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호(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MB 정부의 처음과 지금을 비교하여 가장 달라진 것 중의 하나가 홍보의 강화이다.
MB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가장 먼저 국정홍보처의 폐지를 단정적으로 밝혔고 새정부 출범 후에는 대통령은 홍보라는 용어조차 사용하는 것을 꺼렸다. 장관들도 이 용어를 불경시 했다. 그러나 현 정권도 집권 반년이 되기도 전부터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홍보기획관 (수석) 자리도 신설했다. 각 부처에서 다 내보냈던 계약직 홍보 전문가들을 다시 고용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나 수석회의, 각 순시에서 국정 홍보를 강조하고 직접 독려하기도 한다. 서민들과의 접촉을 통해 친근한 대통령의 이미지도 강조하고 있다. 다만 홍보라는 말 대신 '소통'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제 정부는 홍보라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여기에는 언론과 인터넷을 포함한 각종 미디어에 대한 대응은 물론 선거와 대형 국책사업의 승패가 다 달려있기 때문이다. 촛불 집회와 같은 엄청난 여론의 소요를 경험한 후로는 더욱 그러했으리라. 곧 있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내년 지방자치선거를 생각하면 홍보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 대통령은 왜 그렇게 홍보라는 말을 싫어했을까? 과거 대통령치고 정부 홍보를 마다하는 사람이있었던가?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이 대통령이 과거 건설회사에서 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고 CEO를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건설회사 홍보는 오로지 중요 인사 로비와 언론막기에 전념했다. '이 대통령은 정부를 출범시키면서 지금이야말로 그러한 엉터리 관행을 정부의 정책에서 뿌리뽑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또 다른 홍보 혐오 이유는 노무현 전 정권의 지나친 정치 홍보에 대한 진절머리에서 왔을 것이다. 정부의 정책을 브랜드화 하고 기획과 홍보를 합쳐 기획홍보실을 만들고 보수 언론과 사생결단하는 홍위병식 홍보에 혐오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극단에 대한 극단적 반대, 그리고 극단적 선회는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핵심적인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정부의 홍보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음 4가지의 홍보는 모두 잘못된 홍보이다. 첫째, 노 전 대통령이 행한 이념 투쟁 혹은 선전성 홍보. 둘째,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에 경험하고 싫어한 로비와 언론방어식 홍보. 셋째, 정책만 좋으면 포장은 필요 없다는 지나친 실용주의사고 홍보. 넷째, 뚜렷한 원칙과 소신 없이 소통을 강조하는 무철학 홍보. 이 모두 홍보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홍보는 어떻게든 국민들에게 유리하게 알리고, 효과적으로 설득하고, 언론을 이용하고 국민들의 생각과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라는 고정된 인식을 가진 결과이다.
선진국의 홍보는 이미 대중설득과 이미지 만들기를 넘어서서 갈등의 해결과 다양한 공중들과 장기적 관계의 유지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가고 있다. 기본적으로 선진민주 홍보는 다양한 공중 (public)들이 서로 전혀 다른 생각과 이기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인정하고 그 중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얻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홍보 책임자의 역할을 '기술적인 설득자'로 할 것인가 아니면 '갈등의 조절자'로 규정할 것인가는 큰 차이를 가져온다. 물론 정부의 정책을 알리고 언론에 보도하고 정책의 유리한 면을 강조하는 것은 기본적인 홍보의 노력이다. 그러나 홍보의 궁극적 목표는 갈등조절에 있다. 갈등조절은 남의 다른 생각을 정확히 파악하고 인정하면서도 끈질기게 윈-윈(win-win)이 되도록 노력하는 '협상가적 기질'을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로섬 게임 (zero-sum)의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패자로 만들고 자신은 승자가 된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21세기 정보지식사회의 여론 싸움이다.
앞으로 더 많은 홍보 전문가들이 정부에 영입되고 홍보의 노력이 강화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용인이 가능하다. 국책사업이 더 가속화되고 여론장에서의 대결이 더 치열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을 선전 전문가로 교육시키지 말고 인내를 가진 갈등의 조절자로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소통과 공감은 아름다운 용어이나 행동철학과 지침이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한정호(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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