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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용의 기행에세이] (21)대문과 담벽, 골목에 대한 생각

담벽을 따라 골목으로…당신의 마음 창고에 이르는 길

(사진위)돌담과 양철담이 사이좋게 함께 집을 지킨다. (가운데)고창 어느 골목 끝집에서 만난 녹슨 철문. (사진아래)담벽의 잔주름, 담벽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몸에 금을 긋는다. ([email protected])

할머니라는 호칭보다는 외할머니가, 고모보다는 이모가 더 정겹게 여겨지는 게 비단 나뿐일까… 다른 이들도 그렇겠지만, 내게도 각별한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있다.

 

'큰집'과 '외갓집'과 '우리집' 말고는 세상 모든 집이 다 '모르는 집'이던 나이 때, 지금 돌이켜보면 한 십여 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던 외갓집까지 한여름 대낮에도 정신없이 뜀박질, 땀으로 목욕을 한 채 대문 앞에서 헐떡거리며 '외할머니, 저 왔어요!', 소리치는 것으로 나는 응석을 부렸다. 드디어 당도했구나, 하는 안도감과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오늘도 또 뜀박질한 것에 대한 때 늦은 부끄러움 같은 것이 뒤섞여 그렇게 소리를 지르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외손주가 소리를 쳐도 외할머니는 '버선발로 달려 나와' 나를 맞아주신 적이 없다. 당신 치성 덕에 유독 '굠'을 타고 났다고 외손주 얼굴이 벌개지거나 말거나 남들 앞에서 자화자찬하셨던 거며, 이종·외종 사촌들에 비하면 편애에 가깝게 나를 끔찍이도 예뻐하셨던 평소 모습만 떠올리던 나이 때에는, 그것도 심통 나는 일이었다. 거듭 소리친다, '외할머니, 저 왔다니까요!'

 

그때마다 외할머니는 댓돌마루에 서서 '어서 오니라! 하이구, 저 땀 좀 봐라. 얼릉 소세부터 하고 오니라' 반갑게 말씀하실 뿐, 여전히 왈칵 달려나올 줄 모르셨다. 눈물이 핑 돌만큼 서운한 순간이었다.

 

'방에 들어오려면 문간에서 마당까지 걸어 들어와야 한다'고 일러줬던 외할머니 말씀을 내가 알아들은 건 언젯적이었을까… 혹간, 우리는 대문 앞에 당도한 것으로 그 집에 다 도착한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대문을 통과하면 마당이 있고, 마당을 가로질러 가야 방에 들어설 수 있다.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다고 해도, 외할머니가 손주를 업어 모시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문턱을 넘어서는 것을 경계로, 길 먼지를 털어내며 마당을 걸어가는 동안 '길손'에서 '집안사람'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꼭 그에 걸맞는 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짠물에서 민물로 돌아온 연어가 몸의 염도를 조절하기 위해 머물러야만 하는 기수역(汽水域)과 같은 곳, 집안뜰…

 

지금 마당 있는 집에서 사는 이가 거의 없다, 나 또한… 외할머니가 세상을 등진 지도 이미 오래… 아파트 현관을 열자마자 신발부터 벗어제낄 때, 나는 문득문득 내가 사는 집에 대해 염치가 없다, 이렇게 다짜고짜 들이닥쳐도 되는 것인가… 그럴 때마다 나는 마당 저 건너편 섬돌에 서 있던 외할머니가 떠오르곤 한다.

 

(사진위)골목 끝에 서 있는 아이에게 이 골목은 당분간 세계의 전부이다. (가운데)통영 어느 골목길. (사진아래)집과 길 사이의 계단. ([email protected])

▲ 담벽, 제 삶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몸에 금이 간다

 

외할머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쭈그렁 할머니이셨다. 어찌 그럴까마는, 내 기억 속의 외할머니는 돌아가셨을 당시와 그로부터 삼십여 년 전 모습에 큰 차이가 없다. 아마도, 어린 외손주 눈으로는 헤아리기 힘들만큼 자글자글했던 주름살의 인상이 강렬하게 남은 탓일 게다. 주름 하나 없는 나이에, 삶의 주름을 어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내가 지금 사는 고덕산 아랫동네에는 아직도 단독주택이 많아 남아 있다. 들락날락하면서 이 집 대문 저 집 담벽을 스치게 되는데, 대문과 담벽의 표정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같은 공장에서 일관 생산했을 것 같은 사자 대문(?)들이거나 표준형 블록 담일텐데도, 집주인들의 삶의 양상이 모두 다르듯 대문과 담벽들은 모두 각기 개성적이었다. 왜 그럴까?…

 

