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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원숭이 데리고 노는 맛이란…-이경재

이경재(본지 논설위원)

고사성어 조삼모사(朝三暮四)가 나온 건 2000년 전인 전국시대의 일이다. 송나라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원숭이를 키웠다. 숫자가 늘어 먹이가 부족하자 "앞으로 너희들에게 주는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로 제한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화를 냈다. 아침에 3개를 먹고는 배가 고파 못견딘다는 것이다. 저공이 "그렇다면 아침에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좋아했다는 일화다.

 

'열자'(列子) '황제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원숭이들의 어리석음을 비유한 얘기지만 그것은 곧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것이다. 옛날 성인이라고 하는 작자들이 똑같은 내용의 말을 이리저리 돌리고 바꿔가며 민중을 희롱한 걸 풍자한 것이다. 그리고 핵심은 기만이다.

 

조삼모사의 비유를 확장하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다. 특히 권력자들이 국민을 희롱하는 걸 보면 그렇다. 지난해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낙마하자 인사검증방식을 강화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놓고도 지난 8.8개각 때엔 청와대가 엠바고를 걸어 여론검증을 차단해 버렸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총리 후보자와 장관 2명이 청문회에서 낙마했다. 이 꼴을 보더니 이제는 또 180도 입장을 바꿔 인사검증을 강화하겠다니 이거야말로 원숭이 데리고 노는 격이 아닌가.

 

정책이란 것도 포장만 그럴듯 할뿐 뜯어보면 원숭이 데리고 장난치는 것 같은 것들이 많다. 최근 총부채상환비율(DTI)의 한시적 해제도 그런 경우처럼 보인다. 집 살 때 담보대출을 더 늘려주고, 같은 가격의 주택이라면 저소득자들한테 대출을 더 많이 해주겠다는 것인데 한마디로 빚 내서 집 사라는 얘기다. 이걸 두고 정부는 서민을 위한 정책, 서민들에게 '혜택'이 주어지는 조치라고 했다.

 

과연 그런가. 집 값이 떨어지고 이자율이 높아지면 '고통'이 될 수 밖에 없을 텐데 그 고통은 누구의 짐인가. 주택업자들만, 그것도 수도권의 업체들만 노가 나는 정책을 서민정책으로 포장하고 있으니 저공이 원숭이 데리고 노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정치인들이 하는 수작도 남을 희롱하는 측면에서는 저공 수준을 뛰어넘는다.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이 65세가 넘으면 평생 매달 120만원씩 지급받도록 국회의원 자신들이 의결했다. 정부 부처가 공개· 투명하지 못하면 생선 주워먹은 강아지 잡들이 하듯 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된 것은 그 흔한 공청회 한번 열지 않고 어물쩍 챙겼다. 국민을 원숭이로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공무원 인사는 어떤가. 예측가능한 인사, 시스템에 의한 인사는 조직을 생기있게 만들고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이 된다. 그런데 민선시대 이후 원칙도, 질서도 없는 개판 인사판이 돼버렸다. 어떤 때는 이런 기준, 다른 때엔 저런 기준을 내세워도 공무원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순응한다.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주었다가 시끄럽게 굴면 4개로 바꿔 주면 그만이다. 그러면서 인사권자는 저공처럼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니 원숭이 데리고 장난치는 것 하고 똑같지 않은가.

 

근로자가 임금을 올려달라 하니까 할 수 없이 올려주고는 물가를 조작한다면 근로자들이 손에 쥐는 건 오히려 전 보다 더 적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당장 임금이 올랐다고 좋아하는 근로자들이라면 원숭이와 다를 바 없다.

 

국민은 원숭이가 아니다. 식자들이 설법을 하고 다니던 2000년 전의 일화가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통한다면 그건 불행한 사회다.

 

/ 이경재(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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