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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생명문화와 노 전 대통령의 자결 - 한면희

한면희(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HK교수)

노무현 전대통령은 국민의 가슴 속에 진한 감동을 남기고 이 세상을 하직했다. 서민으로 태어나 서민을 위한 아름다운 삶과 정치를 펼치다가 떠났다. 무엇보다도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와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데 앞장섰다. 그런데 그가 자연스런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자살을 택했다는 점에서 당혹감도 감출 수가 없다. 생명존중의 문화에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조망할 수 있을까?

 

니체는 도덕이 개인의 눈 속에 있다고 함으로써 윤리적 주관주의를 설파했다. 이런 경우, 사람이 취하는 행위의 윤리성이 개개인에게 돌아가므로 타인이 시비를 걸 수 없다. 이완용의 매국 행위도 타인이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없게 된다. 지구촌 여러 사회는 고유한 문화를 갖고 있고 윤리는 문화의 산물이므로, 한 문화권의 행위 양상을 다른 문화권이 시비를 걸 수 없다는 윤리적 문화상대주의도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존중을 가능하게 하는 큰 장점이 있다. 그러나 허약한 여아를 자연에 유기하여 죽게 하는 일부 토착사회의 행위도 문화적 풍습이어서 비난할 수 없게 된다.

 

바로 이런 문제로 인해 칸트는 도덕규칙을 보편화하여 절대적 지평에 올려놓았다. 윤리적 절대주의에 따르면,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지상명령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총독 히로부미를 저격한 의사 안중근과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저명한 신학자 본회퍼를 기억한다. 이분들의 행위는 윤리적으로 그릇된 것으로 볼 수 없다. 왜? 윤리적 객관주의로 설명이 가능하다.

 

주관주의와 상대주의는 도덕규칙을 용인하지 않는다. 반면 절대주의와 객관주의는 도덕규칙을 보편적으로 용인한다. 다만 전자는 예외를 허용하지 않지만, 후자는 조건부로 승인한다. 객관주의는 타인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도덕규칙을 준수하지만, 또 다른 규칙으로 강력한 사회적 해악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별한다. 성숙한 합리적 직관은 가치 우열의 비교 속에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안중근과 본회퍼는 옳은 일을 한 것이다.

 

노무현의 자결은 어떠한가? 살해와 자살은 조금 다르다. 그것을 옳다고 보기 어렵다. 조선 말 경술국치를 당하여 자결한 애국지사가 여럿 있었다. 나라를 빼앗긴 데 따른 책임과 간악한 매국노의 행위를 규탄하는 사회적 저항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번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결 이면에도 자신으로 비롯된 책임과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그릇된 현실정치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담겨 있다. 국민이 그의 죽음을 마음 속 깊이 슬퍼한 연유가 여기에 있다. 원칙적으로 생명을 앗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다만 사회문화적 의미를 중요하게 갖는 경우에 예외적 평가를 다르게 내릴 뿐이다. 역사성을 띤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어떤 유형의 자살도 바람직하지 않고 또 옳지 않다.

 

/한면희(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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