눈에 보이는 그대로, 나는 그 이유가 대문의 칠이 퇴색한 정도나 각기 다른 잔금들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람의 손이나 사람 손 혹은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미세한 지각 변동 같은 것에 의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충격이 있을 때마다 담벽은 제 최선을 다 해 그 충격을 몸으로 흡수, 아슬아슬한 붕괴의 위기를 버텨냈을 것이다, 때로는 위아래로 금이 가며, 또 때로는 좌우로 몸을 찢는 아픔을 견디며…

 

이런 점에서, 담벽의 금은 무너짐의 징조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의 흔적이다, 제 스스로 감당해야할 자신의 삶의 무게를 안정시키기 위해 스스로 몸에 균열을 가한… 물론, 처음 집을 지을 때 외벽 또한 단단하게 조밀하게 설계되고 시공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적 조밀함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자신을 옥죄어 올 때, 살을 내주고 뼈를 지키는 방식으로 담벽은 자신의 생애를 지킨 것이다. 분명히 외화(外化)된 존재의식, 존재의 의지… 아! 우리 할머니들의 주름살이 그러할 것이다!

 

젊음이 젊음을 속일 수 없듯이, 나이가 드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다. 한 집안, 한 건물의 생애가 담벽에 나이테처럼 새겨진다. 외할머니의 잔주름 하나에 자녀들의 좌절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어미의 안타까움이, 또 주름 하나에 집안의 도산과 재기의 시련을 견뎌야 했던 세월이 새겨져 있는 것처럼 저 담벽에도 한 집안의 역사와 이 건물의 내력이 주름져 있는 것이다. 주름살은 숨기고픈 삶의 내력까지도 고스란히 바깥에 드러나게 만들고, 삶의 모진 풍상을 견뎌낸 세월의 흔적을 주름으로 뭉쳐 숨기기도 한다. 은폐와 노출, 나는 외할머니의 주름에서 무엇을 읽고 무엇을 읽지 못 했는가… 외할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난 담벽 금간 곳에 손이 간다.

 

▲ 골목, 지혜에 이르는 미로

 

고교 진학을 위해 처음 전주에 왔을 때, 가장 힘든 일이 동네 골목을 익히는 것이었다. 길눈이 그리 밝지 않은 편인데다, 중앙시장이며 남부시장 골목은 그야말로 미로에 가까웠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좌표와 경계선을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망 속에서만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도시에서의 내 공간적 좌표는 내 거점이 자리한 전주의 지리를 이해해야만, 내 스스로에게도 확연해지는데 그것이 잘 안 되는 것이었다.

 

사실, 시골에서 그 사람이 뜨내기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기웃기웃, 이 골목 저 골목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뜨내기 손님이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뜨내기 하숙생으로 전주의 골목 골목을 전전하였다. 내 거처, 이 도시 어딘가에 숨어 있는 나의 주소를 찾기 위해… 나는 꽤 많이 겉돌고 헛짚으며 헤맸다.

 

순전히 이런 내 삶의 이력 때문이지만, 난 골목이 없는 도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골목대장'이란 말을 모르고 클 신도시의 아이들을 보면 때로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골목길을 누비며, 그 옆의 골목과 골목으로 삶의 반경을 넓히며, 골목의 아이는 마침내 큰 길로 나오는 것… 그런 점에서 골목은 꾸불꾸불한 탯줄과도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점이 되어서야, 한 아이는 '골목 학교'를 졸업했던 때가 있었다, 내겐 골목이 내 인생 최초의 학교였다.

 

모습은 다르지만, 골목 안에는 모든 형태의 떠남과 도착,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빛깔들이 스펙트럼처럼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움, 섭섭함, 안도감 그리고 만남과 이별… 개구멍, 연탄재, 낙서와 빛바랜 전단지, 숨어 키득거리던 웃음의 풍경들… 다정한 이것들을 골목 아닌 어느 곳에서 만나고 또 느낄 수 있으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터인지라, 내게 있어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과 가장 빨리 친밀해지는 방법은 언제까지나 골목길 순례일 수밖에 없다. 이 골목, 저 골목 두리번거리며, 무안함을 참고 길을 물을 때… 나는 내 심장 소리를 듣는다.

 

나는 아직도 궁금한 게 많은 나이이다… 쿵쾅거리는 내 심장 소리, 그 심장 소리를 들을 때마다 덤으로 나는 아직도 녹슨 나이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콩당콩당 찾아온다. 이러니, 난 내일도 모레도 어느 마을의 골목길을 또 헤매고 다닐 밖에… 도리가 없다.

 

이 이야기가 너무 과장됐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도 오늘 퇴근길에 동네 시장 골목길에 한 번 들어가 보시라. 수십 년 살았어도 보지 못한 얼굴, 보지 못했던 가 게나 창고가 먼지 수북하게 거기 눌러앉아 당신을 수십 년 째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틀림없이 알게 될 것이다.

 

주름살 자글자글한 거기, 골목… 당신 마음의 창고에 이르는 길!

 

/김병용(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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