부색 때문에 또래집단에서 왕따를 당하기 일쑤이다.

 

이 같은 상황을 부모가 잘 지도해야 하지만 대다수 남편들은 농사일로 바쁘고 이주 여성들은 한국어를 몰라 자녀교육은 물론 대화도 잘 안되다보니 부모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로즈마리 부회장은 “코시안들은 학교생활과 가정교육에서도 어려움이 많다”고 들고 “코시안들에 대한 한글교육과 컴퓨터 등 학원교육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이 아쉽다”고 밝혔다.

 

이주여성들의 또다른 문제점은 남편의 음주벽과 폭력, 시부모의 냉대 등을 꼽는다.

 

농촌 총각들 대부분 뒤늦게 국제결혼한 탓에 나이 차가 보통 10∼17살 정도 나는데다 고된 농사일 때문에 술을 많이 먹게되고 어린 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많아 부부사이에 금이 가는 사례도 종종 있다는 것.

 

레오노라 회장은 “언어와 문화 생활환경 등이 전혀 달라 갓 결혼한 이주여성들이 울먹이며 전화를 해올 때가 많다”며 “행정기관이나 여성단체 등에서 이들을 위한 상담창구를 개설해 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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