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웅(시인)
얼마 전 서울에서 젊은 작가들과 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문학에 대한 이야기보다 사소한 농담을 주고받는 게 대부분인 자리였지만, 간혹 문학에 대한 주제가 툭 튀어나오기도 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지방시'를 쓰지 말라고 했다. 그 말에 농담이 섞여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까지 시 공부를 하면서 '지방시'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지역마다 약간씩 색깔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것을 쓰지 말라고 한 것을 보면 그가 말한 '지방시'라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 단어가 분명했다. 물론 그 뜻이 어떤 뜻을 품고 있는지는 짐작은 했다. 세련되고 진보적인 시를 쓰라는 말일 테다. 하지만 불쾌한 기분은 지울 수가 없었다. 서울이 가진 문화 권력이 작가들에까지 힘처럼 사용된다니, 생각해보면 씁쓸한 일 아닐 수 없다.
서울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많은 부분을 가지고 있고,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고, 우수한 대학을 가지고 있고, 행정 권력을 가지고 있고, 문화에 대한 대부분을 서울이 가지고 있다. 서울은 이 중 무엇도 뱉어낼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인다. 세종시 문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문제의 중심에 서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대한민국에 사는 소시민들은 양질의 복지를 겪기는 힘들어 보인다. 나에게 '지방시'를 쓰지 말라고 한 그의 고향도 사실은 지방이다. 지방에서 올라가 서울에서 힘들게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하나다. 그가 나에게 했던 '지방시'라는 말은 문학의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중앙이 되어보라는 뜻이 숨어 있는 말이었겠지만, '지방시'라는 단어에 서울이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싫은 게 아니라, 부러운 것이다. 문화가 서로 다른 어떤 면이 부딪치면서 발전하는 것이라고 볼 때, 부딪칠 것이 많은 서울은 그만큼 빨리 발전하고 성장하고 있다. 내가 사는 삼례는 부딪칠 게 별로 없다. 이 동네는 정치와 거리가 말고, 문화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고, 면사무소조차도 멀다. 그나마 대학이 자리 잡고 있어 젊음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내가 다니는 대학의 젊음들은 큰 문제없이 침묵하기를 즐긴다. 졸업과 취업을 위하여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게 아쉽다. 술집 빼고는 놀 곳이 없다는 것은 다양한 꿈을 꿀 기회조차도 빼앗아가고 있다.
서울은 혼자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다. 서울의 성장은 지방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때문에, 가진 것은 뱉어낼 의무가 있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 상경하여 직장을 잡고 생활을 할지도 모른다. 내가 쓰는 시도 달라질 것이다. 문학의 대부분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가 되면 나도 문학에 경계를 나눠 중앙과 지방을 가르게 될까? 되도록 그것을 피하도록 노력해야 할지도 모른다. 젊은 작가가 농담처럼 던진 '지방시'라는 말을 여기까지 크게 생각한 것은 지나친 우려일 것이다. 하지만 '지방시'라는 단어가 나올 때까지 우리나라는 비정상적으로 성장해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서울은 점점 무거워져 지하로 푹 꺼져 가라앉아 버릴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기 전에 우리는 생떼를 부려서라도 서울에서 많은 것을 뜯어내야 한다. 일단, 세종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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