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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책맹(冊盲) 벗어나기

김승일(본지 객원논설위원)

추석과 추분을 지나면 완연한 가을이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천고마비(天高馬肥)니 등화가친(橙火可親)이니 하는 말이 바로 가을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특히 등화가친은 등불 아래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잘 나타내는 말이다. '독서는 국력'이란 말도 있다. 책읽는 국민이 많아야 나라가 번성할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체력은 국력'이란 말과 독서는 대칭적이다.

 

책에 관한 이야기도 참 많다. 자고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금언으로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란 말이 전한다. 남자란 모름지기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이다. 기원전 5백년 무렵의 얘기니까 다섯 수레의 분량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당시의 책이 죽간(竹簡)에 쓰여진 점을 감안한다면 그 양은 지금으로 치면 겨우 몇 백년 정도일 것이다. 그 정도의 책을 읽으면서도 어찌나 반복해서 읽었던지 죽간을 묶은 끈이 서너번씩 끊어지는 일이 예사였다니 옛 선비들의 책읽기는 필생의 과업에 다름 아니다.

 

책과 관련하여 세가지 어리석음(三敬)이라는 것도 있다. 즉 남에게 책을 빌려 달라거나 빌려 주거나 빌려 온 책을 돌려주는것이 모두 바보라는 뜻이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지식인들 사이에는 욕심나는 책을 남의 서가(書架)에서 한 두권 슬쩍(?)하는것쯤은 일종의 지적 허영심으로 묵인되기도 한다. 물론 졸부들의 자기현시용 곡브 책장에서 그런 향기있는 낭만이 묻어 나오는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수많은 철학자나 석학, 위인들이 책을 가까이 하고 책을 펴냈다. 나폴레옹은 전쟁중에 알프스 산맥을 넘어으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안중근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혓바닥에 바늘이 솟는다고 했다. 고 김대중대통령이나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소문난 독서광이란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책 속에 길이 있고 독서가 곧 국력이란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에게 이런 가르침이 얼마나 통할지는 의문이다. 21세기를 지식 정보화 시대라 할만큼 책 말고도 도처에 널린게 지식이요 정보다. 인터넷만 들어가도 필요한 정보나 지식은 물론 고전(古典) 요약본까지도 들여다 볼수있다. 그러니 굳이 돈 들여 책을 사보지 않아도 인스턴트 지식인, 사이비 전문가가 지식의 세일즈에 버젓이 명함을 내밀어도 책 잡히지 않는 세상이다. 하긴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이 1인당 연간 10권 미만이고 1년동안 단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고(思考)의 깊이나 통찰력, 마음의 양식을 살찌우는데 독서만찬 힘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살이 고달프다 해도 이 가을 독서의 계절을 맞아 한권의 책이라도 가까이 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 보는것이 어떨는지. 아예 글을 모르는 문맹보다도 사실은 책맹(冊盲)이 훨씬 비극적일수도 있다.

 

/ 김승일(본지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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