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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화의 발견] ⑫거리로 나선 예술인들

다양한 장르 문화인들 참여…'더불어 사는 게 예술' 실천

6월 10일 전주시내를 밝힌 촛불집회에서 도립국악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무용 공연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꽃샘바람은 가벼이 촛불을 희롱한다. 촛불이 일렁거릴 때마다 거리에 선 사람들은 꼿꼿하게 촛대를 다시 세운다. 어디선가 대금연주가 가슴을 저미고, 절도 있는 북소리와 시(詩) 한 편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랩과 판소리, 민중가요와 노래의 가사를 바꾼 대중가요들이 답답한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잔치에 들뜨고, 거리는 눈물 나는 감동과 신명난 웃음에 떠들썩하다. 어둠을 머금은 촛불은 더 휘황하게 일룽거린다.

 

 

거리로 나온 예술인들. 지금 이들에게 세상은 원고지이고, 악보이고, 캔버스다. 이들은 공동체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임을 공유하면서, 내 작품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리가 공동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더불어 삶을 실천하는 것이 예술의 한 부분임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전북미술인들이 내건 흰 천에 시민들이 '쇠고기 수입'에 대한 의견을 적고 있다. ([email protected])

전북도립국악원노동조합 김종균 지부장과 조합원들은 요즘 부쩍 바빠졌다. 지난 2일부터 촛불문화제의 선두에 섰기 때문이다. 이들이 들려주는 실내악과 무용, 사물놀이와 판소리는 촛불문화제의 흥을 돋우는 것뿐만 아니라 전북의 전통문화예술을 널리 알리는 특별한 기회가 되고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촛불문화제를 통해 창작작품도 선보였다. 이병렬씨가 세상을 등진 9일 오거리 무대에 오른 이화진씨의 진혼굿을 비롯해 최은숙·이윤경·백인숙씨의 창작무용 '염원', 고양곤씨의 창작판소리 '퉤(退·퇴), 명박이가' 등이다. 특히 창작판소리는 7일 첫 공연에 이어 10일 앙코르공연을 펼치며 판소리의 힘과 판소리 본고장의 자긍심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미술인들도 적극 동참을 선언하며 문제의식을 함께 했다. 유대수, 박진희, 이근수, 김두성, 윤길현, 김기원, 김성석, 이준규, 양성모, 박성수, 남지현, 한숙, 박준수 등 전북민예총 미술분과와 전북민미협 회원들은 '광우병쇠고기수입반대미술인행동'이란 단체를 결성해 힘을 모았다. 7일부터 10일까지 1백 미터에 달하는 흰 천에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거리전시회를 열었고, 이후 집회에서 버려지는 폐품들로 조형물을 만들고, 촛불문화제 현장을 크로키에 담아 전시하기로 했다. 전북민미협 이근수 대표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희망을 노래할 때, 미술가들은 미술창작으로 그 희망을 가시화시켜내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미술인들이 작업실과 현장에서 다양하게 창작실천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전북민예총은 '대리운전보다 더 자주 울리는' 문자메시지로 회원들의 촛불집회 참여를 독려했다. <○○씨에게 한마디 하고 싶죠? 촛불로 토해냅시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옵니다> <촛불문화제. 가족, 연인, 친구와의 소중한 시간은 오거리에서 함께 하세요> ……. 단순히 행사안내였던 문자메시지는 지금 꽤 창조적으로 변해가면서 많은 회원들의 발걸음을 거리로 향하게 하고 있다.

 

(사)전북작가회의 서철원 청년분과장과 신병구, 김선경, 유수경, 경종호, 문신씨는 '오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얼굴. 특히 유수경씨는 지난 달 31일 단상에 올라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어느 누구라도 이 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할 것을 눈물로 호소했다. 지난 10일에는 장성수, 임명진, 정철성, 김광원, 곽병창, 안도현, 김병용, 김종필, 정종화, 유강희, 이경진, 박태건, 김정경 등 꽤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펜 대신 촛불을 들고 시민의 곁에 섰다. 김용택 시인은 잰걸음으로 현장 구석구석을 살피고, '○○도 나왔구나'· '○○야, 촛농 떨어진다.' 하며 후배 문인들의 의지에 환한 웃음으로 격려했다. 이 날 김성철 시인은 이병렬씨를 추모하며 창작시 '火 花'를 낭송했다.

 

'당신을 다시 안을 수 있다면/나는 펑펑 울지도 몰라/(중략)/환하게 필 꽃을 노래하겠지/지치고 지치면/붉게 그을린 살 밀어 올리며/피멍 같은 꽃잎 피우겠지//손에 손을 건네 꽃을 드네/떠난 당신 너울너울 꽃이 되어/우리 손에서 붉게 피네'

 

촛불문화제 '열성가담자'인 수필가 이덕자씨는 뿔이 난 모양의 머리띠를 두르고, '엄마는 뿔났음'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사)문화연구 창 김성식 대표는 회원들을 도내 곳곳에 '지원'보냈다. 군산이 고향인 삼천문화의집 이준호 관장은 군산, 우리마당 김영신 대표는 익산, 김인득 시인은 진안에서 촛불을 들었다. 판화가 지용출씨와 연극인 고조영씨, 전주한옥생활체험관 김병수 관장, 화가 소영권씨 등 촛불문화제 현장에서 만난 예술인들은 장르도 다양했고, 그 수를 세기에도 벅차다.(기사에서 언급된 사람들은 단지 필자의 눈에 띄었을 뿐이다)

 

이제 한반도의 '초·중·고딩'들에게 라이터는 담뱃불을 붙이는 도구가 아니라 촛불을 켜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예술은 '미적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이란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삶의 한복판에서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함께 피우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촛불문화제에서 문화예술인들은 한 조각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활동을 통해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구태의연한 질문에, 정작 답변은 궁색하기만 했던 순간의 난처함도 어느 정도 사라질 것 같다. 지역의 예술인들이 지역의 주민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촛불문화제. 오늘 타오를 예술인들의 촛불은 또 어떤 빛을 낼까. 이제 우리는 즐길 준비가 돼 있다.

 

*「혼불」에 등장하는 '일룽거리다'는 작가 최명희가 '일렁이다'의 어감을 크게 하여 지은 말이다.

 

/최기우(문화전문객원기자, 최명희문학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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