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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전북 기업사] (20)쌍방울-⑤확장기(2)

란제리 고급화 전략 성공…해외브랜드 도입 90년대 '평정'

1984년 6월부터 스타킹을 자체 생산했다. ([email protected])

1987년 첫 선을 보인 트라이가 오늘날까지 쌍방울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품질 향상과 다양한 신제품 개발은 물론 소비자 마음을 파고드는 꾸준한 광고 전략이 큰 몫을 했다. 처음 TV와 신문 광고를 시작으로 극장광고, 옥외광고, 라디오와 잡지 등 다양한 매체광고로 확대하며 광고 효과를 극대화시켰고, 무엇보다 '편안함'을 강조했다.

첫해 15개 남성용 신제품으로 출발한 트라이는 1988년 50개, 1989년 94개, 1990년 83개 등 매년 다양한 종류의 신제품을 쏟아냈다. 또 처음 남성용에 이어 이듬해 여성용 트라이와 트라이 양말을 출시했고, 1990년에는 트라이 소아용품을 내놓았다.

 

 

(위)런칭쇼에 참가한 드방레이사 직원과 당시 직원·모델들의 기념 촬영, (아래) <전통과 패션의 만남> 이라는 Lee브랜드의 이미지를 심는데 성공함과 동시에 최고의 제품을 선보이며 90년대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email protected])

1985년 무렵 쌍방울에 의해 시작된 국내 패션내의시장은 급속히 신장해 갔다. 이에 쌍방울은 1990년 초부터 JOCKEY와 트라이에 이은 패션제품 개발에 들어갔고, 1991년 프랑스 굴지의 내·외의 종합 패션업체 드방레이사와 JIL브랜드 도입 기술계약을 체결했다. JIL 제품은 1992년 9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실버벨 등장

쌍방울은 1982년 신규사업위원회를 구성하고, 1983년 4월에 신규사업 대상으로 란제리사업과 외의사업을 정했다. 또 이들 사업을 전담할 특수사업부를 발족했는데, 특수사업1부는 외의류사업, 특수사업2부는 란제리사업을 담당했다.

우리나라 란제리시장은 (주)신영의 비너스(1956년 출시)와 남영나이론의 비비안(1965년), 태평양패션의 라보라(1977년) 브랜드가 분할하고 있었지만, 쌍방울은 1980년대 이후 국내 경제 규모의 확대와 국민소득 증대에 따라 패션의 고급화·다양화가 기대되는 란제리류 시장도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쌍방울의 여성용 기초의류 첫 사업대상은 스타킹이었다. 1957년 남영나이론이 처음 생산한 스타킹은 이후 유영산업(반달표)과 화창산업(화창레스) 등이 생산하면서 치열한 가격경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1983년 중고교생 교복자율화는 스타킹 수요를 한층 키웠다. 이런 상황에서 쌍방울은 1983년 말 39대의 편직기를 도입했고, 1984년 6월 이리공장에서 스타킹을 생산, 판매에 들어갔다.

여성용 화운데이션과 란제리 시장에 진출한 쌍방울의 실버벨 브랜드는 1984년 결정됐다. 실버(silver·銀)는 고급스러운 품위와 청초하고 맑은 이미지, 벨(vell)은 쌍방울과 관련있다. 1984년 7월부터 판매에 들어간 스타킹 제품에 처음 사용됐으며, 이후 화운데이션과 란제리, 수영복, 액세서리 등 모든 품목에 부착됐다. 중상가제품의 브랜드는 실버벨, 중저가품의 브랜드는 뉴인나였다.

사업 첫해인 1984년 6억7100만원이었던 실버벨사업부의 매출액은 1985년 21억3100만원, 1986년 36억7500만원, 1987년 74억1000만원, 1988년 121억7400만원 등 크게 성장해 갔다. 그러나 전체 시장점유율은 10% 내외에 그쳤다. 이에 쌍방울은 프랑스 드방레이사의 스캉달 브랜드를 도입, 1990년 3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스캉달은 패션의 본고장 유럽에서 최상위 여성 란제리 브랜드였다. 스캉달 도입을 계기로 쌍방울은 란제리 분야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었고, 기술력도 제고할 수 있었다.

▲외의사업 진출

내의업체 쌍방울이 외의류 제품을 생산한 적이 있는데 1978년에 내놓은 SYT 브랜드였다. 그러나 4년만에 중단된 실패작이었다.

쌍방울이 다시 외의류 시장 진출을 결정한 1984년 무렵 국내 경제는 극심한 불황을 탈출하고 있었고, 국민 의생활 패턴이 다양화 고급화 추세에 접어들고 있었다. 88올림픽 개최가 결정됐고, 교복자율화 조치에 따른 스포츠웨어, 캐쥬얼웨어 부문의 신장 가능성도 컸다.

하지만 이같은 긍정적 분위기 속에서 1984년 의욕적으로 내놓은 자체 브랜드 '포라리스'는 2년만에 생산이 중단된다. 포라리스는 스포츠 캐쥬얼웨어로서 20∼40대 중상층 남녀 소비자를 목표로 했지만, 기존 대형 의류업체들이 잇따라 내놓는 브랜드와 경쟁이 안됐다. 내의업체 쌍방울 자체가 외의류 시장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부족하고 경험도 일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쌍방울은 외의시장을 포기하지 않고 1986년 2월 미국의 유명 청바지 브랜드 리(Lee)를 도입, 판매에 나섰다. 당시 국내 진 의류 시장에는 럭키금성상사의 죠다쉬(1982년), 한주통상의 리바이스(1983), 삼도물산의 써지오바렌테(1984)가 나와 있었는데, 쌍방울이 리를 도입하면서 세계 4대 진 브랜드가 각축을 벌이게 됐다.

진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쌍방울은 Lee에'정통과 패션의 만남'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소비자 마음을 파고들었고, 소비자들에게 Lee브랜드의 이미지를 심는데 성공했다. 쌍방울은 Lee를 출시한 첫해인 1986년 27억원, 1987년 6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성장을 지속해 1990년대 들어 국내에서 시판되는 해외 진 브랜드 중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Lee브랜드 이미지를 확고하게 굳힌데 이어 1992년 8월에는 여성 전용 패션 진 가쉽(GOSSIP)을 출시했다. 정통 아메리칸 진과는 다른 자유분방한 모습을 선보이면서 1984년 패션의 본고장 유럽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가쉽은 쌍방울 외의류 사업의 전면에 세워진 대표 브랜드였다.

쌍방울은 1985년 이후 합작 투자사업도 펼쳤다.

일본의 대표적 섬유·의류 그룹인 레나운그룹의 계열사인 다반사와 51:49 지분의 합작을 추진, 1985년 11월21일 (주)한국다반을 설립, 남성 캐쥬얼웨어인 인터메조를 생산 판매하는 등 고급 캐쥬얼웨어 시장을 공략했다. 1985년 12월 (주)쌍방울다반으로 상호를 변경한 후 1989년 8월에는 인터메조에 이은 두 번째 브랜드로서 고급 신사복 다반을 시판, 정장 분야에도 진출했다. 쌍방울다반이 독자적 영역을 구축함에 따라 쌍방울은 외의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고, 여성용 외의사업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도 추진했다. 1987년 11월 일본 레나운룩과 51:49 지분의 합작계약을 체결하고 1988년 1월 (주)쌍방울룩을 설립했다. 쌍방울룩은 88년 5월, 25세부터 35세까지의 감각적 여성을 대상으로 한 기비(Givy)를 생산했고, 1989년 7월에는 복고적인 색상에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키이스(KEITH)를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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