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본지 논설위원)
요즘 '공정한 사회'가 화두다. 언론이건 정치권이건 '공정'이란 말이 넘쳐난다. 느닺없이 왠 '공정'일까.
우리 사회가 공정치 못한 때문인가, 아니면 공정을 위한 몸부림인가.
처음 생뚱맞게 들리던 이 말이 점차 우리 사회를 휩쓰는 해일(海溢)이 된 듯한 느낌이다.
이 말은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처음 던졌다. "공정한 사회야말로 대한민국 선진화의 윤리적 실천적 인프라"라고 천명한 것이다.
오비이락이랄까 시범케이스랄까. 이 화두를 던지자 마자 김태호 총리후보와 신재민·이재훈 장관후보가 거짓말, 위장전입, 쪽방촌 투기 등으로 낙마했다. 곧 이어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딸의 특채로 옷을 벗었다. 특히 유 장관 문제에 대해 이 대통령은 "공정사회를 기준으로 보면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못박았다.
나아가 이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 등 국제사회에 나가 이를 전파하고 다닌다.
여기에 대한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측에서는 '웃기는 정권의 코메디'라고 비웃는다. '공정한 사회'란 말을 들으면 '전두환이 생각난다'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이명박이 물러나는 것이 공정한 사회의 첫걸음'이라고 혹평하는 이도 없지 않다. 한나라당 의원 중에서도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의 도구로 끝날 것'이라는 이도 있다.
실제로 '공정한 사회'는 전두환 정권의 '정의 사회 구현과 선진 한국 창조', 노태우 정권의 '보통사람들의 시대', 노무현 정권의 '특권없는 사회'와 닮았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이슈를 선점해 집권 후반기의 국정을 주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아젠다일 수 있다. 반면 스스로 놓은 덫이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을 내세운 것은 잘한 일이다. 설령 일시적 이벤트에 그칠망정 한번 믿어보고 싶다.
그러면 공정이란 무엇일까. 공정은 요즘 새롭게 각광받는 정의(正義)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리, 즉 각자(各自)에게 그의 것을 주는 것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충족되어야 한다. 최근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란 책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이클 샌델은 '공동체적 가치와 공동선'을 강조한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공정사회를 3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회, 둘째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 셋째는 사회적 책임을 지는 사회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물질적 풍요는 이루었으나 실질적 공정성은 크게 훼손되었다. 힘 있고 가진 자일수록 편법과 반칙을 통해 성공과 부(富)를 움켜쥐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빈부 격차와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박탈감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공정한 사회'의 실현은 시대적 요구다. 또 여기에는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자기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대통령을 포함한 공직사회부터 공정해져야 한다.
중국 본토에서 쫓겨와 대만 정부를 이끌던 장개석이 부패(밀수)와 연루된 자신의 며느리에게 생일 선물로 총을 보내 자살케 한 일화는 좋은 본보기다. 또 프랑스에서 기요틴(단두대)을 만든 사람이 결국 기요틴에서 처형된 사례도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이제 '공정한 사회'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다. 쭈뼛거려선 안된다. 중도 하차하면 이명박 정부는 끝장이다.
/ 조상진(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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