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화정(전북환경운동연합간사)
혹시 국민들이 성금 모으길 기다리나 싶을 정도로 연평도 피난민에게 부실 대응했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천문학적인 4대강 예산은 현재 국회예결위를 통과하기 전이다. 그 때문에 지난 일요일 서울 시청광장은 깃발로 가득했다. 정부가 서민 복지는 나몰라라 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매머드 예산이 통과될지 모르는 위기감이 전국 각지 수천 명의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이게 했다. 환경단체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 각계에서 온 다양한 깃발들은 열 명에 일곱은 반대라는 4대강 여론 수치의 실사판처럼 보였다.
지역과 분야가 다양한 만큼 연단에 서는 사람들도 다양했다. 사람들은 사회를 맡은 개그맨 노정렬씨의 풍자에 배꼽을 잡다가, 4대강 사업 때문에 힘들게 가꾼 유기농 농지를 잃게 된 팔당 유기농단지 농민의 얘기에 숙연해졌다.
농사밖에 모르던 농민이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우리 그대로 농사짓게 해주세요'라고 외쳐야 하는 현실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걸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하나님 목소리 잘 듣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고, 사람 목소리라도 좀 알아들었으면 좋겠다'는 한 목사님의 얘기에 사람들도 함께 한숨을 쉬었다. 머리털 나고 집회 무대에 처음 서보았다는 김정욱 서울대 교수는 댐을 막아도 강은 결국 제 길을 낼 거라며 4대강 사업의 무모함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한나라당의 강행처리를 막기 위한 국회 안 이야기도 국회의원들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야당 대표들은 야4당이 똘똘 뭉쳐 꼭 막아내겠다고 결의를 다지며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았다.
혹독한 추위에도 사람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군고구마를 나눠먹고, 한쪽에서는 초록산타복을 입은 사람들이 간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노래가 나오면 함께 따라 부르고, 사회자의 농담에 박장대소했다. 시종일관 마찰 없이 평화적인 집회였다.
그런데 오히려 집회가 끝나고 나서 작은 소동이 생겼다. 전국 각지에서 온 환경운동연합 사람들이 모여서 근처에 밥 먹으러 가는 길을 전경들이 막은 것이다. 지방에서 온 회원들은 식당가는 길을 모르니, 따라오라고 든 환경운동연합 깃발이 문제라는 것이다. 청와대를 향한 것도, 국회를 향한 것도 아니고 식당들이 모여 있는 근처 골목을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밥 먹으러 가는 거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우리도 밥은 같이 먹어야겠기에 실랑이가 이어졌다. 식당을 1분 거리에 두고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다. 팔당유기농단지 농민에 이어 '우리 그냥 밥 먹으러 가게 해 주세요'를 외쳐야 할 판이었다.
순간 숨이 막혔다. 왜 이렇게 금지된 것들이 많은 건지 전부 기억하기도 어려울 노릇이다. 실랑이 끝에 무사히(?) 식당에는 도착했지만 국민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단적으로 느껴지는 듯 했다. 국민 대다수의 의견과 상관없이 진행되는 4대강사업이나 대포폰 사건 등 국민이 정부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나만 받는 것이 아닐 것이다. '식당 안까지 따라 들어오면 전경들도 밥 사줘야 하나 걱정했다'며 농담이 오고갔지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곽화정(전북환경운동연합간사)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