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광주비엔날레 상임부이사장)
지구촌시대, 정보화시대가 이룩한 최대의 성과는 지리적 경계개념의 소멸이다. 지리학자들은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기술의 무한대 확장으로 사람들은 웹사이트를 통하여 수시로 국경을 넘나들고 있으며, 이러한 습관은 실제로 물리적 국경을 유유히 넘어 관광문화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관광문화야말로 향후 가공할 문화경제를 가능케 하는 요소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 간 국경이 실제로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하여 무시로 넘나들던 습관과 이질 문화에 대한 동경은 과거 그토록 견고하였던 심리적 국경선을 훌륭하게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경개념의 전환이야말로 과거 인종적, 종교적, 계급적 차별을 소멸시키는 촉매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새로 쓰기 시작한 문화경제라는 용어는 도시문화, 도시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도시는 높은 인구밀도와 자원 과다사용으로 인하여 문제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도시는 오히려 거꾸로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므로 오늘날 도시행정가들은 도시의 규모를 줄이기보다는 도시의 문제점을 줄여가는 방법으로 도시문화를 가꾸어가고 있으며, 그것은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리고 도시의 질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건축미학의 활발한 도입이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된다는 사실이다.
한국 대도시의 건축미는 어떠한가? 도시는 단순히 사람만 많이 사는 곳이 아니다. 도시는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물이 결정적이다. 우리가 아름다운 파리를 기억하는 것은 강이나 땅이나 도로가 아니라 도시의 건축물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축물이 배제된 도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만큼 건축물은 도시의 질을 구성하는 결정적 증거이자 도시에 대한 추억 만들기와 직접 관련이 있다.
대다수의 역사적 도시들은 도시형성 초기부터 계획을 만들고 도시가 필요한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축적해왔다. 그러나 한국처럼 식민지시대를 거치고 전쟁을 겪으면서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팽창해온 도시들은 건축미학은 고사하고 그 유사한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성장해왔다. 서울은 엄청나게 크지만 크다는 것 이외에 볼 것이 없고, 부산, 대구, 광주 등 지방 도시들도 서울처럼 덩치만 키워왔지 미학적 고려는 전혀 꿈도 꾸지 못하였다. 그야말로 문화적 명소 하나 없이 도시가 진화하고 존재해온 것이다.
오늘날 도시미학이나 도시의 질을 논하는 첫째 요건은 건축미와 문화적 명소, 즉 도시를 구성하는 아이콘이다. 건축적 명소는 다수의 문화시설물이 포함된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루브르박물관, 퐁피두센터, 런던의 테이트갤러리와 대영박물관, 뉴욕의 구겐하임과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스페인 바스크지역의 빌바오구겐하임 미술관 등이 가장 대표적인 건축적 아이콘이다.
그리고 최근에 이러한 문화관광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건축미에 에너지를 쏟아 붓는 지역은 올림픽을 계기로 도시발전을 극대화시키는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지역을 들 수 있다. 중국정부는 기왕 올림픽을 치르면서 다양한 건축적 명소를 만들었다. 미술가이자 건축가인 아이 웨이웨이가 설계한 올림픽주경기장과 스위스의 건축가 헤르조그 드메롱의 수영장, 렘 쿨하스가 설계한 중국 중앙방송인 CCTV건물, 그 밖에 일본 건축가인 안도 타다오와 시게루 반, 아라타 이소자키, 미국의 아이엠 페이와 리베스킨드 등이 남겨놓은 건축물들은 향후 베이징과 상하이의 미래를 명소화 하는 기념비적인 것들이다.
아랍 에미레이트의 맏형 격인 아부다비의 경우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하고 있는 아부다비 구겐하임을 비롯하여 루브르박물관까지 유치하여 가히 건축물 천국을 방불케 한다. 작년까지 건축물 붐으로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두바이도 이에 지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도시의 팽창을 경험하면서 도시미학을 가꾸는 건축물의 절대적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해야 한다. 여기에는 주거시설인 아파트의 치장도 물론 포함된다. 한국 대도시의 건축물은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상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냥갑 같은 회색 시멘트의 연속이며, 잠을 위한 베드타운(bed town) 역할만 하는 아파트문화의 개선이야말로 시급한 개선과제이다. 건축미학은 서울을 벗어나 지방 대도시로 가면, 그리고 지방대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가면 더욱 심각해진다.
각 지역별로 시행중인 각종 대형 문화프로젝트들에 대한 재검토를 비롯하여 정치적으로 결정된 사업에 대한 구체적 재검토도 시행되어야 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도시에서 태어난 자들은 불행하게도 추억이 없다고 말한다. 이제는 도시가 추억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 책임은 도시를 만드는 자들과 도시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있다. 도시와 추억 사이의 경계가 아름다운 도시, 그것이 바로 미학적 도시인 것이다.
/이용우(광주비엔날레 상임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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