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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자전거 여행이냐, 급식이냐 - 이기호

이기호(소설가)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 단지에선 한때 이런 일이 있었다. 부녀회를 통해 아파트 정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분수대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것이 주민협의회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된 것이었다. 장기수선충당 이익잉여금인지 무엇인지 자세히 알 순 없으나 건설 자금은 충분히 마련된 상태이니, 보기에도 좋고 여름에도 시원한 오색 분수대 하나쯤 단지 안에 만들자는 것이 몇몇 주민들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그 안건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주민들 사이에서 갈등을 야기했는데, 반대하는 쪽의 의견은 간단했다. 그렇지 않아도 주차공간이 부족해 겹주차에 단지 외곽 주차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분수대가 말이 되는 소리이냐, 그럴 공간이 있다면 차 한 대라도 더 세워놓자, 였다. 반대 의견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아서, 분수대는 단순히 보기 좋으라고 만드는 게 아니라,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 정서에도 좋다, 분수대 공간이라는 게 기껏 해야 차 세 대 정도 주차할 크기인데, 별 다른 영향도 없다, 등등이었다.

 

양 진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엘리베이터 옆 게시판에 각각의 의견을 적은 A4지를 붙여놓았고, 서명을 받겠다는 둥, 다수결로 하자는 둥, 한 치의 양보 없이 서로 마주보고 달렸다. 물론 나 같은 전세 세입자에겐 의견을 개진할 기회도,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 일은 여러모로 우리 사회의 어떤 사안들과도 닮은 점이 있어, 엘리베이터 앞에 설 때마다 적잖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문제는 역시 일의 선후가 될 터인데, 어떤 쪽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 어느 의견이 더 긴급한 것인가에 따라서 각자의 입장이 바뀌는 모양이었다.

 

영업용 차량을 모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주차 문제는 당장의 생존권에 해당되는 위치까지 오를 수 있는 일이었고, 분수대를 설치하자는 사람들은 먹고사는 일 못지않게 삶의 질 문제 또한 중요하다고 보는 쪽이었다. 결론이 나기 전에 이사를 해, 분수대가 세워졌는지 그 반대가 되었는지 알 순 없으나, 내심 나는 분수대가 세워지지 않기를 바랐다. 처음엔 그것이 삶의 질 문제보다 생존권을 우선시하는 내 나름대로의 태도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건 그냥 세입자의 시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차피 떠날 공간이니까, 그 기간 동안 만이라도 잠잠하기를 바라는, 여행자와도 흡사한 태도.

 

지금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4대강 사업 중에는 '자전거도로' 건설 항목도 포함되어 있다. 총 1천728㎞ 길이로 건설될 예정인 자전거도로엔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인데, 정부에서는 이를 각 지자체의 자전거도로와 연계시켜 권역별 테마노선으로 개발할 계획까지 갖고 있는 모양이다. 한데, 이 '자전거도로'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대부분 그 목적을 '레저용'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데 있다. 강줄기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과연 몇 곳이나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강'과 '자전거'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아무래도 '생활'보다는 '여가' 쪽에 더 기울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에서도 그 목적 중 하나가 '관광용'임을 숨기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도로가 완공된다면 아마도 일반인들의 시선 그대로 '레저용'으로 더 많이 이용될 것이 뻔해 보인다.

 

그러면 우리는 이 지점에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과연 다른 사안들보다 더 긴급한, 또한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도 해야 할 만한 일인가? 그만한 가치를 갖고 있는 일인가? 그러니까 예를 들어 초등학생들의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일보다 붉은색 자전거도로를 전국 강가 옆에 까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인가, 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어떤 가치인가? 우리는 이 질문을 정부와, 정책입안자들에게 계속 던져야 한다. 그리고 정부 또한 그것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답변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한데 그런 질문들에 대해서 막연하게 '포퓰리즘 발상'이라고 답변해버린다면, 우리는 또 다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5년 단위로 바뀌는 정권은 먹고 나면 소화가 되어버리는, 별 다른 티도 나지 않는 급식보다야, 한 번 짓고 나면 수십 년 동안 그 자리 그대로 남아 있는 도로 건설을 선호하는 게 당연하다고, 거기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이 정부의 역점 사업들이 대부분 2012년을 완성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 또한 그런 생각을 더욱더 확고하게 만든다. '포퓰리즘' 정권이란 바로 그럴 때 쓰는 말이다. 자신들이 집권하는 기간만 생각하는 것, 눈에 확 띄는 사업만 하는 것. 전세 세입자와도 같은 시선 왜 이다.

 

/이기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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