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방부(가천의대 부학장)
전세계 80세 이상의인구가 2050년에는 30명당 1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 현재도 노인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한국도 곧 노인왕국이 될 것 이라고 한다.
얼마 전 헬스클럽에서 가끔 만나던 분들과 골프를 쳤다. "윤 교수님과 골프 한번 쳐보는 게 소원" 이라며 하도 익살을 부리는 바람에 못 이기는 척 따라 나섰다.
그런데 골프를 치는 내내 그들은 서로를 '김 영감' '이 노인' 하고 부르는 게 아닌가? 다들 사회에서 한자리 하는 분들이니, 평소에는 '이 사장님' '김 이사님'으로 통했을 텐데 그날은 장난기가 발동해서인지 마치 노인정에서 만난 노인들처럼 서로 영감, 노인 하며 재미있어했다.
나도 그날만큼은 '윤 영감'으로 통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생각보다 '영감'이라는 호칭이 싫지 않았다. 이젠 나도 나이를 먹어서일까? 평생 들어본 적도 없는 영감이란 말이 오히려 정답게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나도 영락없이 영감이다. 이미 손자 손녀가 있고 환갑도 지났으니 할아버지가 아닌가. 조선시대 같으면 이미 황천객이 되어 제사상 받을 나이이고, 1950년대만 해도 틀림없이 뒷방 늙은이가 되었어야 할 나이이다.
그날 골프를 마치고 식사를 하면서, 하고많은 호칭 중에 왜 하필이면 '영감'이냐고 물었다. 한 분의 대답이 참 명답이었다.
"늙었다는 세 가지가 증거가 있는데, 첫 번째 부드러운 것이 딱딱해지고 딱딱한 것이 부드러워지며, 둘째는 해야 할 것을 안 하고 안 할 것을 하고, 셋째는 금방 한 얘기는 잊고 3일 전 것은 기억하는 것이지요. 이제 우리도 이런 증세가 나타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영감이지요."
속으로 꼽아보니, 다행히도 나는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도 해당되는 것이 아직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늙었다는 사실을 감출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어가지 않는가.
중국의 옛말에도 '하루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명마도 늙어 쇠하면 걸음이 느려져서 둔한 말이 앞서게 되고, 영웅도 늙으면 보통 사람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새뮤얼 울먼은 <청춘> 이라는 시에서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청춘이란 연령이나 연령이 제한하는 육체가 아니라,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나오는 신선한 정신,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대의 청년보다 60대 노인에게서 더 싱싱한 청춘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늙은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청춘>
그러니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가슴속에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과 인생을 헤쳐나가는 용기, 삶을 이끌어가는 강한 힘이 있다면 언제까지나 젊은 청춘으로 아름답게 늙어갈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을 늙음에 대한 각자의 철학이다. 미국의 낭만파 시인 롱펠로(Longfellow)는 비록 머리칼은 하얗게 세었지만 또래의 친구들보다 훨씬 밝고 싱그러운 피부를 유지하며 활기찬 노년을 보냈다. 하루는 친구가 와서 비결을 물으니 "정원에 서 있는 나무를 보며 이제는 고목이지, 그러나 꽃을 피우고 열매도 맺어 그것이 가능한 건 저 나무도 매일 조금씩 계속 성장하기 때문일세 나도 마찬가지야."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국가에서 주는 경로우대증이 있지만 노인이라는 것이 싫어서 공공 교통기관을 이용할 때 사용하지 않고, 지하철에서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해도 사양하고, 젊은 오빠 또는 아저씨로 불러주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인생은 어차피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법이니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된다고 그렇게 서러워할 이유는 없다.
영감! 이 명칭이야말로 조물주가 수여하는 인생 최고의 훈장이다.
/윤방부(가천의대 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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