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우(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내가 어른이 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만들고 그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내가 겨우 삽 한 자루 가진 사람들을 향해 왜 저깟 산 하나도 옮기지 못하느냐는 터무니없는 책망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른이 된 후에 깨달았다. 아이가 세월만 흐르면 되는 게 어른이란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사실 어른은, 아니 어른도 별 힘이 없다.'(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마한」 중에서)
취재를 위해 만났던 중·고등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들었던 한 마디가 있다. 바로 필자에 대한 호칭 '아저씨'다. (아마도 학생들에게 남자 어른은 모두 '아저씨'로 통하나 보다.) 그렇게 '아저씨'란 말을 듣다 보면 새삼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문득 어린 시절 내가 가지고 있던 '어른'의 이미지와 너무도 동떨어진 필자 자신의 모습에 원인모를 자괴감이 들곤 했다.
그런데 최근 그 원인모를 자괴감의 정체를 밝혀냈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 우리가 학교를 다닐 적보다 훨씬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학생들의 삶에 대해, 현실에 대해, 모른 척, 나아질 거란 척하며 애써 외면해왔던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책임감 내지 죄책감 같은 감정이었던 셈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수능이 코앞이라는 사실을 피부가 먼저 알아차리면, 그 부끄러움은 배가 돼 정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삽 한 자루를 가지고 산이라도 옮기고 싶은 심정이 들곤 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삽 한 자루로 강을 파겠다는 정책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보지 않으면 나았을 테지만 매일같이 학생들과 얼굴을 맞대는 상황을 겪고 나니 그들을 위해, 아니 적어도 어린 시절의 내가 퍼부엇던 비난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내가 가진 삽 한 자루로 할 수 있는만큼을.'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마한」 중에서)
그러니까 결국 「울기엔 좀 애매한」이라는 만화는 어른이 된 만화가 최규석이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에 당당히 맞서기 위해 행동으로 보인 결과물인 것이다.
아마 또 머지않아, 어떤 이유에서든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로부터 '아저씨'란 말을 듣게 될 지 모르겠다. 영화 '아저씨'의 원빈만큼 멋진 아저씨는 아니지만, 적어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럽지 않도록, 학생들을 만났을 때 당당할 수 있도록, 내가 가진 삽 한 자루로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 글은 필자의 첫 삽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삽 한 자루는 무엇인가요?
/ 박창우(오마이뉴스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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