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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예수병원 110주년 기념 옛풍경 에세이 출간 '글쎄, 저 사람이…'

절망 보이는 풍경 희망 머금은 미소

아이들 얼굴엔 '때꼬장물'이 줄줄 흐른다. 변변한 놀잇감도 없던 시절 땅바닥에서 나뒹굴어 옷도 새까맣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두려움이 담긴 눈으로 렌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두 형제.

 

"찰칵" 기억은 그렇게 빛바랜 추억이 됐다.

 

예수병원 110주년 기념 옛풍경에세이 「글쎄, 저 사람이 그렇게 큰 돈이 있을까」 (도서출판 야소)엔 헐벗고, 배고팠던 6·25 이후 낡은 기억들 200여장이 담겨 있다.

 

 

예수병원 간호사로, 선교사로 활동하던 부례문여사(85)와 그의 남편이 우리나라를 기록했던 사진들을 전달해 책이 엮어졌다. 그는 1910년 한국에 온 탈미지 선교사의 막내딸. 눈은 파랗지만 유전자는 한국인이었다.

 

꽃다운 나이 스물다섯. 1948년부터 1952년까지 그는 예수병원 간호사로 두 번의 큰 사랑을 체험했다. 이미 고인이 된 남편을 만났고, 전쟁 고아들의 영혼들을 돌본 것.

 

전쟁 종군 사진기자였던 남편은 부상을 입어 예수병원에 입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두근거림이 인연으로 이어졌다. 선교사로 전쟁 고아들을 돌보고 교육시킬 때, 남편은 늘 그림자처럼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당시 흑백 사진기가 아닌 칼라 사진기를 든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천연두가 심해 한꺼번에 40명이 입원한 적이 있었어요. 병원에 컵이 모자랐습니다. 군산 미군부대에 가서 맥주 캔을 얻어왔어요. 그걸 컵으로 만들어 환자들에게 물을 마실 수 있게 했어요."

 

남편이었던 프레 몬스터 이름을 따서 부례문이란 한국식 이름까지 붙었다. 이후 그는 경주 문화학교에서도 천사의 손길을 이어갔다.

 

책 곳곳엔 전쟁으로 모든 것이 초토화된 풍경들이 있다. 100만명 이상이 죽었고, 250만명이 집을 잃었던 시절이다. 아랫도리가 벗겨진 채로 혹은 중요한 부분(?)이 헤진 상태로 입고 다니는 아이들이 보인다. 땅바닥에 물건을 놓고 엉덩이만 붙이면 노점이 장터가 되고 장날이 섰던 풍경도 있다. 온갖 장돌뱅이가 시골 장터로 모여 들어 시끄러운 실랑이를 벌이던 때다. 못 먹고, 못 입던 불편한 진실, 불평등한 세기의 짐이다. 하지만 마주하는 이들의 얼굴에선 실낯같은 희망만이 남았다.

 

그녀는 이젠 아프리카 말리의 고아들을 위해 털실인형을 짜고 있다. 우리나라 전쟁 고아들을 보았을 당시의 애틋함과 따뜻한 시선이 엿보인다.

 

지난 1년간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글을 써왔던 고근씨(48·예수병원 홍보실장)는 "야만으로 모든 것이 휩쓸고 간 우리에게 사랑의 수고로 헌신한 부례문 여사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이 책은 그녀의 겸손에 대한 작은 대답"이라고 말했다.

 

1898년 미국 여의사 마티 잉골드가 진료하면서 세워진 예수병원은 국내 근대식 병원으로 세브란스의 광혜원(1885)에 이어 두 번째 병원이다. 3일 110주년을 맞은 병원은 출판사 '도서출판 야소'를 만들어 이번 책을 출간했다. '야소'는 예수병원의 옛날식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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